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년 군복무 마치고 48세에 시작한 사업으로 연매출 250억 만든 사장님

저는 창호를 제작하고 시공하고 AS까지 해주는 창호 교체 사업을 하는 케스코 대표를 맡고 있습니다. 창호라고 하면 아파트 베란다 안에 들어가 있는 창호를 샤시라고도 하죠. 사업한 지는 저희가 2015년부터 했으니까 10년째 하고 있습니다.

매일 아침 사무실로 출근하고 있는데요. 아직은 한참 커야 하는 회사라서 웬만한 중소기업들의 성패는 다 대표의 열정과 역량하고 거의 직결되죠. 평택에 공장이 하나 있고 김해 공장까지 두 군데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 사업을 한 지는 10년 됐는데, 그전에는 공군에서 헬리콥터 조종사로 23년 6개월간 근무를 했어요. 명예 대령으로 예편해서 2015년부터 지금 이 사업을 진행을 하고 있습니다. 직업 군인으로 24년 근무하다가 동기들보다 한 6년 6개월 먼저 전역을 한 거고요. 나의 젊음을 다 여기다가 소비하기는 제 인생이 조금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서 남자로 태어났는데 큰 세상에서 한번 놀아보면 어떨까 이런 생각으로 나와서 사업을 하게 된 거죠.

아내가 적극 호응을 했기 때문에 제가 전역을 할 수 있었지, 반대를 하면 못해요. 형제자매들, 친인척들, 군에 있었던 동료, 선후배들 모두가 다 반대를 했습니다.

군 전역하신 분들이 나와서 사업한다는 것은 어느 분야든 간에 사회에 나와 보면 최소한 20~30년 하신 전문가들하고 서로 경쟁해서 이겨야만 그 사업을 영위할 수가 있는데, 그렇게 하기에는 사회 물정을 너무 모르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그런 상황에서는 사업을 하지 말라고 하더라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창업을 했어요. 많은 선후배들이 '이 놈의 자식 잘 되나...' 하고 아직도 쳐다보고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남들보다 늦은 시기에 사업을 시작했는데, 그 계기가 있어요. 전역하기 전에 관사 생활을 했어요. 근데 관사가 좀 오래된 상황이어서 창호가 옛날 샤시였어요. 그래서 따뜻하게 살질 못했어요. 이후에 새로 지은 아파트에 배정을 받았는데 거기에는 샤시가 좋은 것이 들어가 있더라고요. 예전에 살았던 것보다 너무 난방이 잘 되는 거예요.

그런 와중에 고급 아파트에 사시는 분이 초대를 해서 한번 가볼 계기가 있었는데, 거기에는 저희 아파트에 설치된 것보다 더 좋은 시스템 창이 설치가 되어 있더라고요. 온기가 다른 거죠. 그래서 이 창 하나만으로 상당히 에너지 절약이 되고 냉난방 비용을 줄일 수 있겠다는 것을 그때 제가 몸소 체험을 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자신 있게 제가 이걸 할 수가 있었습니다.

저희가 매년 20~30%씩 성장을 하고 있는데 작년 기준으로 250억 매출을 올렸고요. 올해는 10월부로 250억 매출을 이미 초과 달성했습니다.

샤시는 면적으로 값을 따져요. 일반적으로 한 30평대에 외부 창만 했을 때는 1,000만 원 미만일 거고요. 외부 창하고 실내에 있는 창까지 다 바꾸면 1,300~1,500만 원 정도 들어가지 않을까 싶습니다. 저희가 이제 14,000건 이상을 했는데 모든 분들이 다 만족을 합니다.

10년 정도 사업을 운영하면서 매년 20~30% 성장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다음 시장은 어떻게 변할 것인지 예측하려고 해요. 특히 '창호는 가전'이라고 생각해요. 지금까지의 창은 건축용 창호였다면 앞으로는 가정용 창호로 가야 해요. 거기다 기능성을 첨가하는 부분들을 지금 연구개발을 많이 하고 있어요.

시공은 원래 많이 해본 사람이 잘하게 돼 있어요. 누가 얼마나 많은 경험이 있느냐에 따라서 시공 품질이 달라지는 거거든요. 저희한테는 일들이 꾸준히, 많이 있으니까 저희 시공팀들의 실력이 상당히 높아져 있는 상황이고, 그래서 이제 고객들이 조금 더 신뢰하고 공사를 맡길 수 있는 겁니다.

시공을 마치면 고객님한테 언제든 AS 연락을 달라고 하면서 마무리해요. 창호의 수명을 15~20년으로 보고 있는데, 저희가 끝까지 사후 관리를 해 드린다는 목표를 갖고 20년 AS 보증서를 드리고 있습니다. 믿고 맡겨도 된다는 이야기죠. 그게 시공의 품질에 자신이 없으면 20년을 보증할 수가 없어요. 안 그러면 대충 해놓고 매번 가서 AS를 해야 된다면 손실이 크거든요.

에스코는 에너지 전문 기업이에요. 등록 조건이 자본금 2억에 기술인 3명이 포함된 사무실이 있어야 해서 저희는 자본금 2억에 5명으로 시작을 했습니다.

제가 군에서 근무하다가 이렇게 나와서 사업하는 게 사실 쉽지는 않았어요. 저희 집사람이 어떤 얘기까지 했냐면 사업을 하다가 만약에 잘 안 되면 본인이 떡볶이 장사라도 할 테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고 한 번 해보자고 했어요. 지금도 그 생각을 하면 약간 울컥하는데, 그것이 제게 큰 힘이 됐죠. 그렇기 때문에 제가 그런 결정을 하고 군에서 나올 수 있었던 큰 동력이 됐다고 생각합니다.

시공 비용이 사실 만만치 않잖아요. 집안 환경이 좀 어려우신 분들은 많이는 못 하시겠다는 생각이 많이 들거든요. 그래서 회사가 조금씩 커가면서 주변에 어려운 분들한테도 이런 혜택을 좀 드렸으면 좋겠다고 해서 제가 이제 군인 출신이었고 여러 가지 생각을 하다 보니까 국가 유공자들한테 무료로 시공을 해드리겠다고 했어요.

대전에는 5개의 구가 있어요. 구에서 추천을 받은 곳을 저희가 해드릴 만한지 심사를 해서 해드리는 과정이 있었는데요. 결과적으로는 두 집만 저희가 시공을 해 드린 적이 있어요. 그때 이제 참여한 우리 시공 소장님은 재능 기부를 해 줄 수 있어서 자기도 좀 뿌듯했다는 마음을 저한테 전달해 주셔서 '내가 국가유공자한테 이렇게 베풀기를 잘했구나...' 이런 생각을 좀 했어요.

하나의 안타까운 부분은 대전시로 지금 국한해서 하다 보니까 대상자들이 많지 않은 거예요. 그분들이 지금 나이가 많거든요. 90대가 다 넘으셨어요. 그래서 전국으로 확대해서 그분들이 빨리 노후생활을 그래도 좀 편안하고 따뜻하게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합니다.

예전에 24년 동안 군생활 하면서 일단 저는 상당히 열심히 했어요. 성실, 근면, 열정 같은 것을 토대로 나와서 우리 고객들한테도 그런 마음으로 접근했더니 고객님도 저를 좀 알아주시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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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어떤 사업을 한다면 내가 무엇인가를 모른다고 가정을 해야 다른 잘하는 사람한테 물어볼 수 있는 기회가 생기는 거거든요. 제가 안다고 하면 물어볼 이유가 없어지는 거고, 그럼 더 많은 정보를 얻기가 어려워요. 나보다 더 아는 사람이 많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더 잘하시는 분들하고 친하게 지나면서 그것들을 얻고, 그렇게 해서 좋은 장점들을 가지고 사업을 해나시면 아마 좋은 결과를 얻지 않을까 생각해요. 저 같은 군인도 아무것도 모르는 상황에 48살에 시작해서 여기까지 왔는데, 준비하시는 분들 중에는 다양한 연령층이 있겠지만 얼마든지 도전해서 좋은 성과를 얻을 수 있을 거라 저는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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