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성 잊지 마” 홈런 에드먼, 오타니와 ‘겸손 하이 터치’

LA 다저스 공식 SNS 캡처

낯선데 익숙한 하이 파이브

어제 경기였다. 인상적인 장면이 있다. (한국시간 9일 다저 스타디움, LA 다저스 – 필라델피아 필리스 NLDS 3차전)

3회 말 홈 팀의 공격이다. 원정 팀이 투수를 바꾼다. 좌완 레인저 수아레스가 마운드에 오른다.

스코어는 아직 0-0이다. 1점도 안 줬지만, 선발을 내린 것이다. 추호도 여지는 없다. 냉정하고, 치열하게 가겠다. 그런 의지가 역력하다.

가장 약한 9번 타자 차례다. 주자도 없다. ‘홀가분한 상태에서 출발하라.’ 교체 타이밍에는 그런 배려가 담겼다.

하지만 웬걸. 천만에, 만만에다. 새 투수의 초구가 재앙을 부른다. 92.8마일(149㎞) 짜리 포심 패스트볼이 어정쩡하게 몰린다. 가운데 조금 높은 코스다.

그런 공이 용서받을 리 없다. 완벽한 스윙에 제대로 걸렸다. 타구는 좌중간으로 까마득히 솟는다. 출구속도 100.6마일(162㎞), 발사각도 25도로 날아간다. 그리고 순식간에 관중석으로 사라진다.

승부의 균형을 깨는 솔로 홈런이다.

5만 개가 넘는 환호가 터진다(유료관중 5만 3689명). 스타디움이 들썩거릴 정도다. 주인공 토미 에드먼은 담담하게 베이스를 돈다. 그 위로 뜨거운 갈채가 쏟아진다.

홈을 밟는 순간이다. 기다리던 다음 타자 오타니 쇼헤이가 환영 인사를 건넨다. 그런데 묘하다. 흔히 보던 방식이 아니다. 격렬하고, 화려한 표현이 아니다. 다소곳하고, 예의 바르다.

맞다. 우리 기억에는 생생한 모습이다. 바로 김혜성의 세리머니다.

그건 전형적인 미국식이 아니다. 겸손한 한국의 예절이 담겼다. 왼손으로 오른손을 떠받친다. 두 손으로 하는, 이른바 ‘공손한 하이 파이브(하이 터치)’다.

유튜브 채널 MLB 캡처

5월 어느 날의 덕아웃 풍경

등장인물 = 김혜성(26), 토마스 현수 에드먼(30), 오타니 쇼헤이(31)

지난 5월이다. 아직 평화로운 경기 전이다. 덕아웃 풍경이 눈길을 끈다.

토마스 “이게 무슨 의미임?”

쇼헤이 “글쎄, 혜성이 하길래 따라 해 본 거임.”

전날 이상한 행동에 대한 얘기다. 루키(혜성)가 데뷔 첫 홈런을 치던 날이다. 홈에 들어오며 ‘야릇한’ 세리머니를 연출한다. 두 손으로 하이 터치(파이브)를 한 것이다. 당시도 맞이한 타자는 오타니였다.
한국의 피가 흐르는 에드먼이다. 그도 처음 보는 행동이다. 궁금함을 참을 수 없다. 그래서 취재가 시작된 것이다.

결국 당사자가 소환된다. 친절한 설명이 뒤따른다. 루키의 얘기를 재구성하면 이런 말이다.

혜성 “그러니까 말이죠. (하이 파이브를) 한 손으로 하는 건 친구나 후배에게나 가능하죠. 하늘 같은 선배에게는 공손하게 두 손을 올려야 맞죠. 그래야 예의와 격식을 갖추는 겁니다.”

물론 언어의 한계가 있다. 몸짓까지 동원된다. 건방진 후배가 혼나는 장면도 연출된다.

혜성 “선배에게 제대로 예를 갖추지 못하면 큰 일 나요. 이렇게 허리춤에 손을 올리고 후배를 교육시키죠.”

그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는 오타니다. 예절 하면 그 아닌가. 흐뭇한 웃음이 떠나질 않는다.

유튜브 채널 InathoOhtani 캡처
유튜브 채널 InathoOhtani 캡처
유튜브 채널 InathoOhtani 캡처

5게임째 연수생 모드

NLDS 3차전까지 5게임째다. 다저스의 가을이 깊어진다. 그럴수록 매번 총력전이다.

2차전까지는 그렇다 치자. 연승 중이었으니, 변화를 줄 이유가 없었다. 대주자가 꼭 필요한 상황도 나오지 않았다.

그런데 어제(한국시간 9일)는 다르다. 한때 7점 차이(1-8)로 벌어졌다. 후반에는 버리는 경기가 됐다. 자연스럽게 벤치 멤버들이 나서야 했다.

대타, 대수비 요원들을 가동했다. 9회 저스틴 딘 타석에는 나올 법했다. 하지만 그때도 불린 이름은 달튼 러싱이었다. 결과는 파울팁 삼진이다.

로스터에 있는 야수는 모두 소진했다. 딱 1명만 빠졌다. 김혜성이다.

이를 두고 국내 여론이 부글거린다. ‘맨날 몸만 푸냐.’ ‘왜 안 쓰냐.’ ‘연수생이냐.’ 등등의 뒷말이 나온다. 틀린 얘기 하나도 없다. 감독을 향한 못마땅함도 끄덕여진다.

그러나, 그런데, 그럼에도.

<…구라다> 생각은 다르다.

1-8에서 굳이? 안 나가도 그만이다. 그깟 가비지 타임은 필요 없다. 안 내보내 준다고 볼멘소리 할 일 아니다.

이미 승부가 기운 게임이다. 그런 상황에서 기껏 한 타석 친다고 달라질 것 없다. 1이닝 정도 수비한다고 나아질 것도 없다. 큰 경기 경험은 이미 충분하다. 명색이 태극마크를 가슴에 달았던 내야수다.

LA 다저스 공식 SNS 캡처

강렬한 씬 스틸러를 기대한다

올 가을 그의 역할은 분명하다. 둘 중 하나다. 혹시나 공백이 생기면 그 자리를 메워주는 일이다. 주전 야수들의 부상이 많다. 비상 대기 상태로 잘 기다리고 있으면 된다.

다른 하나도 확실하다. (사실은 이게 더 기대가 된다.) 씬 스틸러 역할이다. 그것도 딱 한 컷이다. 결정적인 타이밍에 등장한다. 거기서 확실하고, 강렬하게 해내면 된다.

대주자가 됐든, 대타가 됐든, 마찬가지다. 그걸로 충분하다. 이번 가을에 깊은 인상을 남길 수 있다.

결정적인 시간은 반드시 온다. 그러려면 잘 버텨야 한다. 적당한 긴장과 충전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 사소한 투덜거림은 멀리해야 한다. 괜한 감정 소모도 거리를 둬야 한다.

물론 믿는다. 그게 그가 잘하는 일이다. 이제껏 그래왔다.

언젠가 혜성처럼 나타날 것이다. 그리고 멋지고 크게 빛나는 별이 될 것이다. 그 시간이 멀지 않았다.

LA 다저스 공식 SNS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