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 재기 돕는다던 신용사면, 카드론 비용 더 높이는 '역작용'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사진 가운데)이 15일 은행회관에서 열린 '서민·소상공인 신용회복지원을 위한 금융권 공동협약식'에서 발언하고 있다.(사진=강승혁 기자)

정부가 금융거래 사각지대에 놓인 서민을 돕기 위해 내놓은 신용사면이 되레 '금융비용'만 늘리는 역작용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대출기회가 더 많이 열리지만 카드론 금리는 더 올랐기 때문이다. 이는 부채 감축을 위한 국가 정책과는 역행한다. 카드사들은 잠재 리스크 확대에 주목하는 눈치다. 학계에선 정책 발표 시기에 아쉬움을 표했다.

22일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금융업권 협회·중앙회, 신용정보원 및 12개 신용정보회사는 지난 15일 '서민·소상공인 신용회복지원을 위한 금융권 공동협약'을 체결했다. 협약에 따라 지난 2021년 9월부터 이달 말까지 발생한 2000만원 이하의 소액연체를 오는 5월 말까지 전액 상환하는 채무자의 연체이력정보는 삭제된다.

신용사면으로 불리는 이번 지원 방안이 시행되면 개인 차주 기준 약 290만명의 연체이력정보가 삭제된다. 당국은 이 중 약 250만명의 신용점수가 평균 35점 올라 은행권을 포함한 금융기관 거래가 늘어날 것으로 계산했다.

당국이 신용사면 기대효과로 내세운 것 중 하나는 신용카드 신규 발급 확대다.

전요섭 금융위원회 금융혁신기획단장은 협약 체결 이후 "약 250만명의 신용점수가 NICE 기준 평균 39점 상승해 대환대출 등을 통한 저금리 대출로 전환이 가능할 것으로 기대된다"며 "추가로 15만명이 카드 발급 기준 최저 신용점수인 645점을 충족하게 되고, 25만명이 추가로 은행권 신규 대출자 평균 신용점수인 863점을 넘게 되는 등 대출 접근성도 향상될 것"이라고 말했다.

당국이 '접근성'을 주목한 것과 달리 업계 전문가들은 중저신용자 카드론 금리 향상에 따른 금융비용을 주목한다.

여신금융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8개 전업카드사의 신용점수별 카드론 평균 금리는 최저 13.20%(현대), 최고 15.19%(BC)였다. 신용점수 700점 이하 회원 대상 평균 카드론 금리는 최저 16.18%(롯데), 최고 18.64%(우리)로 나타났다. 지난해 12월 신용점수별 카드론 평균 금리는 최저 13.33%(현대), 최고 14.98%(BC)로 전달보다 최고 금리가 소폭 하락한 양상을 보였다. 올 들어서는 신용점수별 카드론 평균 금리가 최저 13.57%(현대), 최고 15.54%(삼성)로 양 극단이 멀어졌다.

이와 달리 신용점수 501~600점 사이에 있는 저신용자 카드론 금리는 △지난해 11월 최저 15.47%(롯데), 최고 19.07%(신한) △지난해 12월 최저 16.78%(하나), 최고 19.18%(우리) △이달 18.05%(우리), 최고 19.29%(신한) 등으로 조금씩 올랐다.

서지용 상명대 경영학부 교수 겸 한국신용카드학회장은 신용사면 이후 신용카드를 신규 발급받는 이들의 카드론 연체 리스크를 사전 반영한 결과일 수 있다고 해석했다.

그는 "신용카드사 입장에선 잠재적인 부실을 걱정할 수 있다"며 "기준금리 인하 가능성이 점쳐지면서 시장금리가 떨어지고 있음에도 카드론 금리가 오르는 것은 알게 모르게 신용사면 영향을 받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카드사들 역시 신용사면이 전체 업권에 미칠 긍정적 효과보다 리스크가 크다고 보는 분위기다.

신용카드업계 관계자는 "신용사면으로 신용점수가 올라 카드 신규 발급이 늘어날 수는 있지만 실적 개선에 직접적인 역할을 하긴 어렵다"면서 "오히려 이전에 연체가 있었던 만큼 신용카드 신규 발급 이후에도 추가 연체가 발생할 수 있어 마냥 긍정적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전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연체이력정보 삭제로 신용점수를 645점 이상으로 높인 이들 모두가 신용카드를 새로 발급받지는 않을 것이고, 신용카드를 사용하더라도 대금을 성실히 납부하는 이들도 분명 있을 것"이라면서도 "전반적인 경제 여건이 좋지 않으니 저신용자 연체 리스크 관리는 선제적으로 이뤄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신용카드사마다 내부 리스크 관리 기준이 따로 있고, 연체이력정보 삭제 대상자의 한도도 크지 않아 우려할 수준은 아니라는 낙관론도 나온다.

한 전업카드사의 관계자는 "신용정보회사가 제공하는 신용점수와 별개로 카드사들이 별도로 책정하는 내부 등급이 있어 여러 지표를 보면서 리스크 관리를 촘촘하게 한다"며 "신용사면 이후 새로 신용카드를 발급받더라도 한도가 일정 수준으로 제한돼 큰 부실로 번질 가능성은 낮다"고 평가했다.

전문가들은 코로나19 여파와 이례적인 고금리·고물가 지속 등 특수한 상황에 놓인 만큼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면서도 극단적인 신용사면으로 여러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고 우려했다.

서지용 교수는 "금융기관도 이용 문턱을 높일 가능성이 있어 금융시장 질서 유지 차원에서 좋지 않은 전례가 남게 됐을 뿐 아니라 형평성 문제도 있어 성실 차주에게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대환대출을 적극 늘려서 비교적 낮은 이자로 오랜 연체를 없애는 등 빚을 꼭 없애야 한다는 시그널을 줄 수 있는 다른 방법을 강구해야 했다"고 말했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신용사면 시기가 아쉽다는 평을 내렸다. 그러면서 도덕적 해이도 경계했다.

김상봉 교수는 "경기가 나빠지고 실업이 발생하면 (신용사면 등의) 대책이 필요하기도 하지만 선거를 앞둔 지금 신용사면을 해야 하는지는 의문"이라며 "도덕적 해이를 일으킬 수 있는데 이런 점에 대한 고려가 충분했는지도 미지수"라고 비판했다.

동지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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