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막전 악몽을 2개월 만에 되갚다 정해영 10경기 연속 무실점, KIA의 반격이 시작됐다

2026년 3월 28일, 인천. KIA 타이거즈는 9회까지 6-3으로 앞서고도 마무리 정해영의 붕괴로 역전패를 당했다. 그날의 충격은 단순히 한 경기 패배로 끝나지 않았다. 정해영은 심리적으로 무너졌고, KIA 불펜은 리그 하위권으로 추락했다. 그로부터 정확히 55일이 지난 5월 22일 광주, 정해영은 똑같은 상대인 SSG 랜더스를 상대로 1이닝 1/3을 무실점으로 막아냈다. 단순한 등판 기록이 아니다. 2군 강등이라는 굴욕을 이겨내고 클로저 보직까지 내려놓은 선수가 자신을 무너뜨렸던 팀을 상대로 완벽하게 복수를 완성한 순간이었다. KIA는 이날 5-2 역전승으로 단독 4위(23승 1무 22패)에 올라서며 상위권 레이스에 본격 가세했다.

정해영은 지난 시즌까지 KIA의 마무리를 흔들림 없이 지켜온 투수다. KBO리그 역사상 최연소로 통산 100세이브를 달성했고, 올 시즌도 150세이브를 향해 순조롭게 출발할 것이라는 기대를 받았다. 하지만 시즌 첫 경기에서 모든 것이 틀어졌다.

3월 28일 인천 SSG전. 6-3으로 앞선 9회 마운드에 오른 정해영은 선두 최지훈에게 볼넷을 내준 것을 시작으로 안상현에게 2루타, 오태곤에게 2타점 적시타를 연달아 허용하며 스스로 무너졌다. 이범호 감독이 급히 조상우로 교체했지만 불을 끄지 못하면서 KIA는 끝내기 역전패를 당했다. 144경기 시즌에서 통계적으로 한 경기가 큰 의미를 갖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시즌 첫 경기, 그것도 완벽하게 잠근 채 닫혀야 할 9회의 붕괴는 투수의 심리에 쉽게 지워지지 않는 흔적을 남긴다.

이후 정해영의 투구는 눈에 띄게 달라졌다. 제구가 흔들렸고 구위에도 자신감이 실리지 않았다. 4월 10일 대전 한화전에서 1/3이닝 2실점으로 또다시 무너지자 KIA 코칭스태프는 결단을 내렸다. 정해영을 2군으로 내려보내 재정비 시간을 갖게 한 것이다. KBO리그 최연소 100세이브 투수에게는 분명 쉽지 않은 시련이었다. 그러나 이범호 감독은 "기술적인 문제가 아니라 심리적인 문제"라고 정확히 진단했고, 그 판단이 결과적으로 옳았다.

4월 22일 정해영은 1군으로 복귀했다. 보직은 마무리에서 셋업맨으로 전환돼 있었다. 클로저가 감당해야 하는 9회의 심리적 무게에서 한 발짝 물러난 구조였고, 이 결정이 정해영을 살렸다.

복귀 이후 5월 22일 SSG전까지 10경기 연속 무실점. 누적 이닝은 11이닝을 넘는다. 이 기간 두 차례나 2이닝씩 소화하며 구원승까지 따냈다. 볼을 남발하던 이전의 모습은 사라졌다. 22일 경기에서도 그 변화는 또렷이 드러났다. 7회 2사 1·3루, 좌타자 정준재를 상대로 초구 패스트볼을 스트라이크 존 안에 꽂아 넣었다. 카운트를 유리하게 잡자 2구째 다시 직구로 밀어붙여 평범한 중견수 뜬공으로 처리했다. 시즌 초반 불리한 볼카운트에서 허우적대던 그 정해영이 아니었다.

8회에도 마운드를 이어받아 에레디아, 김재환, 오태곤으로 이어지는 SSG 클린업 트리오를 3루 땅볼-삼진-3루 땅볼로 완벽하게 제압했다. 합계 1이닝 1/3 무실점, 10경기 연속 무실점 행진이 이어졌다. 이범호 감독은 "위기 상황에서 정해영이 아웃카운트 4개를 완벽하게 만들어냈다"며 신뢰를 표했다.

숫자도 팀 전체를 말해준다. 4월 22일 보직 재편 이전까지 불펜 평균자책점 5.22(리그 7위)에 머물던 KIA 불펜은 이후 한 달간 3.70까지 급강하했다. 같은 기간 3점대를 기록한 팀은 두산과 KIA뿐이다. 마무리를 넘겨받은 신예 성영탁이 1승 5세이브 평균자책점 0.93으로 뒷문을 굳건히 지키고 있고, 조상우도 4월 22일 이후 12경기에서 평균자책점 0.96이라는 압도적인 수치를 유지 중이다.

정해영의 셋업맨 전환을 두고 시즌 초반에는 '강등'이라는 시각도 없지 않았다. KBO 최연소 100세이브 투수가 마무리를 내려놓는다는 것은 겉으로는 분명 후퇴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결정은 손실이 아니라 투자였다.

마무리 투수의 9회 심리적 압박은 다른 보직과 본질적으로 다르다. 같은 구위를 가진 투수라도 9회 세이브 상황에서 심리적으로 무너진 경험이 쌓이면, 그 기억은 다음 등판에도 반드시 따라온다. 정해영이 겪은 것이 정확히 그것이었다. 이범호 감독은 선수를 흔든 것이 기술이 아닌 심리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심리를 회복시키는 가장 빠른 방법이 성공 경험을 반복적으로 축적하게 하는 것임을 알고 있었다. 7·8회 셋업 상황에서 10경기 연속 무실점이라는 숫자는 그 설계가 맞아 떨어진 결과물이다.

5월 22일, 정해영은 자신을 무너뜨렸던 SSG를 상대로 클린업 트리오를 포함한 4개의 아웃카운트를 완벽하게 처리하며 스스로 증명해 보였다. KIA 팬들의 반응도 달라졌다. 개막전 직후 커뮤니티에는 "정해영을 교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적지 않았지만, 지금은 "보직 재편이 신의 한 수였다"는 평가가 주를 이루고 있다. 마무리를 성영탁에게 맡기고 정해영을 셋업에서 재건한 이 구조가 KIA 불펜의 실질적인 경쟁력이 됐다는 것을, 팬들도 수치로 확인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날 단독 4위 등극이 단순한 순위 이동 이상의 의미를 갖는 것도 이 맥락에서다. 정해영 개인의 재기 서사이기도 하지만, KIA라는 팀이 시즌 초반의 위기를 어떻게 조직적인 설계로 극복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이기도 하다. 남은 시즌 KIA 불펜에는 추가 전력도 예정돼 있다. 팔꿈치 수술을 마친 곽도규는 이미 최고 147km의 강속구를 회복했고, 늑간근 손상에서 회복 중인 전상현이 6월 복귀를 목표로 하고 있다. 불펜의 두께가 더 두꺼워진다면 KIA의 상위권 레이스는 더욱 가파르게 진행될 수 있다.

개막전 블론세이브 하나가 한 투수의 시즌 전체를 뒤흔들었다. 그 투수가 2개월 만에 같은 상대를 앞에 두고 완벽한 투구로 답했다. 이제 질문은 하나다. 정해영은 언젠가 마무리로 돌아갈 수 있을까, 아니면 셋업맨으로서 팀에 더 큰 가치를 만드는 것이 맞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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