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 가득' 상암벌 레전드 매치! K-레전드 매치의 미래 보여주었다

사진제공=민경조

추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살집도 붙었고 속도는 느려졌다. 그러나 그들을 보면서 날렵하고 턱선이 살아있던 젊은 시절의 모습을 오버랩했다. 동시에 그들을 보고 열광했던 20년 전 젊은 날의 내 모습이 머리 속에 떠올랐다.

20일 서울 월드컵 경기장에서는 '추억의 대결'이 열렸다. '아이콘스 매치'가 열렸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전직 월드클래스 선수들이 나섰다. 카카, 히바우두, 루이스 피구, 리오 퍼디난드, 카를레스 푸욜, 박지성, 안정환 등이 뛰었다. 4만 5000여 팬들이 상암벌로 몰려들었다. 추억의 유니폼을 꺼내 들었고, 예전의 기억에 스며들었다. 대성공으로 기록된 레전드 매치였다.

#유럽에서는 보편화

유럽에서는 이러한 레전드 매치(또는 자선 매치)가 보편화되어 있다. 축구가 태동한 19세기 후반 영국에서 시작된 것으로 알려졌다. 1886년 셰필드에서 열린 자선 매치를 통해 지역 병원의 운영 자금을 마련했다는 기록도 있다.

현재 프리미어리그 우승팀과 FA컵 우승팀이 맞붙는 커뮤니티 실드 역시 전신은 자선 매치였다. 1908년 시작된 채리티(자선) 실드로서 당시에는 아마추어팀과 프로팀간의 경기였다. 초창기 채리티 실드의 목적은 여러 자선 단체를 지원하기 위해 수익금을 기부하는 것이었다.

2002년부터 커뮤니티 실드로 이름을 바꿨다. 단순히 자선만 하는 것이 아니라 축구 커뮤니티를 포함한 다양한 공익 활동을 지원하기 시작했다. 지금도 경기 수익의 전액을 자선 단체에 기부하고 있다.

그 외에도 각 구단들은 리그 경기가 없는 A매치 기간이니 여름 휴식기 각 구단들은 레전드 매치를 종종 열곤 한다.
2023~2024시즌이 끝나고 2024~2025시즌이 시작되기 전 여름동안 영국 국내에서 열린 대표적인 레전드 매치 혹은 자선 매치는 다음과 같다.

*웨일스 vs 잉글랜드 자선 경기(2024년 5월 11일 스완지닷컴 스타디움)
크리스 콜먼, 솔 캠벨, 애슐리 윌리엄스, 조 콜 등 출전. 소아암 환자 돕기 경기.

*셀틱 레전드 vs 도르트문트 레전드(2024년 5월 26일 셀틱 파크)
식량 지원과 암 환자 지원 기금 마련 대회. 요르고스 사마라스, 헤셀링크 등 양 팀 과거 스타들 출전.

*사커 에이드(2024년 6월 9일 스탬퍼드 브릿지)
유엔 아동기금(유니세프)를 위한 자선 경기. 우사인 볼트, 에덴 아자르, 로비 윌리엄스 등 참가. 격년으로 열림.

*맨유 레전드 vs 폼페이(포츠머스) 레전드(2024년 7월 20일 포세츠터 더 온사이트 그룹 스타디움)
병원에 입원 중인 어린이들과 그의 가족들을 돕는 소피스 레거시 지원 경기. 웨스 브라운, 리 마틴, 가이 버터스, 폴 로빈슨 등이 참가.

*허니 베이 FC vs 토트넘 레전드(2024년 8월 18일 허니 베이 윈치스 필드)
허니 베이 FC 지역 사회 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열린 경기. 미키 해저드, 스티브 페리맨 등이 참가.

사진출처=사커 에이드 SNS

그리고 레전드 매치에는 많은 관중들이 열렸다.

2019년 런던 웸블리에서 열린 사커 에이드의 경우 7만명이 몰려들었다. 2001년 아르헨티나 보카주니어스 홈구장에서는 마라도나와 친구들 자선 경기가 열렸다. 마라도나가 자신의 은퇴를 앞두고 연 자선 매치로, 6만명의 관중이 모였다. 2004년에는 포뮬러 원의 전설적인 드라이버인 미하엘 슈마허가 자선 매치를 개최, 5만명을 모았다.

사진출처=사커 에이드 SNS

레전드 매치를 여는 이유는 무엇일까.
일단 대의 명분은 사회 공헌이다. 프리미어리그는 물론이고 하부리그까지 보통 유럽의 축구 구단들은 사회공헌을 전담하는 조직을 가지고 있다. 사무국 내 부서로 하는 경우도 있고, 큰 규모의 구단일 경우에는 별도의 사회 공헌 재단을 설립해 운영하고 있다.

축구 구단들의 기본은 지역 연고제이다. 지역에서 설립됐고, 지역의 자존심이고, 지역을 대표하는 구단으로 성장했다. 때문에 자신들을 있게 해준 지역에 다시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고자 한다. 재단이나 지역 공헌 활동을 통해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 지역 사회를 도우려는 것이다. 가장 큰 관심을 받고 동시에 기금을 모을 수 있는 것이 레전드 매치이다.

현실적인 이유도 있다. 축구 구단이 레전드 매치 등을 열기 위해 사회 공헌 재단을 설립하면 세금 혜택을 받을 수 있다. 법적 자선 단체 지위를 얻으면서 소득세, 법인세, 자산에 대한 세금 감면 혜택이 있다. 기부금 공제, 부가가치세 면제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영업일수도 늘릴 수 있다. 경기가 있는 날 많은 관중들이 찾아온다. 자선 기금을 제하더라도 경기를 치르는 비용과 조금의 이익은 남길 수 있다. A매치 기간이나 여름 휴식기 동안 경기장을 놀게 하는 것보다는 낫다.

홍명보 자선 축구 당시 사진. 사진출처=정성룡 SNS

#K-레전드 매치는 어떻게 발전할까

국내 레전드 매치의 시작은 2003년이었다. 현재 대표팀 감독인 홍명보가 은퇴를 앞둔 시점에서 자선 경기를 열었다. 2002년 한일월드컵 4강 신화 달성 후 축구를 통해 얻은 인기를 사회에 환원하기 위해서였다. 홍명보 장학재단을 통해 경기를 치르고 수익금을 사회적 지원 활동에 활용했다. 2022년까지 열렸다.

2011년에는 박지성 자선 축구 경기가 열렸다. 박지성이 은퇴 후 설립한 JS파운데이션이 주최했다. 인기 TV프로그램인 '런닝맨'과 협업해 동남아시아에서 경기를 열기도 했다. 2019년이 마지막 대회였고, 이후 코로나 팬데믹으로 멈췄다.

사진 제공=민경조

2024년 아이콘스 매치를 통해 레전드 매치가 다시 막을 열었다. 이번 경기는 이제까지의 레전드 매치와 다른 모습을 보였다.

우선 매치 주관사가 다르다. 국내의 경우 홍명보나 박지성 등 유명 선수가 주축이 됐다. 사회 공헌 재단을 통해 경기를 기획하고 스폰서를 모았다. 이번에는 '유튜버'가 경기를 주관했다. 이어 큰 스폰서를 섭외해 주최사로 세웠다. 축구 시장, 스포츠 시장 권력의 중심이 소셜 미디어 쪽으로 옮겨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글로벌화도 또 하나의 특징이다. 이번 아이콘스 매치의 경우 아예 전직 월드클래스 선수들을 주인공으로 모았다. 국내에 해외 축구가 본격적으로 들어온 지 20여년만에 일이었다. 충분히 팬들도 생겼고, 그에 따른 흥행에 성공했다.

앞으로의 방향은 어떻게 전개될까. 당장의 일은 아니겠지만 점차적으로 레전드 매치의 주관사로 각 구단이 나설 가능성이 있다. K리그 구단들 역시 역사가 깊어지고 있다. 레전드들도 나오고 있다. 이들을 적극 활용, 레전드 매치를 통해 팬들을 하나로 결집시키고 동시에 사회 공헌 활동을 전개해 나가는 쪽으로 방향을 잡는다면 좋은 결과를 낼 것이다.

우리도 언젠가 여름이나 A매치 기간 포항 레전드 vs 울산 레전드 올드 동해안 더비를 볼 날이 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