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코네·고시엔·슬램덩크의 공통점은?…일본 사철의 도시를 가다
일본 가나가와현의 하코네는 일본에서 가장 유명한 온천 관광지 중 하나다. 일본의 에도(도쿄) 시대를 연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온천을 즐기기 위한 휴양지로 삼았던 곳이 하코네였다. 지금은 전 세계 관광객들을 끌어모으는 도쿄 근교의 유명 관광지로 자리매김했다. 화산인 하코네 산에 있는 아시 호수는 백두산 천지와 같은 칼데라호로 장관을 제공한다.
희망철도재단이 주관하는 공공철도 청년학교 일본 철도 답사팀과 함께 하코네를 찾은 이유는 온천이 아니라 다른 데 있었다. 이곳은 과거 교토에서 에도로 이어지는 옛 도카이도(東海道)가 지나는 교통의 요지였고 에도시대의 세키쇼(검문소)가 현존해 문화재로서 관광객들을 맞고 있다. 오사카와 도쿄, 관서와 관동을 잇는 도카이도선은 지금도 일본 교통의 핵심 대동맥으로 상징된다.
서울에서 기차를 타고 춘천이나 강릉을 가는 방법은 하나로 수렴되지만, 철도의 왕국 일본답게 기차를 타고 하코네를 가는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다. 도쿄역에서 도카이도 신칸센을 타거나, JR도카이도 선을 타고 오다와라 역에서 내리는 방법이 있고, 신주쿠역에서 오다큐 라인의 '로망스카(일종의 급행)'나 일반 열차를 타고 하코네유모토 역으로 바로 가는 방법이 있다. 한국에선 KTX를 타든, 무궁화호를 타든, 전철을 타든 KTX에서 표를 끊고 춘천역이나 강릉역에서 내리면 되지만, 일본에서 오다큐와 JR동일본은 완전히 다른 회사다. 오다큐는 하코네 지역의 '사철'이다. JR동일본이 운영하는 신칸센이나 JR도카이도는 표도 따로 끊어야 하고, 역의 개찰구도 별도로 있다. 일본의 철도 시스템을 잘 모르는 한국의 초심자 관광객이라면 당황할만한 일이다. 각각의 회사는 다양한 급행과 완행을 운영하며 사람들을 불러 모은다.
우리는 오다큐라인의 전철을 이용했는데, 하코네는 '오다큐의 도시'라고 볼 수 있는 동네다. 오다큐 그룹은 철도회사를 핵심으로 하지만 신주쿠와 하코네를 잇는 오다큐 라인 외에, 하코네 산악 열차인 하코네 등산 케이블카, 하코네 등산 열차, 하코네 로프웨이, 하코네 등산 버스, 오다큐 고속 버스, 하코네 크루즈 등을 모두 운영한다. 이 외에도 호텔업, 요식업, 유통업 등 다양한 자회사를 가지고 있는데, 종업원 3500명 수준의 중견 회사다. 철도 회사가 호텔이나 식당, 백화점을 운영한다는 게 한국 사람들이 보기엔 신기해보이지만, 일본의 철도 회사들은 대부분 이런 '문어발식 경영'으로 회사를 키워가고 있다. 오다큐 그룹이 곧 하코네 관광이고, 하코네 관광은 오다큐 그룹을 통하지 않고서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일본에는 이런 대형 사철이 전국에 16개나 있다. 소형 사철도 많다. 대부분 철도 민영화와는 크게 관련이 없는 '지역 토호 자본'으로 성장한 회사들이다.
철도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하코네의 스위치백 방식(경사 높은 산을 올라가기 위해 전진과 후진을 반복해 '지그재그'식으로 운영한다) 열차인 ‘하코네 등산 열차’와, 케이블을 이용해 직선으로 산을 오르내리는 푸니쿨리, ‘하코네 등산 케이블카’에 열정을 보일 것이다. 스위치백 방식의 철도는 현재 일본에서 유일하게 남아 있는 라인이라고 한다. 산악 지형이 많은 일본은 물론 한국에도 스위치백 운영 구간이 존재했다. 마지막으로 남았던 영동선의 흥전-나한정역 구간의 스위치백 철도는 2012년 터널 개통을 계기로 폐선시켰다. 일본은 스위치백 열차를 관광용으로 살려 여전히 운행하며 전 세계의 '철도 덕후'들을 끌어 모으고 있다. 하코네 등산 열차와 등산 케이블은 발 디딜 틈 없이 '만석'이었다. 탑승객의 국적도 다양했다. 전 세계에서도 몇 남지 않은 관광용 스위치백 열차를 직접 타고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함께 간 철도 노동자들은 제각각의 '전공'에 따라 관심을 보였다. 기관사들은 투명막을 사이에 두고 훤히 보이는 운전석에서 일본의 기관사가 지적 확인을 하고 운전하는 모습을 촬영했다. 일본의 기관사들은 승객에게 노출된 상태에서 운행을 한다. 자칫 기관사에 대한 관심이 운전에 대한 방해로 이어지지 않을까 걱정되기도 했다. 역무원은 역무원들의 역할을 유심히 살폈고, 시설 노동자들은 기차가 지나간 후 철로를 정비하는 일본의 철도 노동자들을 살폈다. 무더위에 뜨거운 선로 위에서 일하는 이들의 모습은 동질감을 불러일으키는 듯 했다.
스위치백 열차에 이어, 케이블 열차로 갈아탄 후 로프웨이에 올랐다. 로프웨이를 타고 하코네 산의 등성을 넘어서면, 탄성을 부르는 광경이 펼쳐진다. 하코네의 명물 유황 광산이다. 곳곳에서 노란 연기를 뿜어내는 풍경은 일본이 화산 섬이라는 사실을 새삼 느끼게 해 준다. 이 유황이 데운 온천수는 하코네의 명물이다. 다시 로프웨이를 타고 반대편으로 넘어가면 아시 호수의 크루즈를 탈 수 있다. 이 크루즈를 타고 도착한 곳에 에도 시대의 검문소인 '세키쇼'가 있다. 세키쇼는 막부 시대에 왕이 살고 있던 교토와, 최강 막부였던 에도 막부를 연결하는 도카이도의 에도 입구에 위치한다. 다이묘들은 이 곳에서 쇼군을 위협할 물건이 없는지 검문을 당했다. 전시관엔 다이묘들이 막부 최고 통치자인 에도의 쇼군을 위해 진행한 행렬의 모형이 전시돼 있는데, 이 다이묘들의 행렬이 지나던 도카이도는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의 동서를 잇는 상징 선인 도카이도선이 놓였고, 지금은 그 위를 일본 근대 발전의 상징인 초고속 기차가 달리고 있는 셈이다.
역시 오다큐가 운영하는 에노시마 전철을 타면 애니메이션 <슬램덩크>에 등장한 풍경으로 유명한 카마쿠라 고코마에역 인근의 사진 촬영 포인트로 갈 수 있다. 슬램덩크에 등장하는 '능남고교앞역'이 이곳이다. 사람들은 전철이 지나갈 때 건널목 사진을 찍기 위해 분주하다. 이 곳 주변은 '관광 인프라' 같은 게 없다. 단지 이 건널목을 보기 위해 오는 사람들로 북적이는 것이다.
하코네 지역이 '오다큐 그룹'의 나와바리라면, 일본 북부의 사이마타현은 세이부 철도의 도시다. 일본 경제 사정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세이부 그룹에 대해 반드시 들어봤을 것이다. 야구 팬이라면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스를 잘 알 것이다. 철도 회사가 야구단을 운영한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매우 낯선 일이기도 하다.
기점 이케부쿠로역에서 사이타마현의 치치부까지 연결되는 사철 노선인 세이부 철도를 소유한 세이부 그룹은 사이타마현을 기반으로 츠츠미 야스지로(堤康次郎)가 설립한 재벌 회사다. 전신은 세이부 철도 그룹이다. 세이부 철도의 전신은 무사시노 철도인데, 1911년 10월 18일에 철도 면허를 취득해, 1915년부터 도쿄 이케부쿠로 역을 기점으로 영업을 시작했다. 이후 부동산 사업 등으로 승승장구하던 정치인 겸 사업가 츠츠미 야스지로가 인수해 세이부 철도와 합병하면서 세이부 철도 그룹으로 탄생한다. 일본의 대형 사철 회사들이 그렇듯 주로 부동산이나 호텔, 백화점 사업 등으로 덩치를 키운 세이부그룹은 도쿄의 노른자 땅과 건물들을 소유한 대기업이지만 2000년대 들어 기업 비리와 계열 분리 등으로 축소됐다. 그래도 2023년 기준 한화로 시가총액 6조 원이 넘는 대형 회사다.
이케부쿠로 역엔 JR 동일본, 도쿄메트로, 도부 철도, 세이부 철도의 역이 함께 있다. 하루 평균 이용객은 약 260만 명으로 20만 명에도 채 못 미치는 서울역(1호선 서울역 포함)의 13배에 이르는 규모를 자랑한다. 참고로 신주쿠역은 하루 평균 350만 명이 이용하는데, 일본은 물론 전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승객이 이용하는 역으로 알려져 있다. 이케부쿠로 역 주변에는 세이부 백화점을 비롯해 세이부 그룹의 흔적들이 많다. 세이부 그룹이 이케부쿠로와 사이타마현을 중심으로 발전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케부쿠로의 세이부선 승강장 곳곳에는 프로야구 구단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 포스터가 붙어 있다. 한국의 삼성 라이온즈와 비슷한 유니폼과 로고가 인상적이다.
복잡한 이케부쿠로 역에서 세이부 승강장을 찾아 사이타마현의 가와고에시로 향했다. 이케부쿠로 역에서 가와고에역까지는 특급열차로 약 30분 거리다. 혼가와고에역까지는 세이부 신주쿠선을 이용할 수 있는데, 약 55분 거리다. 이케부쿠로에서 출발하면 45분 가량 걸린다. 외국인 관광객은 가와고에 디스카운트 패스 일일권을 구입해 기차를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다. 가와고에시는 '작은 에도'로 불리는 곳이 있다. 에도 시대의 분위기가 잘 보존돼 있어서다. 도쿄는 숱한 대지진을 거치며 재건된 도시이기 때문에 에도 시대의 향취를 찾을 수 있는 곳이 많지 않다. 소에도의 목조 건축물 틈에는 이 곳의 상징인 종탑이 있다. 종탑은 근대의 산물이다.
19세기 후반 전 세계에 철도가 개통되면서 시간들이 통일되기 시작했다. 철도가 주요한 이동수단이 되고, 철도의 이동이 전 세계의 산업화를 촉진시키기 전까지, 시간은 상대적이다. 이를테면 지구는 분당 20킬로미터를 이동한다. 강릉에서 정오를 알리는 종을 칠 때, 서울에선 정오까지 10분을 더 기다려야 한다. 한국 뿐 아니라 세계 곳곳의 시간은 공간에 따라 다르다. 정오를 알리는 종은 지구의 자전에 따라 순차적으로 울리게 될 것이다. 하지만 강릉역에서 서울역으로 이동할 때, 강릉과 서울의 시간은 같아야 한다. 이것이 표준시의 탄생 배경이다. 시간을 세는 방식을 수치로 표현하고, 이 수치를 통일시켜야, 모스크바에서 블라디보스톡으로 이동하는 승객은 헷갈리지 않는다. 시간선에 맞춰 시간을 조정하면, 그 구역에서는 '약속된 시간'이 통용되는 것이다. (박흥수, <달리는 철도에서 본 세계> 167페이지 참조)
가와고에의 종탑이 기차 시간을 알리기 위해 사용된 것은 아니지만, 근대에 들어오며 하루 네 번 울리는 종 소리는 당시 일본의 중심지였던 도쿄를 중심으로 정해진 시간에 맞춰졌을 것이다. 시간의 표준화는 인간의 노동을 세분화하기에도 유용한 것이었다. 에도시대를 벗어나 근대의 시간으로 들어가는 관문의 문지기처럼 가와고에의 종탑은 그렇게 서 있었다.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 얘기를 하다보니 얼마 전 한국을 들썩이게 만들었던 고시엔 구장의 '한국어 교가'가 떠오른다. 재일 한국계 민족학교인 교토국제고가 '여름 고시엔(甲子園)'으로 불리는 일본 전국고교야구선수권대회에서 처음으로 우승한 장소가 일본 효고현 니시노미야시에 소재한 한신고시엔구장이다. '고시엔' 구장에 대한 이야기나, 일본 프로야구의 최고 인기팀 중 하나인 한신 타이거즈에 대한 이야기는 많이 들어봤다. 한신 타이거즈 소유 회사가 철도 회사라는 것도 아는 사람은 아는 얘기지만, 일본의 사철 얘기를 할 때 빠질 수 없는 얘기이기도 하다.
한신 타이거즈의 모회사는 한신전철이다. 일본의 16개 대형 사철의 하나로 이 회사의 원래 사업은 한큐 고베 본선이다. 철도 노선 규모로만 보면 대형 사철로 보기에 애매하지만, 이 회사의 인기 구단 한신 타이거즈가 끼어들면 다른 이야기가 된다. 한신 전철이 운영하는 고시엔역은 한신 타이거즈 경기를 보기 위한 이용객으로 북적인다. 한신 타이거즈 경기가 열리는 날이면 증편해서 운영하고 승객들을 꽉꽉 채워 실어 나른다. 고시엔 구장에서 야구 경기를 보려는 사람들은 한신 백화점에서 쇼핑을 한다. ‘야구로 철도 장사를 한다’는 말이나, ‘한신철도 주가가 한신 타이거즈 경기 성적에 따라 오르락 내리락 한다’는 말도 우스개 소리만은 아니다. 라이온즈 구단을 운영하는 세이부 철도가 한신 철도의 영업 방식을 따라했다는 말도 있다.
오다큐나 세이부, 한신전철의 사례는 일본의 사철 회사들이 갖는 위상을 잘 보여주는 사례라고 볼 수 있겠다. 그렇다고 '민간 철도 회사'의 경쟁력 운운하는 것은 번지수를 잘못 잡아도 한참 잘못 잡는 일이다. 일본의 철도와 한국의 철도가 밟아온 길이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일제 시대 일본 자본이 한국의 자산과 노동력을 강도질해 건설한 한국 철도는 만약 식민지배가 성공했다면 일본의 '본토 외 대형 사철'로 만주 철도와 함께 분류됐을 것이다. 물론 이는 고약한 상상이지만. 한국 철도는 일제 패망 후 '적산'을 인수하면서 국철로 시작했다. 전쟁으로 초토화된 국토에서 시작한 한국의 산업 발전 시기는 에도 시대 부를 쌓은 걸 토대로 전쟁을 벌이면서 커온 일본의 근대 산업화와 애초에 출발점이 다르다.
1편에서 언급했듯, 일본은 '오야토이 가이코쿠진'(お雇い外国人, 정부 고용 외국인)을 거액을 들여 고용해 영국의 선진 철도 기술을 적극적으로 흡수했다. 그때 일본 정치 체제는 변혁을 맞고 있었다. 막부 시대가 막을 내리고 중앙집권 체제인 천황 중심의 메이지 시대가 시작됐지만, 과거 막부를 호령하던 일본의 호전적 사무라이들은 불만이 많았다. 메이지 초기 사쓰마번에서 사이고 다카모리가 중심이 돼 세이난 반란이 발생한다. 메이지 정부는 이 반란을 제압하느라 막대한 재정을 써야 했다. 국가 산업 발전을 위해 철도망을 부설해야 했지만, 돈이 부족했다. 결국 메이지 정부가 철도 인프라 구축 계획을 세우고, 그 비용은 민간 자본에 맡기는 형태로 사업들이 추진됐다.
사기업인 니폰 철도, 간사이 철도, 산요 철도, 규슈 철도, 홋카이도 탄광 철도의 '빅5'가 주체가 됐다. 이 민간 자본들은 막부 시대를 지탱했던 지방 영주인 다이묘들이었다. 메이지 정부는 이들을 포섭하고 메이지 유신의 밑거름이 되도록 하기 위해 다이묘들에게 귀족의 지위를 부여하고 지역 광산 채굴권 등의 특혜를 줬다. 이 과정에서 자이바쓰, 즉 재벌이 탄생했다. 일본 자본주의가 갖는 특수한 경우다. 지역 재벌들은 정부의 계획에 따라 사철을 만들고 돈을 벌어 부를 쌓았다. (박흥수 <달리는 철도에서 본 세계> 298페이지 참조)
일본 철도는 크게 사철과 JR계열 철도로 나뉜다. 사철이 메이지 시대부터 독특한 '정부 주도 성장' 방식의 수혜를 받고 일본의 재벌 대기업으로 성장했다면, 일본의 국철 JR이 모태였던 JR 계열 철도는 1987년을 기점으로 (철도 운영사 기준) 6개의 민영 철도 회사로 쪼개진다. 지금 JR 계열 철도 회사들은 모두 민영 회사다.
일본은 근대 초기부터 사철을 지원하고 발전시켜 왔기 때문에 민영화의 모델도 사철의 운영 형태를 따라하게 됐다. 하지만 한국은 국철 체제로 산업화를 일궜다. 사철 회사들이 벌이는 사업은 철도가 주력이면서도 주력이 아닌 (한국인의 입장에서 보면) 희한한 형태다. 일본의 사철 회사들은 대개 거대 부동산 유통 레저 회사인데다, 한국의 재벌 회사들처럼 돈이 되는 사업이라면 온갖 곳에 손을 댔다. JR의 분할이 가능했던 이유도 국철이 소유한 재산들을 선로 분할 과정에서 JR계열 회사들에 그대로 나눠 줬기 때문이다. 한국처럼 시설과 운영을 분리(상하분리)하고, 똑같은 노선을 운영하는 SR 이라는 자회사를 만들어 기형적인 경쟁을 시킨 게 아니라, 지역별로 철도 권역을 나눠 해당 지역에서 사실상 독점이 가능하도록 만들어 줬다. 그리고 각 JR 계열 회사에 부동산 자산과 자본을 배분해 스스로 다양한 사업 영위가 가능케 만들었다. 지금 JR동일본의 경우는 철도 회사이면서 버스 회사이고, 종합 유통 회사이자, 열차까지 직접 만드는 회사이면서 부동산 회사이고, 또 레저 회사이기도 하다. 일본 전역의 배편들도 JR 계열의 크루즈 회사들이 운영하는 모습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한국의 철도 민영화론자들은 코레일을 기업에 팔아 넘기려 하지, 코레일이 롯데나 신세계 같은 기업처럼 성장시키거나, 코레일이 민간 유통회사처럼 사업하길 원하지 않는다. 애초에 한국 철도와 일본 철도의 역사는 그 뿌리가 다르다. 한국의 철도 민영화론자들이 영국을 참조하면서도 일본의 민영화 사례를 절대 들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박세열 기자(=도쿄)(ilys123@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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