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사 집안 남편과 결혼했더니 "넌 딴따라야.." 무시당했던 여배우

배우 김성녀가 남편 손진책 연출가를 처음 만난 건 1976년 연극 <한네의 승천> 무대 위였다.

한 사람은 데뷔작, 다른 한 사람은 연출 데뷔작. 서로를 잘 알지 못했지만, 함께 밥을 먹고 술을 마시고, 가끔은 김밥과 박카스를 건네는 일상 속에서 마음이 조금씩 열렸다.

당시만 해도 김성녀는 비혼주의자였다.

아버지의 자유로운 성정을 닮았고, 연극으로 먹고살기 힘든 현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뜻하지 않은 인연은 그렇게 시작됐다. 연습이 끝난 후 동료들과의 술자리가 길어졌고, 통금 시간을 넘긴 밤.

뜻하지 않게 아이가 생기면서 비혼주의자였던 김성녀는 결혼을 결심하게 된다.

결혼한 남편은 경북 영주 출신의 8남매 장남이었다. 보수적인 분위기의 집안은 ‘딴따라가 시집 왔다’며 곱지 않은 시선을 보냈고, 제사는 무려 1년에 12번이 넘었다.

시동생, 시누이의 결혼까지 도맡았고, 시어머니와는 매일 부딪쳤다.

연극 무대에서 박수를 받는 날에도 집으로 돌아오면 산더미처럼 쌓인 설거지가 기다렸다. 한 번은 길모퉁이에서 집에 들어가기 싫다며 멈춰선 적도 있었다고 했다.

그런 김성녀에게 손진책은 조용히 말했다.

“엄마한테는 미안하지만, 나는 네 편이야.”

그 한마디 덕분에 다시 문을 열고 들어갈 수 있었다. 이후 시어머니와도 솔직한 대화를 나눈 끝에 관계가 조금씩 풀렸다. “내가 잘못했다. 그래도 나는 너를 믿고 살 테니 잘해보자.”

그렇게 말하던 시어머니는 얼마 후 세상을 떠났다.

두 사람은 양주 백석리에 극장 겸 숙소, 사무실, 그리고 가족의 집까지 함께 있는 공간을 마련했다.

1층은 무대, 2층은 극단 단원들 숙소, 3층은 집이었다.

단원들과 식사를 나누며, 장구 소리에 잠을 설쳐가며 그렇게 30년을 함께 살았다. 손진책은 연극밖에 모르던 사람, 김성녀는 그런 그를 대신해 생계를 책임진 사람이었다.

정체성 없는 예술인이라는 평가도 있었지만, 김성녀는 뮤지컬, 드라마, 국악 등 장르를 넘나들며 자신만의 길을 지켰다.

가계부를 쓰며 가장 싼 화장품을 쓰고, 낡은 운동화를 신으면서도 무대를 떠나지 않았다.

그런 그녀에게 남편은 2005년 1인 32역을 소화해야 하는 연극 <벽 속의 요정>을 선물했다. 지금까지도 매년 공연되는 대표작이다.

사람들은 묻는다. 어떻게 한 사람과 그렇게 오래 살 수 있었느냐고. 김성녀는 말했다.

“젊었을 때 결혼했으면 몇 번은 헤어졌을 거예요. 우리가 그냥 부부였으면 그랬을지도 몰라요. 그런데 우리는 동지였어요.”

딸은 뮤지컬 배우로, 아들은 연출가로 예술인의 길을 걷고 있다.

아이들이 어릴 적엔 “엄마는 아빠 같고, 아빠는 이웃집 아저씨 같다”고 했지만, 지금은 부모의 선택을 이해하고 응원해주는 동료가 되어 있다.

김성녀는 오늘도 무대에 선다. 인생은 여전히 연극 같고, 연극은 곧 삶이다. 그리고 그 곁엔 언제나 같은 무대를 함께 꾸린 동지, 손진책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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