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학의 미리미리] 젠더박스에 갇힌 슬램덩크를 어떻게 소환할까

김지학 한국다양성연구소 소장 입력 2023. 1. 28. 14:00 수정 2023. 1. 30. 10:33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미디어오늘 김지학 한국다양성연구소 소장]

영화 <더 퍼스트 슬램덩크>의 인기가 뜨겁다. N차 관람도 많다. 내 주변에는 10차 관람을 앞두고 있는 사람도 있다. 30년 전 수집해 놓았던 만화책을 다시 꺼내드는 사람, 만화책 전권을 주문하는 사람, 넷플릭스에서 예전 애니메이션을 다시 보는 사람도 있다. 나 역시 비디오 테이프 시절에는 속도감이 너무 느려서 보지 못했던 애니메이션 버전을 이제야 보기 시작했다. 1.5배속 재생 기능 덕분이다.

“포기하면 그 순간이 바로 시합 종료예요.” 사회운동가로 살고 있는 지금 다시 보는 슬램덩크는 학교 안 청소년 시절 보던 것과는 또 다른 의미와 감동을 주었지만, 동시에 그 당시에는 전혀 느끼지 못했던 불편함도 주었다.

많은 콘텐츠가 그렇듯 슬램덩크 역시 남성중심적이면서 이성애 중심적이다. 여성 등장인물의 수가 매우 적고, 운동선수는 남성이고, 여성은 매니저라는 보조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사람으로 이분법적인 성 역할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슬램덩크 작가의 우익 논란을 차치하고도, 이 콘텐츠의 영향력을 생각하면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다. 콘텐츠의 소비자가 비판적으로 미디어를 읽어내는 능력을 갖춰야 함을 다시 한번 강조하게 되는 지점이다.

▲ '더 퍼스트 슬램덩크' 스틸컷.

심각하게 마초적인 설정에는 헛웃음이 나오기도 한다. 캐릭터 자체에서도 과도하게 거대한 남성의 몸과 어마어마한 신체 능력과 운동신경이 강조된다. 외모에서는 힘이 세고, 키가 크고, 덩치가 있는 '남자다운 남자의 외모를 갖춘' 맨박스에 들어가 있는 캐릭터들이다.

성향에서는 또 어떨까? '남자답다고 여겨지는 성격·성향'들을 보여준다. 예를 들어 농구를 다시 시작한 정대만이 어느 날 과거 자신의 패거리였던 이들과 다시 만나게 됐다. 정대만은 농구를 하겠다고 그들을 떠난 상황이었고 그들은 정대만의 배신에 화가 나 있었다. 정대만의 양 손을 발로 밟고 쇠 파이프로 손을 다시는 쓸 수 없을 정도로 망가뜨리려고 하는 장면이 있다. 이후 정대만이 안 감독에게 자신은 감독과의 약속을 지켰다며 '싸우지 않았다'고 말한다. 이러한 서사로 유추해 볼 때 '폭력은 지양하고 스포츠맨십을 지향하자'는 가치관을 담은 의도를 발견할 수는 있지만, 일방적으로 폭력을 당하는 것을 스스로 자처해 마주하는 것이 '멋있는 것', '남자다운 것'으로 보여지게 만들고 있다.

마초적인 전통적 남성성을 강조하며 만들어진 콘텐츠이다보니 깡패처럼 보이는 패거리 문화나 패싸움이 “남자다운 것”처럼 묘사되는 부분이 많다. 일상에서 그리고 연습이나 시합 중에도 다른 사람에게 박치기를 하거나 주먹으로 머리를 쾅쾅 때리는 것은 남자다운 행동이나 우스꽝스러운 모습이 아니라, 이제는 운동부를 포함해서 모든 곳에서 학교폭력이라고 여겨질 수 있는 행동이다.

슬램덩크가 재미있는 이유는 강백호, 서태웅, 채치수, 정대만, 송태섭으로 이루어진 북산고의 주전 선수들뿐만 아니라 북산고와 맞붙는 상대팀 선수들의 서사 또한 자세히 다루며 한 명 한 명을 입체적인 인물로 다가오게 한다는 것이다. 다양한 성격과 배경을 바탕으로 독특한 개성을 가진 이들의 성장(개인의 성장, 팀워크의 발전)을 지켜보는 것이 즐겁다. 모두가 다 다른 특별한 존재들이지만 한 가지 공통점은 집념과 투지다.

반면 여성 등장인물들에게서는 그런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 가장 중요한 여성 등장인물은 채소연이다. 채소연은 채치수의 동생이자 서태웅을 좋아하고 강백호에게는 짝사랑의 대상이다. 강백호가 농구를 하도록 만들었고 강백호를 가르쳤고 응원하고 용기를 주고 지지하는 역할이다. 채소연이 어떤 인물인지 남성들과의 관계를 빼고는 설명할 수 없다. 다시 말해, 채소연은 주변 남성들을 위해/의해 존재하는 캐릭터로만 존재한다.

▲ 만화책 '슬램덩크' 갈무리.

채소연은 한 눈에 반할만큼 예쁜 외모를 가지고 있고 적당히 수줍으면서도 적당히 발랄하고 적극적이다. 강백호가 자신을 좋아하는지 모를 정도로 눈치가 없기도 하지만 노력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가지고 있는 애교도 있다. 강백호가 어떤 모습을 보이든 긍정적으로 해석해 주고 응원해 준다. 전통적 여성성에 해당하는 성역할을 수행하며 '남자의 기'를 세워준다. 강백호가 자신을 좋아하는 것을 이용하려는 마음이 전혀 없고, 순수하며, 농구를 좋아하는 강백호와 자신의 오빠 채치수가 잘되길 응원한다. 채소연은 남성중심적인 가부장 사회가 원하는 “완벽한 여성”으로 묘사되고 있다.

채소연은 중학교 때 농구를 했지만 운동신경이 없어서 그만 두었다고 한다. 남성 등장인물들과 달리 채소연에게는 집녑, 투지가 없었던 것이다. 남성 캐릭터들은 엄청난 운동신경을 가진 천재이거나 운동신경이 조금 부족하면 엄청난 노력을 하는 노력파로 그려지고 있다. 그런데 왜 채소연은 부단한 노력으로 부족한 재능의 한계를 극복한 캐릭터로 등장하지 못하고, 보호해 주고 싶은 연약한 존재로 그려졌어야 했을까.

'서태웅! 서태웅! LOVE 서태웅!'을 외치는 서태웅 응원단은 어떤가? 얼굴도 이름도 자세히 나오지 않는다. 이들에 대해서는 아무런 설명도 설정도 없다. 세 명의 서태웅 팬은 나중에 어마어마한 인원수로 증가되는데 독자들은 어느 누구도 이들에 대해서 알 수 있는 바가 전혀 없다. 슬램덩크 전체를 통틀어서 가장 큰 여성으로 이루어진 집단인데 이름도 없고 역할도 없다. 그저 서태웅을 좋아하는 역할이다. 얼마나 납작한 존재냐 하면, 얼굴도 평면이다. 작가의 그 뛰어난 데생 실력으로 얼굴을 입체적으로 그려준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 TV만화 '슬램덩크' 갈무리.

그 다음으로 큰 여성의 무리가 나오는 장면은 백호군단이 무원고를 찾아갔을 때 만나게 되는 여학생들이다. 이들은 백호군단이 무원고의 에이스 오경민을 해치러 왔다고 생각하며 '오경민 선수를 지켜야 한다'는 일념으로 빗자루를 하나씩 들고 학교를 지킨다. 그 장면에서도 여성은 남성을 위해 존재한다. 그들 개개인이 누구인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없다.

이런 테스트가 있다. ①영화에 이름을 가진 여성이 두 명 이상 나올 것 ②이들이 서로 대화할 것 ③그 대화 내용이 남성과 관련된 내용이 아닐 것. 1985년 미국의 여성 만화가 엘리스 벡델(Alison Bechdel)이 고안한 테스트인데 남성 중심의 영화가 얼마나 많은지 알리기 위해 만들어졌다. 이 세 가지 기준만 들으면, 너무나 황당할 정도로 별 것 아닌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이런 기준도 통과를 못하는 영화가 있단 말이야?'라는 생각이 들지만, 놀랍게도 대부분의 영화가 통과를 못한다(최근의 한국 영화는 20~30% 정도 통과한다고 한다). 그런데 이 테스트를 통과한다고 해도 그다지 “성평등 영화”로 불릴만한 영화는 아닌 영화들이 많다. 그래서 2020년에 네 가지 기준이 더 추가된 벡델테스트7이 나왔다. ④감독, 제작자, 시나리오 작가, 촬영감독 중 1명 이상이 여성 영화인일 것 ⑤여성 단독 주인공 영화이거나 남성 주인공과 여성 주인공의 역할과 비중이 동등할 것 ⑥여성 캐릭터가 성별 고정관념에 의해 재현되지 않을 것 ⑦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혐오와 차별적 시선을 담지 않을 것.

▲ '슬램덩크' 일러스트.

슬램덩크는 2020년에 업데이트 된 테스트는 커녕 1985년도 기준에도 통과되지 못한다. 슬램덩크는 가슴벅찬 작품이지만 여성을 독립된 인격체로 여기는 작품은 아니다. 어느 정도 비중을 가진 여성 캐릭터는 앞서 언급한 채소연과 농구부 매니저인 한나밖에 없다. 둘이 대화하는 장면은 거의 없는데 아주 가끔 있다고 하더라도 남자 농구부원들(대부분 강백호, 채치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슬램덩크에서 여성은 남성을 응원해 주는 등 남성을 위한 존재로 그려졌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강백호는 중학교 시절 3년 동안 여성들에게 50번 고백하고 50번 차였다고 나온다. 송태섭도 그에 조금 못 미치지만 만만치 않다고 나온다. 여성들은 동등한 인격을 가진 주체로서 등장한다기 보다는 데이트나 연애의 대상으로 여겨지는 모습으로 나온다.

'이 작품은 남자들이 주인공인 남자 농구부를 주제로 했으니까 그런 거 아니냐'고 반문할 수 있다. 맞다. 그럴 수 있다. 슬램덩크에 어떤 면을 비판했다고 해서 슬램덩크와 같은 작품이 없어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게 아니다. 발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느 한 그룹의 사람들이 주체적으로 묘사된다고 해서 반드시 다른 그룹의 사람들이 주변화되거나 대상화돼야 할 필요는 없다. 다양한 그룹의 사람들이 동등한 존재로 묘사될 수 있다. 또한 작품 하나만을 보고 사회 전체를 논할 수 없다. 여성 캐릭터들이 대부분이고 캐릭터 한 명 한 명이 모두 깊은 서사와 맥락을 가지고 있으며 모든 캐릭터들이 독특한 성격과 개성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개인적인 성장과 단체의 성장도 함께 이루어 나가는 작품들도 많다면, 아무 상관이 없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작품은 아직도 많지 않다.

과거의 기준과 현재의 기준은 다를 수 있다. 그 당시에는 문제제기 당하지 않았던 장면들이 이제는 문제제기가 될 필요가 있다. 여전히 큰 영향력을 미치는 콘텐츠를 비판적으로 바라볼 때, 남성지배와 여성종속을 유지하며 남성에게도 억압적이고 해로운 '젠더박스'의 굴레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젠더체계에 균열을 내는 실천으로 이어질 수 있다. 우리는 더 많은 것들을 생각해야 하고 더 깊이 생각해야 한다. 목소리 내는 사람들이 세상을 평등하게 만드니까. 그리고 슬램덩크에서 많은 남성들을 입체적으로 조명한 것처럼 여성, 성소수자, 장애인, 이주민, 어린이, 청소년, 노인 등 수많은 사회적 소수자들이 다양한 개성과 특징 그리고 개개인의 배경, 맥락, 역사를 가진 입체적인 인물로 등장하는 작품이 많이 발굴되고 사랑받을 기회가 주어지길 바란다. 그럴 수 있을 때 우리는 훨씬 더 재미있는 작품들을 많이 만나게 될 수 있고, 억압에 둘러싸인 우리의 삶도 좀더 해방에 가까워질 것이다.

[미디어오늘 바로가기][미디어오늘 페이스북]
미디어오늘을 지지·격려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

Copyright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