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만 때리는 상사는 없어요, 112에 신고하세요

한겨레 입력 2022. 11. 25. 22:05 수정 2022. 11. 26. 0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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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S] 쩜형의 까칠한 갑질상담소][한겨레S] 쩜형의 까칠한 갑질상담소
사내 폭행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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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얼마 전 회사에서 팀장에게 주먹으로 맞았습니다. 평소 폭언이 심하고, 물건을 던지기도 했습니다. 코로나19 확진 사실을 말하지 못하게 하고 출근시키기도 했습니다. 신체적인 폭행의 직접적인 피해자가 저를 포함해 4명입니다. 최근에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있다는 걸 알게 돼 노동청에 진정을 넣었는데, 가해자가 폭행 사실을 부인하며 기억나지 않는다고 합니다. 폭행 장소에 시시티브이(CCTV)는 없었지만 목격자는 있었는데 그 직원이 신분 노출을 두려워합니다. 어떻게 해야 하나요? (2022년 11월. 닉네임 아휴)

갑질의 최고봉, 폭행​

A. 헐, 미친 팀장이네요. 화나면 욕하고, 물건을 집어던지고, 주먹까지 휘두르는 상사라니. 코로나19 걸린 직원을 불법으로 출근시켰다는 데서는 말문이 탁 막힙니다. 폭행의 직접적인 피해자가 4명이나 되는데 지금껏 아무도 신고하지 않았다는 사실도 충격적이고요.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시행된 지 3년이 넘었는데, 아휴님이 여태껏 법을 모르고 있었다는 게 씁쓸하고 속상합니다.

5년쯤 전이었어요. 2018년 3월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딸 조현민 대한항공 전무가 질문에 답변을 못 했다고 광고업체 직원에게 소리 지르며 컵을 던진 이른바 ‘물컵 갑질’ 사건을 일으켜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습니다. 4월에는 조 회장 부인 이명희 일우재단 이사장이 건설 현장에서 여직원을 쫓아가 폭행하는 ‘공사장 난동’ 영상과 직원 상습 폭행이 폭로됐습니다.

이런 사회적인 분위기 속에서,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는 9월 초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을 통과시켰습니다. 하지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뜻밖의 암초를 만납니다. 장제원 의원(오늘날의 ‘윤핵관’이죠)과 이완영 의원이 “괴롭힘의 정의가 모호하다”며 법을 ‘법안의 무덤’이라 불리는 법안심사 제2소위로 넘긴 겁니다. 그러다 10월 말 양진호 한국미래기술 회장이 ‘몰카 제국 황제’로 군림하면서 직원을 무릎 꿇리고 수차례 뺨을 때린 영상이 공개돼 감옥에 갔습니다. 국회가, 이런 일을 막을 수 있는 법안을 만들어놓고도 서랍 속에 처박아두고 있다는 비판이 들끓었죠. 결국 이 법은 무덤에서 살아 돌아와 그해 말 국회를 통과했고, 2019년 7월부터 시행됐습니다. 조현민·이명희·양진호 ‘갑질 트리오’의 혁혁한 공로라 하겠습니다.

직장갑질119가 올 9월 여론조사 전문기관 엠브레인퍼블릭에 의뢰해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지난 1년 동안 직장 내 괴롭힘을 경험했다는 응답이 29.1%였습니다. 갑질 경험은 법이 시행된 직후인 2019년 9월 44.5%에서 최근 29.1%로 3년 만에 15.4%포인트가 줄었습니다. 법 시행 후 직장 내 괴롭힘이 줄어들었냐는 질문에도 57.6%가 ‘줄었다’고 응답해 2019년 9월(39.2%)에 비해 크게 늘었습니다. 하지만 직장 내 괴롭힘 경험자에게 괴롭힘 수준을 물어본 결과는 ‘심각하다’가 35.4%로 2019년 9월 조사(38.2%)와 비슷했습니다.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시행과 사회적 인식 변화로 갑질은 줄었지만 심각성은 줄지 않고 있다는 뜻입니다.

갑질의 최고봉인 폭행도 여전합니다. 고용노동부에 신고된 직장 내 괴롭힘 중 폭행은 2020년 190건, 2021년 240건, 2022년 8월까지 153건이었습니다. 매년 200여건의 직장 폭행이 노동부에 신고되고 있다니, 무슨 ‘쌍팔년도’도 아니고. 대한민국 직장이 군대보다 더합니다.

2020년 7월 법 시행 1주년을 맞아 고용노동부가 주최한 토론회에 발제자로 참가했습니다. 쌍욕을 하는 사장 녹음파일을 틀어주면서 당시 이재갑 노동부 장관에게 “장관님, 사장이 쌍욕하고 폭행하는 회사가 노동법은 지킬까요? 욕하고 때리는 회사를 특별근로감독 하면 좀 줄어들지 않을까요?”라고 제안했습니다. 문재인 정부는 ‘쌩’깠는데, 이 정부의 노동계 출신 이정식 장관은 다를까요?

소주병으로 때린 대표

직장갑질119 제보 사례를 보면 딱 한번 때린 사장, 상사는 없었어요. 지난겨울 직장갑질119에 한 장의 사진이 날아들었습니다. 젊은 남성의 눈이 시커멓게 부풀어 있었습니다. 피트니스센터 회식 자리에서 대표가 소주병으로 얼굴을 때려 눈구멍이 부러져 전치 8주 진단을 받고 수술을 했답니다. 대표는 술만 먹으면 군기를 잡는다면서 강사들에게 손찌검을 일삼았다고 해요. 소주병 폭행은 피트니스센터 대청소를 마치고 이어진 2차 술자리에서 벌어졌습니다. 대표는 피해자에게 치료비를 줄 테니 병원 가면 넘어져서 다쳤다고 둘러대라고 했습니다. 정신이 번쩍 든 피해자는 직장갑질119에 제보하고 경찰과 노동청에 신고했습니다. 노동청에서는 대표와 강사가 근로계약이 아닌 프리랜서 계약을 했고, 2차 회식은 근로의 연속으로 보기 어려워 근로기준법상 폭행죄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다행히 퇴사한 직원들이 상습 폭행을 당했다는 진술서를 써줘서 대표를 법정에 세울 수 있게 됐고, 폭행의 악순환을 끊을 수 있게 됐습니다.

아휴님, 당장 병원에 가서 진단서부터 끊으세요. 그리고 팀장에게 폭행당한 시간과 장소, 당시 상황을 자세하게 정리하시고요. 피해자가 4명이라고 하셨잖아요. 다른 피해자들과 전화나 카카오톡으로 팀장이 폭언·폭행했던 이야기를 하면서 녹음하세요. 노동청에 증거 제출하실 때 근로감독관에게 동료 신원을 철저히 보호해달라고 하시면 됩니다. 근로감독관과의 대화도 녹음하시고요.

혹시 팀장이 인사부장 등 근로기준법상 사용자(사업주 또는 사업 경영 담당자, 그 밖에 근로자에 관한 사항에 대하여 사업주를 위하여 행위하는 자)에 해당한다면 감독관에게 근로기준법 제8조(폭행 금지)로 처벌해달라고 하세요. 형법상 폭행죄(2년 이하 징역)보다 높은 5년 이하 징역에 처할 수 있습니다. 경찰에 형법상 폭행죄로도 신고하시고요. 폭행과 직장 내 괴롭힘을 인정받고, 산재 신청도 하고, 회사와 가해자 상대로 민사상 손해배상 소송도 하세요. 지금이 어느 시절인데 ‘이 ×× 저 ××’ 욕하고 직원을 때립니까?

아휴님 경우처럼 가해자들은 시간이 지나면 폭행 사실을 부인합니다. 폭행당했을 땐 바로 112에 신고하세요. 경찰 금세 옵니다. 그럼 신고 자체가 증거가 될 수 있어서 발뺌 못 해요. 회사에서 맞았다고요? 직장갑질119 말고 112.

박점규 직장갑질119 운영위원

민주노총, 금속노조에서 활동하며 잔뼈가 굵었다. ‘비정규직 없는 세상 만들기’를 만들어 본격적으로 비정규직·사내하청 운동에 뛰어들었고, 직장갑질119에선 평범한 직장인들이 일상적으로 겪는 노동권·인권 침해에 대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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