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 받을 때 이것만 기억하자 [세상에 이런 법이]
직원들이 모두 퇴근한 시각, 한 고객이 상담을 받고 싶다며 불쑥 사무실을 찾아왔다. 20대 남자는 쉽게 말문을 열지 못했다.
“경찰이 욕하고 계속 인정하라고 해서, 했다고 해버렸어요. 너무 화가 나고 짜증 나서요. 계속 짜증 나게 해서, 그냥 일부러 교통사고 낸 거 맞다고 말해버렸어요.”
이 남자는 몇 년 전 친구들과 차를 타고 가다가 다른 차량이 해당 차량을 추돌하여 교통사고가 발생했다. 남자는 손목이 조금 아팠지만 병원 다닐 시간이 없어서 보험회사에 접수한 대인 접수 내역을 취소했다. 보험회사로부터 보험금은커녕 치료비도 받은 게 없었다. 그런데 당시 운전을 했던 친구가 보험사기 수십 건으로 조사를 받았고 동승자인 이 남성도 조사를 받게 된 것이다.
수십 건의 보험사기라 혐의는 무겁고 형량 또한 가볍지 않을 것이다. 동승자였을 뿐인 이 남자는 보험금을 받은 사실도, 일부러 교통사고를 낸 사실도 없는데 보험사기를 공모했다고 자백해버린 것이다. 단지 경찰이 너무 짜증 나게 해서 자백했다는 이 남자는 심지어 출소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상황이었다.
경찰 조직 전체를 폄하할 수는 없다. 그러나 어느 조직이나 일탈행위를 하는 이는 있고, 그런 경우가 흔치는 않으나 위법 수사는 지금도 있다. 한국은 행정안전부령으로 경찰 수사 규칙이 제정되어 있다. 경찰은 수사를 할 때 사건 관계인을 합리적 이유 없이 차별할 수 없으며, ‘검사와 사법경찰관의 상호협력과 일반적 수사 준칙에 관한 규정’에 맞게 관계 법령을 준수하고 적법한 절차와 방식에 따라 수사해야 한다. 이를 따르지 않는 수사는 인권침해 혹은 위법한 수사에 해당한다.
규칙과 준칙의 내용을 잘 알아서 수사 단계에서 이의를 제기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변호사도 규칙과 준칙을 외우고 다니지는 않는다. 수사를 받을 일이 있다면 최소한 다음의 조언을 참고하면 좋겠다.
우선 경찰서에 피의자 신분으로(현재는 참고인이지만 향후 피의자 신분으로 전환될 가능성이 있는 경우를 포함) 조사를 받으러 가게 되면, 변호사와 동행하는 것이 좋다. 최소한 자백을 강요당하거나 영장 없이 증거물의 제출을 강요당하는 위법한 상황은 피할 수 있으며, 심지어 불이익한 진술을 당당히 거부할 수도 있다.
조사 과정을 영상 녹화로 남겨야 하는 이유
만약 변호사 없이 조사를 받으러 간다면, 최소한 영상 녹화를 요청하는 게 좋다. 담당 수사관은 보통 형식적으로 영상 녹화를 할 것인지 묻는다. 이때 대부분의 사람은 번거로울 것으로 생각해 그냥 조사받겠다고 하거나 수사관의 눈치를 보는데, 그럴 필요 없다. 조사 과정을 영상 녹화하면 경찰로부터 위법한 요청을 받거나 부당한 수사가 있었을 경우 이를 입증하는 증거가 될 수 있다. 이 경우 위법 수사의 결과로 얻은 진술이나 증거는 위법한 증거로 그 증거능력을 부인할 수 있다.
진술조서는 작성 과정에서 반복해 열람하고 수정할 수 있다. 사실대로 적혀 있지 않은 부분이 있다면 수사관의 눈치를 보지 말고 반드시 내용 수정을 요청해야 한다. 수사관이 조서를 수정하는 것을 꺼리면 진술서의 잘못 기재된 부분에 지우는 선을 긋고 자필로 그 내용을 수정해 기재한 뒤 해당 부분에 도장이나 무인(손도장)을 찍어 조서를 수정할 수도 있다.
나에게 유리하지 않은 요청은 단호히 거부해야 한다. 대한민국 헌법 제12조 제2항에 따라 대한민국 국민은 자기에게 불리한 진술을 강요당하지 않는다. 강요가 있다고 하여 불이익한 자백을 해서는 안 되며 할 필요도 없다. 아울러 수사관이 휴대전화 등의 증거를 임의로 제출해달라고 강요한다면 이 또한 거부할 수 있다. 해당 증거물이 꼭 필요하다면 경찰은 법원으로부터 영장을 발부받아 이를 집행하면 된다. 증거를 함부로 제출하면 해당 증거물에 본인에게 유리한 내용이 있다고 해도 추후 본인의 방어권을 행사하는 데 큰 불편과 어려움을 겪게 될 수도 있다.
상담하러 온 남자는 변호인을 선임할 비용이 없다고 했다. 우선 경찰청 감사실에 민원을 넣고 앞으로는 수사받을 때 꼭 영상 녹화를 요청할 것이며 검찰 수사나 재판 단계에서 자백의 진술을 일관되게 번복하여 무죄를 주장하기로 했다. 하지만 그 과정을 통해 자백이 번복되는 것은 꽤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그때는 이 남자의 곁에 그를 위한 변호인이 있으면 좋겠다.
권혜진 (변호사)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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