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미스 유니버스 대회에서 당당히 1위를 차지하며 전 세계의 주목을 받은 브룩 리.

흔히 한국계 3세로 알려졌지만, 사실 그녀의 혈통은 더 복잡하다.
하와이 원주민, 한국인, 중국인, 프랑스인, 영국인, 네덜란드인, 포르투갈인까지 다양한 뿌리가 섞여 있다.

브룩 리의 증조할아버지 조공원 씨는 1900년대 초 하와이로 이민을 떠나 사탕수수 농장에서 힘겹게 일했고, 이후 이민사의 여정 속에서 성(姓)도 조 씨에서 이 씨로 바뀌었다.

그렇게 태어난 브룩 리는 미국 국적의 하와이인이지만, 한국인의 피가 흐르고 있다는 사실을 늘 자랑스러워했다.
1997년 미스 USA에서 우승한 후 미스 유니버스까지 석권한 브룩 리는 단숨에 한국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한국계 최초 미스 유니버스라는 타이틀이 붙으며 한국 언론들은 그를 마치 한국 대표처럼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특히 그녀가 한국어로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사랑해", "미쳤다" 등을 말하며, 김치와 불고기를 좋아한다고 밝혔던 인터뷰는 큰 화제를 모았다.
할아버지로부터 김치 먹는 법을 배웠다고도 전하며 한국인으로서의 뿌리를 강조했다.

미스 유니버스에 등극한 지 두 달 만에 브룩 리는 한국을 방문했다.
4박 5일 동안 치약, 화장품 등 광고 촬영을 포함해 각종 방송 출연과 팬미팅, 교양 프로그램 출연, 판문점 방문, 소년소녀가장 돕기 기부까지 숨 가쁜 일정을 소화했다.

당시 인기 예능이었던 ‘이홍렬 쇼’, ‘이소라의 프로포즈’ 등에도 출연했고, 화장품 광고 모델료만 1억 2천만 원을 받으며 수억 원의 수입을 올렸다.

당시 고소영, 지와 신주리 등 톱스타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광고료 수준이었다.

판문점을 찾아가 아버지가 주한미군 시절 찍은 사진을 떠올리며 감회에 젖는 모습 역시 언론에 크게 보도됐다.
조순 당시 서울시장에게 명예 서울 시민증을 받기도 했다.





박찬호와 브룩 리의 만남은 아직까지도 회자된다.
브룩 리는 여러 방송 인터뷰에서
"국적은 미국이지만, 유전적으로는 한국인이다"
"나는 한국인의 근성을 가졌다"
며 한국계 혈통을 자랑스럽게 여겼다.

특히 "한국 사람은 목표를 정하면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다"며 스스로도 그러한 성향을 가졌다고 말했다.
그런 긍정적인 마인드와 당당함이 미스 유니버스 심사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다고도 밝혔다.

미스 유니버스 이후 브룩 리는 미국 방송계에서 진행자, 모델, 배우로 활동했지만 한국에는 더 이상 방문하지 않았다.
그러다 2020년, 자신의 SNS에 과거 한국 방문 당시 찍었던 사진과 영상들을 올리며 한국에 대한 그리움을 전했다.

1997년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브룩 리.
비록 국적은 미국이지만, "할아버지의 나라"라 불렀던 한국에 대한 애정을 숨기지 않았다.
그녀의 미소와 당당함은 지금까지도 많은 이들의 기억 속에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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