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라왕' 사건에서 시작한 위장결혼 영화, 어떤 이야기 보여주나?

▲ 영화 <한 채> ⓒ 씨네소파

[영화 알려줌] <한 채> (The Berefts, 2024)

"집 한 채를 얻는 게 인생의 최대 목표가 되어버린 시대, 우리는 과연 무엇을 잃어버린 걸까?"

지난해 열린 28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비전' 부문 최고상인 LG올레드 비전상과 시민평론가상을 수상하며 화제를 모은 영화 <한 채>가 던지는 질문이다.

정범, 허장 감독이 공동 연출한 이 작품은 위장결혼을 통해 신혼부부 특별공급 아파트를 분양받으려는 두 가족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그려내며 '집'이라는 물리적 공간 너머의 진정한 '한 채'의 의미를 탐색한다.

빌라왕 사건과 위장결혼이라는 사회적 이슈에서 모티브를 얻은 이 영화는, 지적장애가 있는 딸 '고은'(이수정)을 홀로 키우는 아버지 '문호'(임후성)와 어린 딸 '사랑'을 키우는 젊은 아버지 '도경'(이도진)이 만나면서 시작된다.

이들은 각자의 상처와 결핍을 안은 채 '브로커'(이주형)를 통해 위장결혼을 계획하지만,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관계가 발전하면서 새로운 형태의 가족을 이루게 된다.

<한 채>에서 주목할 만한 것은 배우들의 압도적인 현실감과 영화의 섬세한 연출 방식이다.

연극 연출가이자 시인으로 활동해 온 임후성은 영화 데뷔작임에도 불구하고, 딸을 위해 모든 것을 걸고 살아가는 아버지 '문호'를 깊이 있게 표현한다.

"현재는 나의 것이 아니고, 미래는 모두 '고은'의 것"이라는 그의 말처럼, 임후성은 자신의 삶을 내려놓은 채 오직 딸의 미래만을 바라보는 아버지의 모습을 섬세하게 그려낸다.

첫 장편 주연을 맡은 이수정은 지적장애가 있는 '고은' 역할을 위해 다큐멘터리 연구에 몰두했다고 한다.

"기존 캐릭터들을 참고하는 대신 세상에 없는 '고은'을 만들고 싶었다"는 이수정의 말처럼, 과장되지 않은 자연스러운 연기로 캐릭터에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이어 이도진은 생계를 위해 고군분투하는 청년 아버지 '도경'을 통해 현시대 젊은 세대의 고단함을 대변한다.

"'도경'은 나보다 더 직설적이고 이기적이지만, 결국 그 모든 것이 내 안에도 있더라"라는 그의 인터뷰처럼, 배우는 캐릭터와의 진정성 있는 교감을 통해 설득력 있는 연기를 선보인다.

두 감독의 연출적 선택도 흥미롭다. 대리운전 기사와의 싸움이나 택배 분실을 둘러싼 갈등 같은 주요 장면들에서 대사를 최소화하고 상황 자체에 집중하는 연출은 오히려 더 강렬한 긴장감을 자아낸다.

"촬영과 연기와 시나리오가 거의 한 박자에 어울려 추는 춤"이라는 임후성의 표현처럼, 20회가 넘는 리허설을 통해 배우들과 함께 장면을 발전시켜 나간 작업 방식은 영화에 자연스러운 호흡을 불어넣었다.

카메라워크와 프레임 구성에서도 감독들의 의도가 엿보인다.

아버지의 뒷모습을 자주 포착하는 것은 "항상 가족을 짊어지고, 항상 희생하는 삶"에 대한 정범 감독의 개인적 경험이 반영된 것이며, 인물을 화면 가득 담아내는 방식은 비좁은 현실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장치다.

이 영화의 또 다른 특징은 '캐주얼 시네마' 방식의 도입이다.

정범, 허장 두 감독은 저예산 제작 환경을 극복하기 위해 미니멀한 시스템을 구축하고, 불필요한 요소들을 과감히 덜어내는 방식을 선택했다.

초기 2시간 30분 정도였던 러닝타임을 90분으로 압축하는 과정에서도, 서사적 설명보다 공간적 편집에 중점을 둔 것이 이러한 맥락이다.

특히 '문호'의 형 역할을 정범 감독의 실제 아버지가, '도경'의 딸 역할을 이도진의 실제 딸이 맡는 등 비전문 배우들의 참여는 영화의 리얼리티를 한층 끌어올린다.

예술적 탐구에 능한 정범 감독과 복잡한 상황을 명료하게 정리하는 데 탁월한 허장 감독의 시너지는 영화의 예술성과 대중성을 모두 충족시키는 결과로 이어졌다.

<한 채>의 영어 제목 'The Berefts'가 의미하는 것처럼, 각자의 상실과 결핍을 안고 살아가는 인물들은 서로의 빈자리를 채우며 새로운 형태의 가족을 이룬다.

그렇게 <한 채>는 주거난과 고용불안 등 현실의 고단함 속에서도 진정한 '집'의 의미를 잃지 않으려 노력하는 우리 모두에게 건네는 따뜻한 위로가 될 것이다.

마치 '도경'이 말한 것처럼, "완벽하지 않아도 된다"는, 그래서 오히려 더 진실한 삶의 이야기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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