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기업들이 올해 1분기에 공모로 발행한 회사채 규모가 1년 전보다 3조원 넘게 불어나며 30조원을 웃돈 것으로 나타났다. 연초까지만 해도 정치적 불안에 시장이 극도로 얼어붙었지만, 이제는 회복을 넘어 완연한 활황 국면으로 접어드는 모습이다.
다만 올해 들어 본격화할 것으로 예상했던 금리 인하 속도가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서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1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의 증권신고서 자료를 분석한 결과, 청약일 기준 지난 1~3월 중 공모로 발행된 회사채는 총 32조2520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2.4%(3조5510억원) 늘었다. 이는 청약일이 해당 기간 중이었던 일반 회사채를 비롯해 후순위채와 신종자본증권 등 자본성 증권까지 집계한 실적이다. 자산유동화증권과 수요예측을 거치지 않은 거래는 제외했다.
자금을 모으려고 회사채를 내놓는 기업과 여기에 베팅하는 양쪽 모두 적극적인 자세를 보이는 가운데, 투자자 측의 수요가 더욱 커졌다. 회사채 발행에 나선 기업들의 최초 모집액은 18조8760억원으로 같은 기간 대비 6.9% 증가했다. 이에 대한 수요예측 규모는 112조5900억원으로 13.3% 늘며 증가세가 더 가팔랐다.
결과적으로 공모 경쟁은 한층 치열해졌다. 기업들의 최초 발행 희망액 대비 수요예측에 따른 일반 회사채 경쟁률은 평균 5.96대1을 나타냈다. 지난해 같은 기간 기록인 5.53대1을 웃도는 수치다.
이로써 회사채 시장은 새해 초 불황을 말끔히 씻어 냈다. 일반적으로 연초는 기업들의 신년 자금 집행이 이뤄지면서 채권 발행이 활발해지는 시기인데, 올해는 예기치 못한 정치적 불안 이 걸림돌이 됐다. 지난해 말 불거진 비상계엄 사태와 그에 이은 대통령 탄핵 등 정국 불안이 장기화하면서 금융시장도 크게 위축됐다. 실제로 지난 1월 공모로 발행된 회사채는 9조7560억원으로 전년 동월 대비 25.6%나 줄었다.
하지만 달을 넘기면서 온기가 돌기 시작했다. 뒤늦게 연초 효과가 되살아나는 분위기였다. 지난 2월 공모 회사채 발행량은 15조2400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달보다 25.6% 늘었다. 이후로도 수요 확대는 이어지고 있다. 올해 3월 공모로 발행된 회사채는 9조7560억원으로 전년 동월 대비 65.1%나 급증했다.
투자 심리는 여전히 긍정적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3년물 기준 국고채 금리 대비 신용등급 AA- 회사채의 신용 스프레드는 지난달 말 57베이시스포인트(bp·1bp=1%포인트)로, 올해 들어서만 12bp 축소됐다. 이처럼 신용 스프레드가 좁아진다는 건 그만큼 회사채에 대한 투심이 나아졌다는 의미다.
관건은 금리 흐름이다. 기준금리 인하 폭이 제한될 것이란 관측에 회사채 발행 금리 하향에도 한계가 있을 전망이다. 시장 금리가 내려가면서 회사채 수요가 더욱 풀릴 수 있다는 기대에 제동이 걸릴 수 있다는 얘기다.
금융권에서는 한은이 이번 달 기준금리를 동결할 것이란 예상이 우세하다. 미국의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가 1월에 이어 3월에도 기준금리를 동결한 만큼, 한은만 계속 금리를 내리기엔 부담이 커졌다. 연말까지 내다봐도 한은의 기준금리 추가 인하는 한두 차례에 그칠 것이란 예측에 무게가 실린다.
한은 기준금리는 2023년 1월에 연 3.50%까지 오른 후 1년 넘게 유지되다가, 지난해 10월과 11월에 각각 0.25%p씩 두 차례 연속 인하가 단행되며 3.00%로 떨어졌다. 올해 첫 금융통화위원회에서는 이를 동결했지만, 2월에 0.25%p 추가 인하로 2.75%까지 낮아졌다.
금융권 관계자는 "올해 초 불확실성에 묶여 있던 수요가 뒤늦게 몰리면서 최근에는 예년보다 많은 회사채 물량을 소화하고 있다"며 "연말 기준금리가 생각보다 높을 수 있다는 불안도 깔려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부광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