개·고양이는 ‘생명’이고 소는 ‘상품’인 걸까
산과학 수업의 실습 시간이었다. 수의과대학에서 산과학은 축산동물의 임신과 출산을 다루는 과목이다. 실습으로는 소의 직장 검사를 한다고 들었다. 소 항문에 손을 넣어 직장 주변 장기를 촉진한다. 주로 암소의 직장 벽을 손으로 만져 직장 바깥에 있는 자궁 주변 상태를 파악해 인공수정하거나 임신 여부를 진단한다.
선배들에게 직장 검사 경험담을 몇 번 들었는데 꽤 충격적이었다. 한 선배는 소 항문에 손을 넣자마자 변이 밀려나와 얼굴이 소똥으로 뒤덮였고, 다른 선배는 직장 검사 중에 소가 뒷다리로 어깨를 차서 한동안 팔을 들지 못했다고 했다. 나는 실제 직장 검사를 하기 전까지 소에 대해 깊게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직장 검사하러 갔던 그날 전까지는 말이다.
오른팔 밀어넣은, 소의 직장 안은 따뜻했다
조원은 여덟 명이었다. 실습 장소는 학교에서 차로 40분 거리였다. 매일 가던 학교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가니, 나는 좀 들떴다. 차 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늦가을이었다. 차를 타고 도착한 곳에 작은 축사가 있었고 거기에 소가 서 있었다. 수업 시간에 소에 대해 배웠지만 실제 소를 가까이에서 본 것은 처음이었다.
소 주변에 소의 몸은 들어가지만 몸은 돌리지 못할 정도의 울타리가 세워져 있었다. 그 안에서 소는 우리를 등지고 서 있었다. 직장 검사를 하려면 사람이 소 항문에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어야 하기에 뒷모습으로 배치된 것 같았다. 조원 여덟 명이 우르르 축사 안에 들어가자 소는 고개를 왼쪽으로 돌려 우리를 잠시 쳐다봤다. 몸은 거의 움직이지 않았다.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서 소의 얼굴을 살폈다. 저녁 어스름이었는데 소의 긴 속눈썹을 통과한 햇살이 소의 얼굴에 그림자를 드리웠다.
우리 눈앞의 소는 6살이고 지난해까지 출산과 착유를 반복하다가 복강 내 종양 전이가 발견돼 다음달에 도태될 예정이라고 했다. 종양 발견 뒤 도태 전까지 실습용으로 수의대 학생에게 제공된 소였다. 인공수정으로 평생 송아지를 낳고 사람에게 먹일 우유를 생산하다가, 종양이 생기니 학생들의 실습 대상이 된 것이다.
치료 비용이 동물로 생산되는 이윤을 초과할 때 도태되는 축산동물에 대해 머리로는 알고 있었다. 책에서 배워 알고는 있었다. 대부분의 암소는 6년령 이전에 관리 비용 대비 착유량과 송아지 출산 등의 생산성이 떨어져 도축된다. 평생 젖을 짜던 소는 고기맛과 등급이 떨어져 도축 뒤 가공육이나 비료, 의약품 등에 사용된다. 책에서 글자로 배운 소는 상품이었는데 내 눈앞의 소는 생명이었다. 평생 사람을 위해 인공수정과 출산, 착유를 반복한 이 암소가 질병으로 고통당한다면 기꺼이 치료해주고 편안한 여생을 보내게 해주는 것이 사람의 도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들의 자연수명은 평균 15~20살이다.
손끝부터 어깨까지를 모두 감싸는 긴 비닐장갑이 모두에게 주어졌다. 검사에 저항하는 소의 뒷발에 차일 수도 있다는 주의를 여러 차례 들었고, 발길질을 막기 위해 꼬리를 등 쪽 전방으로 단단하게 잡아올려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 항문을 통과해 팔을 직장으로 넣을 때 변이 밀려나오면 우선 변이 나올 때까지 팔을 뺐다가 다시 넣어야 한다고 했다.
한 명씩 직장 검사를 했다. 바로 앞 실습 조원이 검사를 시작했다. 다음은 내 차례다. 겉옷을 벗고 오른팔에 긴 비닐장갑을 끼웠다. 꽤 쌀쌀한 날씨 때문이었을까? 비닐장갑을 끼는데 턱이 덜덜 떨렸다. 장갑을 끼고 소 항문에 오른팔을 밀어넣었다. 항문 괄약근을 통과할 때 약간의 저항이 느껴지는가 싶었는데 소는 힘을 주지도, 저항하지도 않았다. 소의 직장 안은 따뜻했고, 나는 조교 선생님께 배운 대로 직장 밑에 있는 자궁 경부를 촉진했다. 걱정한 것과 달리 조원 여덟 명의 검사 중에 소는 뒷발차기를 하지 않았고 이따금 꼬리를 천천히 흔들었다. 실습을 마치고 돌아오는 차 안의 공기는 무거웠고 우리는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던 것 같다.
고기, 젖, 송아지 생산 기계, 실습 도구인 소
동물병원에서 지금 나는 반려동물을 주로 만난다. 병원에 오는 보호자는 대부분 자신이 데려온 동물을 가족으로 받아들인 사람들이다. 자기 욕구가 존중받는 경험에 익숙한 동물의 행동을 보는 것은 나에게 특별한 깨달음을 준다. 동물과 사람은 연결됐고 소통 가능하며 서로를 변화시킬 수 있는 존재라는 깨달음이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자기 욕구를 인정받고 소통하며 사회화된 반려동물은 병원에서도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모습을 보인다. 이들의 모습은 방치되거나 학대에 가까운 강압적 처벌로 훈련받는 동물의 주눅 든 모습과는 딴판이다. 싫고 좋다는 표현을 하고, 그런 자신을 존중하며 관계 맺어온 사람에게 마음껏 애정을 표현한다. 사람 사이에서 맺는 관계의 결이 모두 다른 것처럼 사람과 동물의 관계도 모두 다르고 특별하다.
그러나 산과학 실습 때 만난 소는 달랐다. 소는 고기였고, 젖이었고, 송아지 생산 기계였다. 생의 마지막에는 수의대 학생에게 제공되는 실습 도구이기도 했다. 소가 개, 고양이와 같은 반려동물과 다르게 취급되는 것은 당연할까? 출산한 새끼에게 젖을 먹이고 싶어 하는 욕구는 내가 만났던 모든 포유동물이 갖는 것이었다. 반려동물인 개, 고양이가 출산 뒤 옆으로 누워 새끼들에게 젖을 물리는 광경은 동물 유튜브에서 힐링 영상으로 소개된다. 하지만 송아지는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어미와 떨어져 대용유를 먹으며 사람에 의해 인공 육성되고, 송아지에게 먹여야 할 젖은 기계로 한 방울까지 모두 착유돼 사람에게 상품으로 팔린다.
반려동물과 축산동물의 구분?
어릴 때 우리 모두는 동물과 사람이 연결돼 있다는 것을 안다. 동물이 사람과 다르지만 존중해야 할 존재임을 자연스럽게 안다. 동화책에는 수많은 동물이 등장하고 우리는 책에 나오는 그 동물을 사랑하며 성장한다. 그 직관적 믿음에는 반려동물과 축산동물의 구분이 없다. 사람이 먹는 동물이라고 하여 그 동물의 고통에 눈감아야 한다는 마음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 나는 그 구분에 익숙해졌다. 어릴 때 가졌을 동물과의 연결성을 나는 어느 순간 잃어버렸을까?
병원에서 만나는 개, 고양이와의 소통이 즐거울수록 직장 검사를 하며 만났던 소를 생각하면 나는 더 슬퍼진다. 그리고 이 마음이 슬픔에서 끝나지 않을 방법을 생각한다. 동물을 사랑했던 어린 시절의 그 믿음을 나는 다시 처음인 것처럼 배워가고 있다. ‘반려’라는 이름을 붙여준 동물을 진료하는 여기 동물병원에서 말이다.
허은주 수의사·<꽃비 내리는 날 다시 만나> 저자
*시골 작은 동물병원 수의사로 일하면서 만난 동물들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사람 곁을 오랫동안 지켜온 동물의 우정에 사람은 어떻게 응답해야 할지 고민합니다. 3주마다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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