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수터) 맥락맹 혹은 선택적 분노

이삼섭 2026. 6. 7.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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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을 이용해 만든 이미지.

‘맥락맹’(Context Blindness)이라는 신조어가 있다. 글이나 대화의 전체적인 흐름과 맥락을 파악하지 못한 채 특정 단어나 문장 하나에만 집착해 엉뚱한 해석을 내놓는 사람들을 비꼬는 말이다. 문해력 저하가 사회적 화두로 떠오른 요즘 맥락맹은 단순한 개인의 지적 능력 부족이나 실수 정도로 치부되곤 했다.

하지만 과연 그들이 정말로 맥락을 몰라서 그러는 것일까. 최근 우리 주변에서 관찰되는 이른바 맥락맹들의 행태를 깊이 들여다보면 고개가 가로저어진다. 그들은 결코 무지하지 않다. 오히려 앞뒤 맥락이 무엇인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맥락을 잃은 사람처럼 행동하는 이유는 하나다. 자신이 공격하고 싶은 부분, 혹은 자신의 입맛에 맞는 부분만을 골라내기 위해서다. 즉, 모르는 게 아니라 알면서도 의도적으로 무시하는 것이다.

맥락이 거세된 자리에는 대개 맹목적인 적대감과 ‘선택적 분노’가 들어선다. 전체적인 취지나 본질은 외면한 채 꼬투리 잡기 좋은 한 마디를 박제해 마녀사냥을 벌인다. 내 편의 허물은 사정상 그럴 수 있었던 맥락이 있고, 네 편의 말은 어떤 맥락이든 상관없이 무조건 잘못되었다는 식이다. 이들에게 맥락은 사실을 판단하는 기준이 아니라, 내 편을 들기 위한 변명이거나 상대를 공격하기 위한 무기에 불과하다.

진짜 무서운 점은 이러한 맥락맹을 가장한 선택적 분노가 우리 사회의 건강한 토론과 소통을 마비시키고 있다는 사실이다. 어떤 생산적인 논의도 맥락을 잃고 파편화되는 순간 진흙탕 싸움으로 변질되고 만다. 소통의 부재는 확증편향을 낳고 이는 다시 사회적 분열과 혐오를 심화시키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단순한 오독(誤讀)의 시대를 지나, 의도적 왜곡과 선택적 분노가 판치는 시대를 살고 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어쩌면 문장을 읽는 문해력이 아니라 타인의 말에 담긴 본뜻을 왜곡하지 않고 마주하는 도덕적 문해력과 소통의 정직함이 아닐까.

그런 점에서 우리에게는 포용적 시선이 필요하다. 맥락은 보편성과 특수성이 공존한다. 다시 말해 의도하지 않은 실수가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의미다. 의도인지 실수인지는 분명치 않다. 그러나 누군가가 실수에 대한 맥락을 설명하고 사과할 때는 받아들여 주는 태도가 필요하다. 우리 모두 실수를 밥 먹듯이 하고 있잖나.

이삼섭 취재1본부 차장 seobi@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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