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짝 쳐도 박살나는 범퍼" 그래도 엄청난 판매 기록을 세운 차

'프로젝트 Y3'로 개발된 3세대 모델은 아이러니하게도 '쏘나타2'라는 이름으로 등장했습니다. 분명 세 번째 쏘나타지만, 공식 차명을 쏘나타2라는 이름으로 결정한 것을 보면 확실히 현대차가 초대 쏘나타를 기억에서 지우고 싶어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죠. 직전 모델인 '뉴 쏘나타'와 비슷한 분위기를 풍기면서도 매끈한 유선형 바디가 시선을 사로잡는 쏘나타2의 외관은 당대 트렌드에 걸맞게 곡선을 적극 사용해 '쏘나타'라는 이름에 걸맞는 한층 더 우아한 스타일로 거듭났습니다.

보수적인 스타일과 주행 성능을 내세웠던 경쟁 모델들과 달리 날렵하면서도 부드러운 생김새는 주 타겟인 남성 소비자들은 물론 중후한 느낌의 부담을 느끼던 여성 소비자들까지 사로잡았죠. 독특했던 3-스포크 휠 커버를 이번에도 적용했고, 일자로 길게 이어진 강렬한 리어램프 덕분에 어렸을 때는 기아에서 수입해온 '머큐리 세이블'을 종종 헷갈려하곤 했어요.

여담으로 이 당시 현대차는 범퍼에 쓰인 플라스틱의 내구성이 약해 가벼운 충격에도 금이 가거나 아예 박살이 나는 경우가 허다했습니다. 특히 이 쏘나타와 '엘란트라'가 유독 심했던 것 같아요.

얄쌍해 보이는 외관에 비해 실내는 기대 이상으로 넉넉했습니다. 각그렌저와 플랫폼을 공유하던 전작처럼 앞서 출시된 2세대 '뉴그랜저'의 플랫폼을 활용해 차체 크기, 특히 휠 베이스를 크게 늘려 쾌적한 거주성을 제공했어요.

실내 역시 곡선을 가미해 외관의 유려한 분위기를 그대로 이었고, 전작의 운전자 중심 레이아웃을 거의 동일하게 유지하면서 이전에 현대차를 경험했던 운전자라면 모든 기능을 익숙하게 조작할 수 있었습니다.

이퀄라이저 오디오에는 비밀번호를 설정해 도난을 방지하는 독특한 기능이 들어있었다고 하네요. 경보 기능이 미흡했던 옛날에는 빈차털이가 성행했고 규격화된 오디오 데크를 쉽게 털어가곤 했는데, 그걸 막기 위해 비밀번호를 입력해야 오디오를 이용할 수 있게 한 것입니다. 다만 매 시동시마다 귀찮게 비번을 풀어야 하니 불편하다는 반응이 많았고, 이 비밀번호를 정작 오너들이 까먹는 바람에 못 듣는 분들도 종종 있었대요.

국산 중형차 최초로 운전석 에어백을 도입해 상해율을 줄인 것은 좋았지만, 정작 가장 중요한 충돌 안전성 시험에서는 좋은 점수를 받지 못해 아쉬움을 남겼습니다. 안전과 신기술의 결정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앞세워 홍보했던 것을 떠올리면 실망스러운 부분이었죠.

파워트레인은 직전 모델의 것을 그대로 사용했지만 얼마 뒤 하위 트림의 1.8L 라인업에 신형 DOHC 엔진을 추가, 2.0L SOHC 엔진 못지않은 출력과 더 나은 연비를 제공하면서 합리적인 구성을 원하는 소비자들에게 환영받았습니다. 덕분에 가솔린 모델의 선택지만 4가지나 됐어요. DOHC 모델은 높은 RPM에서 제 성능을 발휘하는 고회전형 엔진 설계로 레드존이 7,000부터 RPM 게이지가 무려 9,000까지 있었죠.

여기에 5단 수동 변속기를 기본으로 4단 자동 변속기가 옵션으로 제공됐고 ABS, 스포츠-노멀 모드로 감쇄력을 조절하는 전자제어 서스펜션, 특히 후륜 멀티링크 서스펜션, 특히 후륜 멀티링크 서스펜션을 새롭게 적용해 승차감과 주행 안정성을 업그레이드한 것도 눈에 띄는 변화였습니다.

끝물인 1996년형에서는 전 트림에 안개등을 기본 장착하고 고급 트림인 GLS에 금장 엠블럼과 국화빵 모양의 전용 알루미늄 휠을 더한 '골든팩'을 추가해 남다른 느낌을 주기도 했어요.

좋은 상품성과 합리적인 가격으로 무장한 '쏘나타2'는 경제 호황을 등에 업고 그야말로 날개 돋친 듯 팔려 나갔습니다. 1995년 한 해에만 무려 20만 대에 가까운 판매 실적을 달성했는데, 이는 30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깨지지 않은 엄청난 대기록이었죠. 부진했던 경쟁 모델을 제치고 대한민국 중산층을 상징하는 국민 중형차로 우뚝 섰고, 덕분에 아직도 쏘나타 하면 머릿속에 이 모델부터 떠오르시는 분들이 많을 거예요. 또 당대 중형차 중 가장 세련된 스타일까지 갖췄기 때문에 오렌지족, 부유층의 대학생들이 많이 타고 다니는 것으로도 유명했습니다.

한편 성공에 너무 도취되어 있었던 걸까요? 현대차는 이 3세대 쏘나타를 기반으로 만든 가지치기 모델을 출시하기도 했습니다. 원래라면 '신형 다이너스티'로 등장해야 했을 플래그십 세단이 차급을 대폭 키워 '에쿠스'라는 전혀 새로운 차로 등장하게 됐고 얼떨결에 기존 플래그십 다이너스티의 수명이 늘어나버렸죠. 현대차에게는 쏘나타와 다이너스티 사이의 이 커다란 간극을 메울 새로운 고급차가 필요했고, 그렇게 등장한 모델이 바로 고급 중형차 '마르샤'였습니다.

이번에도 쏘나타에서는 구경조차 할 수 없었던 각종 호화 사양으로 무장했고, 주행 성능을 크게 보강해 타본 사람들마다 차는 좋다며 호평했지만, 소비자의 니즈보다 회사의 니즈가 많이 반영된 이 차의 결과는 처참했습니다. 멀리 갈 필요도 없이 '스텔라'를 치장해 만든 초대 쏘나타로 실패의 쓴맛을 경험했는데, 같은 전략을 사용한 차가 잘될 리 만무했죠. 하지만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기 마련이죠.

그래도 이 중형차와 대형차 사이의 '고급 중형차' 포지션을 포기할 수 없었던 현대차는 심기일전해 아예 쏘나타와 별도로 개발한 제대로 된 후속 모델을 준비했고, 그렇게 시작된 '프로젝트 XG'는 다들 아시는 '그 차'로 출시되어 성공적인 판매량을 기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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