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시와 동시에 단종' 되면서 감가 때려 맞고 중고차로 인기 폭발한 준중형 세단

2015년 '어메이징 뉴 크루즈'로 국내 소비자들이 충격에 빠져있는 사이 본고장 미국에서는 2세대 크루즈가 모습을 드러냈고, 2년 뒤 2017년 국내 시장에 정식으로 출시됐습니다. 선대 모델이 쌓아올린 좋은 이미지와 앞서 출시된 신형 말리부가 기대 이상의 상품성으로 중형차 시장의 새강자로 떠오르면서 신형 크루즈에 갖는 기대감 역시 상당했어요. GM 대우가 주도하고 오펠이 참여했던 전작과 달리, 이번에는 오펠이 전담 해 개발을 진행했고 간판 모델인 해치백 '아스트라'의 형제차로 함께 개발됐죠.

외관은 묵직하고 견고한 이미지였던 전작과 달리 날렵하고 경쾌한 분위기로 거듭났습니다. 헤드램프와 그릴의 높이를 낮추면서 낮게 깔린 전면부는 실제 폭에 비해 넓어 보였고, LED 주간주행등을 품은 날카로운 헤드램프는 공격적인 인상이었어요. 이번에도 'HID'는 빠졌죠.

동급에서 가장 긴 전장을 자랑하는 늘씬한 측면은 전작에서 이어진 쿠페 스타일의 루프 라인, '캡포워드' 스타일로 한껏 누운 전면 유리창과 쐐기형 캐릭터 라인으로 금방이라도 튀어나갈 듯 스포티한 분위기였습니다.

강렬한 앞모습과 옆모습에 비해 후면부는 다소 밋밋한 인상이었는데, 최대한 스포티하게 보이기 위해 범퍼 디자인에 힘을 줬지만 오로지 벌브 타입으로 구성한 리어램프가 문제였어요. 크루즈보다 더한 사골 제품이었던 SM3도 리어램프를 LED로 바꾸니까 그나마 신차처럼 보였다는 걸 떠올리면 별거 아닌 것 같지만 이게 참 별거예요. 지나치게 내실에 집중하다 보니 정작 포장지에 신경을 쓰지 못해 상품 자체가 주목을 받지 못하는 느낌이랄까요?

외관은 대체로 잘생겼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는데 전작과는 분위기가 판이하게 달라지면서 1세대의 옹골찬 느낌을 선호했던 일부 소비자들은 지나치게 가벼워 보인다며 아쉽다는 평가를 하기도 했습니다.

개인적으로 YF 소나타의 후속이라고 해도 믿을 수 있을 것 같았던 올 뉴 말리부와 마찬가지로 아반떼 후속보다 더 아반떼스러워 보이더라고요.

실내는 '캡포워드'의 장점을 확실히 체감할 수 있었습니다. 랩 어라운드와 좌우대칭 구조를 사용한 것은 전작과 동일했지만, 넓은 면적의 윈드실드에 A필러 쪽창이 더해지면서 개방감이 상당히 좋아졌어요. 덕분에 닦아야 하는 범위도 넓어져서 와이퍼 암이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는 일반적인 '탠덤' 방식이 아닌 버스에서나 보던 '대향형 와이퍼'가 장착됐죠.

전작에서 좋은 반응을 얻었던 대시보드 가죽 마감은 범위를 크게 넓혀 한층 고급스러워졌고, 단정해진 계기판은 중앙에 자리한 LCD 정보창의 크기를 키워 주행에 필요한 다양한 정보를 쉽게 제공했죠. 불만이었던 스티어링 휠 열선도 드디어 들어왔어요.

내비게이션의 구린 성능은 여전했지만 중저음이 돋보이는 9개 스피커의 보스 프리미엄 사운드가 대신 달래줬고, 개선된 마이링크 시스템으로 애플 카플레이와 안드로이드 오토를 지원하면서 불만은 크지 않았습니다. 스마트폰 무선 충전 장치도 트렌드를 충실히 따른 부분이었죠.

여기에 전방 충돌 경고, 사각지대 경고, 차선이탈 방지 보조 등 최신 주행 안전 사양도 경쟁차 못지 않게 채웠습니다. 쉐보레 차에 폭넓게 적용된 헤드업 LED 경고등은 간단하면서도 기발한 기능인 것 같아요.

또 기어레버가 돋보였는데요. 수동 모드로 조작할 때 꼼지락거려야 하는 엄지 버튼 대신 기어 레버를 직접 움직이는 직관적인 방식을 채택했습니다. 이거 잘 개발해놓고 왜 다른 차에는 안 넣었는지 참 의문이네요.

늘어난 휠 베이스 덕에 뒷좌석 공간은 전작보다 넉넉해졌고 넓은 방석으로 만족스러운 착좌감을 제공했지만, 경쟁차에는 있는 에어벤트와 열선 시트가 빠져있는 등 쉐보레 특유의 나사 빠진 패키징은 여전했습니다. 앞좌석 통풍 시트가 없을 때부터 '아차' 싶더라고요.

파워트레인도 새로워졌습니다. 1.4L 터보 가솔린과 나중에 추가된 1.6L 디젤, 두 가지 엔진에 3세대 6단 자동 변속기를 맞물려 안정적인 성능을 제공했어요.

특히 주력인 1.4L 터보 모델은 연료 분사 방식부터 소재까지 변경한 신형 엔진을 탑재해 생김새에 걸맞는 경쾌한 주행이 가능했습니다. 'R-EPS'를 기본 사양으로 갖춰 안정적인 핸들링 을 뽐냈고 'Gen3' 자동 변속기는 보완된 품질과는 별개로 변함없이 느긋한 기어비와 저속에서 꿀렁임을 선사했지만, 전보다는 훨씬 나아졌다는 평가가 대부분이었고, 지긋이 달리고 지긋이 멈추는 특유의 페달 감각은 수입차에 가까웠어요.

담력이 초반에 몰려있어 경쾌하게 튀어나가고, 꽂히듯 섰던 현대-기아차에 익숙해진 일부 소비자들은 굼뜨다거나 밀린다고 느끼기도 했지만, 약간의 적응기를 거치면 대부분 해결됐습니다. 가다서다를 반복하고 시내 주행 비율이 높은 우리나라 도로 환경 특성상 가속 성능은 직전 모델의 평가와 큰 차이가 없었지만, 정속 및 고속 주행이 잦은 외곽이나 지방 도시의 주행 환경에서는 6단을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었기 때문에 주행 환경에 따라 소비자들의 평가가 크게 엇갈렸습니다.

디젤 모델은 '인터넷 슈퍼카'로 군림하던 전작만큼의 임팩트는 없었지만 효율이 눈에 띄게 좋아지면서 중장거리 운행이 많은 소비자들에게 환영받을 만한 구성이었죠. 특히, 신형 플랫폼을 적용하면서 전체적으로 100kg 가까이 경량화를 이뤄냈음에도 여전히 충분한 강성을 확보해 든든한 안전성과 차급 이상의 묵직하고 쫀득한 승차감을 제공했습니다. 연비도 덩달아 좋아졌어요.

2세대 '올 뉴 크루즈'는 크루즈라는 이름에 기대하는 탄탄한 주행 성능, 보완된 상품성으로 무장했지만, '올 뉴 말리부'만큼 좋은 반응을 이끌어내지 못했습니다. 강력한 세일즈 포인트가 될 것만 같았던 독일 '오펠'이 개발을 맡은 것이 외려 자충수로 작용했는데요. 유럽 입맛에 맞춰 개발되다 보니 필요 이상으로 고급 부품이 많이 적용됐고, 결과적으로 원가가 함께 상승하면서 경쟁차에 비해 200만 원 이상 비싼 가격으로 출시됐어요.

차가 좋냐, 나쁘냐를 떠나 100만 원, 200만 원이 차급을 가르는 준중형차 특성상 환영받기 힘든 가격이었습니다. 덕분에 신차 효과를 누리기는커녕 출시 첫해 누적 판매량이 1만 대를 겨우 넘기는 충격적인 판매량을 기록했습니다. 길에서 보기 어려운 이유가 있었어요.

이런 분위기는 해외 시장에서도 동일했는데요. 신차 출시 이후에도 오히려 판매량이 크게 떨어진 것은 물론 홈그라운드인 북미에서마저 현대 아반떼에 밀리면서 체면을 제대로 구겼죠.

신차 트렌드가 크로스오버로 넘어감에 따라 자연스러운 하락이라고 볼 수도 있었지만, 경쟁차의 판매량을 함께 살펴보면 오로지 트렌드 때문이라고 할 수는 없었습니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같이 실망한 모양이었죠.

결국 GM은 세단 라인업을 정리하고 크로스오버 및 전기차 시장에 집중하기로 결정, 출시 1년 만에 신형 크루즈가 단종되고 동시에 크루즈와 올란도를 생산하던 한국GM 군산 공장까지 함께 문을 닫는 청천벽력 같은 일이 벌어졌습니다. 세단 선호도가 높은 일부 시장에서 판매는 계속됐지만, 군산 공장이 소화했던 수출 물량도 주요 수출국에 잇따라 세워진 현지 공장에서 직접 생산하게 되면서 한국GM의 수출 실적도 큰폭으로 줄어들었죠. 오히려 세단보다 예쁘게 만들어진 해치백 모델을 구경도 못해 본 게 참 아쉽네요.

한편, '출시와 동시에 단종'이라는 타이틀이 붙으면서 당연하게도 감가 방어가 어려웠고 다행인지 불행인지 '임팔라', '말리부'와 함께 가성비 좋은 중고차로는 한때 인기를 끌었습니다.

다행히 이 시기 대부분의 쉐보레 차량들이 공유하는 냉각수 누수 문제를 제외하면 특별히 알려진 잔고장이나 고질병은 아직까지 없습니다만, 큰 인기를 끌었던 전작에 비해 상대적으로 판매 대수가 적다 보니 당연히 부품 재고가 넉넉하진 않겠죠.

다행히 파워트레인은 공유하는 차들이 많다 보니 어렵지 않다고 하는데, 이 크루즈만을 위해 제작되는 일부 파츠들은 수급이 원활하지 않은 경우가 있는 모양이더라구요. 중고차 구매하실 분들은 이 부분을 감안하시면 되겠습니다.

지금까지 GM대우의 첫 번째 신차이자 GM 소속 세단 중 가장 많은 글로벌 판매량을 기록했던 라세티, '쉐보레 크루즈'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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