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남동구 인천버스터미널. 롯데백화점이 있는 이곳은 10년 전만해도 바로 옆 농수산도매시장 부지와 함께 일본 ‘롯폰기힐스’를 본딴 ‘롯데왕국’을 개발한다는 기대에 부풀었던 동네다. 하지만 현실은 아직 공사 첫 삽도 안 뜬 상태라는데,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유튜브 댓글로 “롯데가 인천 구월동에 짓는다던 롯폰기는 어떻게 된 건지 알아봐달라”는 의뢰가 들어와 취재했다.
[구월동 A부동산]
"롯폰기나 그런 건 다 물 건너 갔고요. 롯데의 전략에 인천이 다 놀아난 거야."
결론부터 말하면 롯데의 롯폰기 약속은 물거품이 됐다. 롯데의 안면몰수와 허술한 인천시의 행정 환장의 콜라보로 결국 인천 시민들만 피보는 상황이다. 롯데는 부동산 경기도 나빠진 마당에 명문화 되어 있지도 않은 약속을 지킬 필요가 없기에 본전치기라도 하려고 아파트 오피스텔만 왕창 짓기로 했다고 한다.
송도 신도시가 지금처럼 커지기 전인 2010년대 초반까지 이 동네는 인천 최고의 상업지구였다. 버스터미널에 입주해 있던 신세계백화점이 전국 지점 중 매출 네 손가락 안에 드는 거대 매장이었고, 그 건너편에 경쟁자인 롯데백화점까지 메이저 백화점만 두 개가 있었다. 그 옆엔 1만7000평 짜리 농수산도매시장, 또 인근 시청과 문화예술회관, 인천경찰청도 있어 항상 사람이 북적거렸다.
이곳이 시끄러워진 건 2012년. 인천광역시는 2년 뒤 있을 인천아시안게임 준비와 도시철도 개통 등 대규모 사업을 벌여놓은 탓에 1년 예산의 절반 가까이가 부채일만큼 재정 파산 직전이었다.
돈이 급했던 인천시는 100% 출자기관인 인천교통공사에서 인천터미널 건물과 부지를 넘겨받아 민간에 매각하기로 한다. 당시 신세계백화점은 인천교통공사가 소유한 터미널 건물과 부지를 임대해 운영 중이었는데 인천시는 인천교통공사로부터 이 터미널을 출자자산 회수 방식으로 소유권을 넘겨받은 뒤 입찰에 붙였다. 최종적으로 롯데와 신세계가 경합하다가 신세계가 너무 비싸다며 철수했고, 결국 롯데가 감정가인 8688억원보다 조금 큰 8751억원을 써내 낙찰을 받았다.
사실 신세계 쪽에서는 설마 인천시가 다른 데 이 부지를 넘길까 싶어 방심하고 가격을 낮추려했다가 한방 얻어맞은 모양새였다. 그도 그럴 게 경쟁업체가 매장을 운영 중인 건물을 매입하는 건 백화점업계는 물론 재계에서도 전례 없는 일이었기 때문. 이 사건으로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과 정용진 신세계 회장 사이가 나빠졌다는 소문도 있다.
신세계는 백화점 일부에 2031년까지 임대계약이 남아있던 상태였다. 그러니까 롯데백화점이 가진 건물에 신세계백화점이 입주한 웃기는 상황이 된 건데, 열받은 신세계가 소송을 벌였지만 결국 롯데의 승리로 끝나면서 이 임차권을 2018년을 마지막으로 다 넘겨준다. 롯데는 건너편에 있던 롯데백화점 문을 닫고 버스터미널에 간판만 바꿔 새 백화점을 2019년 1월 오픈한다.
일단 이 사건 자체가 이 동네 상권에 심각한 타격을 줬다고 한다.
[구월동 A부동산]
"신세계백화점이 없어지고 롯데(백화점) 하나만 들어오면서 상권도 엄청난 영향을 받았죠. (기존 상권) 한 40%가 날아갔어요. 롯데백화점이 신세계백화점만큼 손님 유치를 못 해요. 롯데백화점은 고가 전략이기 때문에 손님이 VIP들만 가요."
그러니까 백화점 수가 줄어들어 경쟁이 사라진 데다 롯데백화점이 고가·고급 전략을 주력으로 하다 보니 서민 고객이 사라져 유동인구 자체가 줄어버렸다는 것.
터미널 입찰에 성공한 롯데는 기세를 몰아 그 옆 농수산도매시장까지 감정가보다 겨우 4억 비싼 3060억원에 매입해버린다. 그러면서 터미널까지 해서 이 동네를 일본 도쿄 ‘롯폰기힐스’처럼 만든다는 포부를 밝히는데 사실 재정난인 인천시 입장에서는 이런 대규모 투자를 한다니 옳다구나 싶어 넘겨준 것에 가까웠다.
여기서 롯데가 들고 나온 게 롯폰기힐스. 일본 도쿄 최고 랜드마크를 포함한 상업·문화·주거 복합공간이다. 애플, 구글 등 세계적인 IT기업들이 입주해있고 그 옆엔 대형 쇼핑몰과 뷰티플라자뿐 아니라 고급아파트와 정원이 둘러싸고 있다.
문제는 인천 사례의 경우엔 구체적인 약속은 아무 것도 한 게 없다는 거다. 인천시와 롯데 측이 매매 당시 맺은 투자협정서에는 강제조항 자체가 없다.
[인천시청 관계자]
"구체적인 내용은 아예 없고 여기 한 조항에 보면 ‘매수자는 본건 재산의 소유권 취득 후 상당한 기간 내에 도매시장 부지 개발을 완료하기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 요거 딱 하나 들어가 있어요. 구체적인 어떤 조건을 가지고 ‘이걸 우리가 매각을 했을 때 이걸 지켜줘야 된다’ 이런 내용들은 별도로 구체적으론 (없다)"
부산 롯데타워나 강남 삼성동 현대 GBC의 경우 적어도 지자체가 부지를 팔 당시 공사시기나 규모 등 계획을 명시했기 때문에 기업을 압박할 근거라도 있지만 구월동 롯폰기힐스 계획엔 이런 게 없다.
롯데는 어영부영 일을 미루다 10년이 지난 작년 8월이 남동구청으로부터 농수산도매시장 부지의 구체적인 사업계획을 승인받았는데, 이 계획은 아파트 999가구, 오피스텔 1314개호와 상가를 약간 짓는 게 전부다. 하지만 지자체 쪽에선 애초에 이게 구체적으로 제출된 첫 계획이기 때문에 ‘왜 말이 달라졌냐’고 따질 수가 없다.
[남동구청 관계자]
"당초에 사업계획 승인을 받고 나서 변경하겠다고 접수된 거는 없어서 처음에 이렇게 건축을 하겠다 하고 나서 다시 내용을 바꾼다든가 이런 계획이 지금 들어온 게 없어가지고"
롯데는 “원래 이럴 계획이었다”라는 게 공식입장이다. 롯데가 또... 라는 생각이 드는데 롯데 측에선 “그땐 들 수 있는 예가 국내에 없어서 해외사례인 롯폰기힐스를 든 것뿐”이라는 거다. 그러니까 롯데는 주거시설만 왕창 짓고, 그 외에 롯폰기힐스처럼 상업시설과 문화공간이 결합된 공간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는 것.
신세계가 인근에 이마트트레이더스를 새로 짓고 있긴 하지만 예전처럼 북적이게 될 거라 보는 사람은 별로 없는 것 같다.
[구월동 B부동산]
"매력도가 많이 떨어졌지 농산물(농수산도매시장) 자리는 아예 관심도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