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전세 살던 30대 노원구 맞벌이, 결국 내린 결정
생애 최초 주택 구입 20·30대 늘어
지난달 전체 부동산 매수자 가운데 ‘생애 첫 매수자’ 비율이 9년여 만에 최고치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가 생애 최초 주택 구매자를 위해 대출 규제 완화와 세금 감면 혜택을 내놓으면서, 주택 매수를 망설이던 무주택자가 시장에 새롭게 진입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최근 시장 상황을 알아봤다.
◇매수자10명 중 4명은 ‘생애 최초’
법원 등기정보광장에 따르면, 지난3월 기준 생애 최초로 아파트·빌라 등 집합건물을 매수(매매 이전 등기 기준)한 사람은 2만5296명으로, 전체 매수인(6만4011명)의 39.52% 비중을 차지했다. 지난달 집을 구입한 10명 중 4명은 생애 처음 내 집을 마련했다는 뜻이다. 39.52% 비중은 2013년 12월(46.5%) 이후 9년 3개월 만에 가장 높은 것이다.
2만5296명을 기록한 생애 최초 매수자 숫자는 작년 7월(2만5824명) 이후 8개월 만에 가장 많은 것이다. 생애 최초 매수는 부동산 시장 침체가 본격화되던 작년 10월 1만7087명까지 떨어졌었는데, 급반등했다.
생애 최초 매수자 증가는 정부가 처음음 집을 마련하는 무주택자에 대한 대출 및 세제 규제를 꾸준히 풀어왔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정부는 작년 8월 생애 최초 매수자에 대해 주택 소재지나 가격에 상관없이 LTV(주택담보대출비율)를 80%까지 올려주고, 대출 한도는 기존 4억원에서 6억원으로 확대했다. 이때만 해도 그리 파괴적이지는 않았다. 당시 금리가 워낙 높은 데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연소득 대비 갚아야 할 원리금의 비율)이 최대 40%로 묶여 있어 LTV 80%까지 실제 대출을 받는 사례가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정부는 지난 1월 말 DSR을 적용하지 않고 9억원 이하 주택에 대해 최대 5억원까지 연 4%대의 고정 금리로 빌려주는 특례보금자리론을 발표했고, 이후 생애 첫 주택 구매자가 급증하기 시작했다. 여기에 12억원 이하 주택을 생애 최초 취득 시 소득과 관계없이 200만원까지 취득세를 면제해 주기로 한 것도 영향을 미쳤다.
부동산 시장 한 전문가는 “특례보금자리론 시행으로20대와 30대의 대출 여력이 늘면서, 급매물 위주로 생애 최초 매수자의 거래량이 증가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다른 전문가는 “누구나 집을 사고 싶은 욕구 자체는 있는 상황에서, 집값이 바닥에 가까워졌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먼저 행동에 나선 것”이라고 했다.
◇집값 많이 떨어진 지역 위주로 늘어
지역별로 보면, 경기도의 생애 첫 매수자가 급격하게 증가했다. 지난 2월 6738명이었던 경기도의 생애 첫 매수자는 지난달 9137명으로 35.6% 늘었다. 주택 가격이 서울보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경기도를 중심으로 특례보금자리론을 활용한 생애 첫 구매자가 늘어난 것으로 풀이된다.
전국 228개 시·군·구 중에서도 경기 화성시(2449명)의 생애 첫 구매자가 가장 많았다. 이어 경기 시흥시(967명), 고양시 덕양구(930명), 인천 서구(901명), 경기 양주시(836명) 순이었다. 상위 5개 지역 모두 지난해 집값이 20% 안팎으로 급락하고, 신도시나 택지 지구에 들어선 새 아파트가 많아 거주 환경이 양호하다는 공통점이 있다.
서울의 생애 첫 매수자는 1970명으로, 전월(1586명)보다 24% 늘었다. 서울 역시 은평구(62.6%)와 도봉구(41%), 중랑·노원구(38.5%) 등 중저가 아파트가 밀집한 지역의 생애 첫 매수자 비율이 높았다.
고공 행진하던 주택담보대출 금리가 1년 만에 최저 연 3%대로 내려오면서 무주택자의 신규 시장 진입이 더욱 수월해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3일 기준 기준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은행의 고정형(혼합형) 주택담보대출 금리는 3.69~5.94%로 집계됐다.
부동산 시장 한 관계자는 “금리 추가 인상에 대한 불안감이 줄어들면서 무주택자들이 움직이기 좋은 환경이 됐다”고 했다.
예를 들어 한 부동산 커뮤니티에 따르면 30대 직장인 이 모씨는 지난달 경기도 화성 동탄2신도시의 한 아파트를 5억원에 계약했다. 전세 만기가 다가와 계약 갱신도 고민했지만, 결국 아파트를 장만하기로 했다. 이씨는 “앞으로 아파트 값이 조금 더 떨어질 순 있겠지만, 지난 몇 년간 집값이 치솟는 것을 보며 느꼈던 박탈감을 다시 느끼고 싶지는 않다”고 했다.
또 초등학생 자녀를 둔 한 부부는 지난달 생애 처음으로 서울 노원구 상계동의 한 아파트를 7억4000만원에 구입했다. 김씨는 “맞벌이라 소득 기준을 맞추기 힘들어 그동안 정책 대출을 받지 못했는데, 소득 제한 없이 대출받을 수 있는 특례보금자리론 때문에 집값을 마련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본격 회복은 아직
다만 본격적인 반등장으로 판단하기엔 아직 이르다는 분석이 많다. 부동산 시장 한 전문가는 “급매물만 소진되고 있고 아파트 매매 가격 낙폭이 여전히 크다”며 “최근 5년간의 거래량 추이를 살펴보면 지난달 거래량 회복은 미미한 수준”이라고 했다. 다른 전문가는 “급매물이 소진되고 나면 매도자들이 호가를 올리면서 다시 거래가 부진해질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규제 완화 효과로 일시적 반등에 그칠 수도 있다는 견해도 있다. 부동산 시장 한 “금리가 여전히 높고, DSR(총부채 원리금 상환 비율) 규제가 남아 있어 실수요자들의 매수 수요까지 회복되려면 좀 더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고 했다.
/신수지 객원 에디터, 박유연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