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폴리네시아에서 온 아이

김현숙 충북도교육청 사서 2025. 12. 1. 1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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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서가 권하는 행복한 책읽기

인플루엔자(독감) 환자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4.7배 증가했다는 보도가 이어지고 있다. 우리 집 아이도 며칠째 독감으로 학교에 가지 못했다. 문득 이 급격한 변화들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기후 변화라는 거대한 흐름이 건강, 생활 그리고 아이들의 하루까지 침범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던 순간이었다. 마침 글로벌 그린리더 프로젝트에 참여 중인 딸아이가 건넨 작은 책 한 권이 눈에 들어왔다. 코슈카 작가의 '폴리네시아에서 온 아이'이다. 

이 책은 '지구상의 마지막 파라다이스'라 불리는 남태평양의 아름다운 산호섬을 배경으로 한다. 그러나 아름다운 자연은 평화로운 풍경으로만 남아 있지 않다. 푸른 낙원이라 불리던 그곳은 지금 지구 온난화로 인한 해수면 상승과 기후 재해 앞에서 속수무책이다. 어느 날 갑작스러운 폭우와 함께 섬이 물속으로 가라앉고, 주민들은 결국 삶의 터전을 떠나야 하는 선택의 기로에 선다. 기후 변화가 남기는 상처가 통계나 뉴스 속 숫자가 아니라, 한 공동체의 삶 전체를 뒤흔드는 무게로 다가온다는 사실을 정면으로 보여준다. 

이야기의 화자는 열두 살 소녀이다. 다리가 불편해 곧 사라질 섬에 남겨진 외할아버지를 뒤로하고 떠나는 여정이다. 불확실한 육지로 향하는 배에 오르는 순간부터 소녀는 비망록을 써 내려간다. 바다 냄새가 배어 있는 집, 매일 발길을 향하던 학교, 함께 뛰놀던 친구들, 바닷물 아래로 서서히 가라앉아 가는 섬과 남겨진 사람들. 익숙한 모든 것과 이별해야만 했던 어린 난민의 마음이 잔잔하지만 깊은 울림으로 다가온다. '기후난민'이라는 단어가 뉴스 속 용어가 아니라 한 사람의 얼굴과 목소리를 가진 존재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순간이기도 하다. 

독감으로 고생하고 있는 아이를 바라보며, 환경의 변화가 결코 먼 곳에서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의 건강과 일상, 삶의 지속 가능성까지 파고드는 문제가 되었다. 오염된 공기, 변덕스러운 기후, 잦아진 감염병의 확산은 모두 같은 지점에서 연결된다. 자연을 잃어가는 과정이 곧 우리의 삶 일부를 잃어가는 과정임을 책은 분명하게 이야기한다. 바다에 삼켜진 학교 터, 흔적도 없이 사라진 집의 담벼락, 사랑하는 가족과의 이별. 지구 평균기온의 1도 상승이 누군가에게는 삶 전체가 뒤흔들리는 큰 사건이 된다는 강렬한 메시지를 남긴다. 

그럼에도 '폴리네시아에서 온 아이'는 절망만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바다를 건너며 소녀가 마음속에 품는 작은 약속-무너져 버린 고향을 기억하겠다는 다짐, 자연과 다시 연결되겠다는 의지-는 독자로 하여금 함께 결심하게 만든다. 이는 단순한 환경 보호 메시지를 넘어 기후 위기를 '환경의 문제'가 아닌 '인간의 문제'로 바라보게 한다. 우리가 일상에서 실천할 수 있는 작은 행동이 지구를 살릴 수 있다는 흔한 메시지를 넘어서, "지구가 사라질 때 그곳에 살던 사람들의 마음은 어떤 모습일까?"라는 질문을 던지는 책이다. 기후위기를 환경운동이 아닌 '인간의 문제'로 바라보게 만드는 지점이기도 하다. 

환경 문제에 진지하게 관심을 기울이고 작은 실천을 이어가는 그린리더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는 아이가 더욱 자랑스러웠다. 환경은 특정 집단만의 과제가 아니라, 이 땅에서 살아가는 모두의 삶에 닿아 있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일상에서 바꾸는 작은 습관 하나가 아이들의 미래를 지켜낼 수 있다면, 그 변화는 분명 시작할 가치가 있다. 

'폴리네시아에서 온 아이'는 지금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은 어떤 지구를 아이들에게 물려주고 싶은가?"

가벼운 성장소설처럼 보이지만, 읽고 나면 오래도록 잔향을 남기는 기후 난민의 기록이다. 이 겨울, 아이들과 함께 이 책을 펼쳐보기를 권한다. 우리의 작은 읽기와 사유가 미래를 향한 첫 번째 변화가 될지도 모른다.  

그린리더 온라인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아이는 옆에서 투발루의 현실을 찾아본다. 7세 남자아이라는 가정하에 연설문을 쓰기 위해 자료를 뒤적이며, 해수면 상승으로 농사를 지을 수 없다는 기사, 통조림으로 끼니를 대신하는 날이 많아졌다는 조사, 앞마당이 바다에 잠겨 배를 타고 놀아야 한다는 사례를 읽고는 한참을 걱정한다. 그렇게 조용히 흘러나온 아이의 한숨을 듣고 있자니, 이 세계가 더는 미룰 수 없다는 사실이 더욱 또렷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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