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십 년이 넘는 시간 동안, 나는 전문가가 되려고 발버둥 쳤다.사무실에서, 강의실에서, 컨퍼런스장에서. 배우고, 쌓고, 증명하려 했다. 일터에서의 인정과 학문적 영역으로의 확장을 향해 끊임없이 몸을 던졌다. 그것이 성장이라고 믿었고, 성장이 곧 삶이라고 믿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그림책 『꽃들에게 희망을』에는 장대 끝에 선 애벌레가 나온다. 그토록 기를 쓰고 올라온 장대의 꼭대기, 그 가장 높은 곳에 서고 나서야 애벌레는 깨닫는다. 이 끝이 목적지가 아니라는 것을. 나 역시 그러했다. 스스로 전문성의 정점 언저리에 있다고 느끼던 어느 순간, 돌연 이런 생각이 정신을 번쩍 들게 했다.
아, 이게 다라면 너무 슬픈데.
HR이라는 영역에서 폭넓은 전문가로 성장하고 싶다는 바람으로, 나는 ‘General HR Professional’이라는 단어를 마음속에 담아왔다. 형용모순처럼 보일 수 있는 이 말 안에는, 그러나 내가 다 담아내지 못한 마음이 있었다. HRer(인사담당자) 이전에 나는 ‘일하는 사람’이었고, 일하는 사람 이전에 하루하루 숨 쉬며 살아가는 ‘사람’이었다. 관심의 방점은 어느새 프로페셔널(Professional)에서 제너럴(General)로, 기능에서 존재로 이동하고 있었다.
그 무렵부터 만남의 폭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같은 회사 동료, 동종 업계 사람들의 경계를 넘어, 나와는 퍽 다른 일의 경험과 커리어 지향, 삶의 방식을 지닌 이들과 자연스럽게 연결되었다. 누군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지금까지와 다른 삶을 살고 싶다면, 거주하는 공간과 경험, 그리고 만나는 사람을 바꾸라고. 실제로 그랬다. 만나는 사람들의 폭이 넓어지니, 딱 그만큼 내 세계도 넓어졌다.
그런데 신기한 일이 있었다. 나와 전혀 다른 커리어 여정을 걸어온 이들과 깊은 대화를 나누다 보면, 어느 지점에서 반드시 연결되는 무언가가 있었다. 표층은 달랐지만, 내면에 흐르는 이야기는 맑은 지하수처럼 서로 이어져 있었다. 경력도, 언어도, 업의 형태도 달랐지만, 삶을 대하는 태도의 어떤 결이 포개졌다.
오늘도 그러했다. 예술 기획자이자 창작자로 살아온 그레잇테이블 오승희 대표님과의 대화는, 서로 다른 두 손이 마주쳐 소리를 만들어내는 박수처럼 오고 갔다. 그 손끝에서, 나는 생의 감각을 감지했다.

충만한 대화는 감사를 불러온다. 살아있길 잘했다, 살아내길 잘했다는 감사를. 그 감각은 관념이 아니다. 몸으로 오는 것이다. 오늘처럼 좋은 대화를 나누고 나면, 가슴 어딘가가 따뜻해지고, 발걸음이 조금 달라진다.
돌아오는 차 안에, 선물로 받은 hinok 방향제가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은은한 향이 차 안을 채웠다. 억지로 내뿜지 않아도, 그저 거기 있는 것만으로 공간을 바꾸는 향기. 나는 다짐 하나를 다시 떠올렸다.
상대에게 가닿는 좋은 향을 은은하게 뿜어내는 사람으로 살고 싶다. 전문성의 장대 끝에서 내려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깊은 곳에서 흐르는 이야기를 붙잡는 사람. 지식보다 온기로, 정보보다 결로 연결되는 사람. 어느 공간에 있더라도 그 자리에 머무는 이들이 조금쯤 숨을 고를 수 있게 하는 사람. 그것이 지금 내가 바라는, 제너럴(General)한 삶의 모습이다.
* 글쓴이 : 인생여행자 정연
이십 년간 자동차회사에서 HR 매니저로 일해오면서 조직과 사람, 일과 문화, 성과와 성장에 대해 스스로 질문을 던지고 몸으로 답하는 시간을 보내왔다. 지층처럼 쌓아두었던 고민의 시간을 글로 담아, H그룹 칼럼니스트로 활동하며 칼럼을 쓰기도 했다. 11년차 요가수련자이기도 한 그는 자신을 인생여행자라고 부르며, 일상을 여행자의 시선으로 바라보며 글을 짓는다. 현재는 H그룹 미래경영연구센터에서 조직의 나아갈 방향을 고민하며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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