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안정에서 거시건전성 관리로... 신현송 '확장된 중앙은행' 구현할까
[편집자주] 한국은행 차기 총재로 신현송 국제결제은행(BIS) 통화경제국장이 지명되면서 통화정책 방향과 중앙은행 역할 변화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신 후보자는 물가 안정뿐 아니라 금융안정과 거시건전성까지 중시하는 인물로 평가된다. 다만 고환율, 가계부채, 경기 둔화가 겹친 복합 환경 속에서 실제 정책 운신 폭은 제한적일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본 기획은 신현송 체제 출범을 앞두고 금리 경로와 정책 철학, 중앙은행 역할 확대 가능성을 차례로 짚어본다.

23일 금융권에 따르면 신 후보자는 프린스턴대 교수로 재직하던 2012년, 공동 저자로 참여한 한국은행 이슈노트 '한국 금융시스템의 위기 대응력 강화를 위한 장기적 제언' 보고서에서 우리 금융시스템의 구조적 취약성을 완화하기 위한 장기 대안으로 외환안정기구 설립 필요성을 제시했다.
보고서는 외환안정기구가 선물환포지션 한도, 외환건전성 부담금 등 기존 거시건전성 정책수단과 보완적으로 활용될 수 있다고 봤다. 기존 우리나라의 수출기업들은 향후 달러 가치 하락(환율 리스크)에 대비해 은행과 선물환 매도 계약을 체결한다. 은행은 기업으로부터 넘겨받은 환율 리스크를 헤지하기 위해 단기 외화차입 형태로 달러를 조달해 현물환 시장에 내놓는다. 이같은 구조는 기업이 수출을 많이해서 달러를 많이 벌어올수록 은행의 외화부채가 늘어나는 구조를 초래한다. 보고서에 나온 외환안정기구는 이같은 환율구조의 대안으로 제시됐다.
기업으로부터 매입한 선물환(외화자산)을 해외차입(외화부채)으로 상쇄하는 대신 외환안정기구는 이 기구가 보유한 외화자산을 차감하는 방식으로 포지션을 맞춘다. 기업의 실물거래에 따른 환헤지 수요가 은행권의 해외차입으로 곧바로 연결되지 않도록 하는 완충 장치가 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는 기존 거시건전성 정책수단이 충분히 메우지 못한 부분을 보완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는 평가다.
또 외환안정기구는 미 달러화 기준으로 평가되기 때문에, 미 달러화로 조성된 자본금이나 자산이 잠재적인 환손실 또는 환차익 위험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롭다는 점도 장점으로 제시됐다. 보고서는 이를 외환안정기구의 지속적인 활동을 가능하게 하는 강점으로 꼽았다.
이 같은 문제의식은 최근 원/달러 환율이 높은 변동성을 이어가는 상황과 맞물리며 다시 주목을 받고 있다. 시장에서는 신 후보자가 환율을 단순 가격 변수가 아니라 금융안정과 연결된 구조적 리스크로 인식해온 만큼 향후 한은의 정책 판단에서도 환율과 외화유동성 문제가 과거보다 더 비중 있게 반영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신 후보자의 이같은 시스템 안정 철학은 자산시장 대응과 관련해서도 일관되게 나타난다. 그는 과거 "물가가 안정돼 있더라도 부동산 급등과 과도한 유동성이 나타나면 금리 인상으로 자산 버블을 억제해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시장에서는 신 후보자가 물가 안정뿐 아니라 거시건전성 관리를 통한 금융 시스템 전반의 안정을 꾀하는 '확장된 중앙은행 역할론'을 펼칠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다만 이러한 역할 확대가 현실화되기 위해서는 제도적 한계를 넘는 작업이 선행돼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현행 한국은행법은 한은의 1차 목표를 물가안정으로 규정하고 있으며 금융안정 책무를 명시하고는 있지만 외환시장이나 자산시장 불안에 직접 대응할 수 있는 독자적 거시건전성 수단은 충분히 부여하지 않고 있다. 역할은 넓어졌지만 실행 수단은 제한적인 셈이다.
이에 따라 일각에서는 신 후보자 체제 출범을 계기로 한은법 개정 논의에도 힘이 실릴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한은은 현행법상 금융안정 책무가 명시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 금융 불안에 대응할 수 있는 거시건전성 정책 수단을 자체적으로 보유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중앙은행의 역할을 물가 안정을 넘어 금융·외환 안정까지 실효성 있게 확장하기 위해서는 정책 수단의 실행력을 뒷받침할 법적·제도적 재정비가 필수적이라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강한빛 기자 onelight92@sida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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