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퇴직식 날까지도 실감이 잘 나지 않았어요. 매일 아침 출근하던 습관이 사라지고 나니 마치 시간이 멈춘 것처럼 느껴지더라고요. 처음 며칠은 늦잠도 자고, 여유롭게 커피도 마시면서 ‘이제야 진짜 내 삶을 사는구나’ 싶었죠. 그런데 그런 평온도 오래가지 않았어요. 어느 순간부터 이유 없는 허전함과 무의미함이 밀려오기 시작하더라고요.
공통된 혼돈, ‘아무것도 하지 않기’
주변에도 은퇴한 선배나 친구들이 많거든요. 근데 진짜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 있어요. ‘아무것도 안 하다 보니까 하루가 너무 길다’. 처음에는 그냥 쉬고 싶어서 아무것도 안 하던 게, 점점 습관이 돼버리는 거예요. 계획 없는 하루가 계속되면, 어느새 무기력이라는 감정이 마음 구석을 파고들어요. 막상 뭐라도 해보려 하면 몸도 마음도 움직이지 않고요.
‘나는 이제 무엇으로 살아야 할까’라는 질문
직장에 있을 땐 나름 역할이 있었고, 자리도 있었잖아요. 근데 퇴직하고 나니까 어떤 틀도 없어지면서 정체성마저 애매해지는 기분이에요. 내가 누구지? 라는 질문이 들기 시작하면 진짜 혼란스러워요. 가끔은 그냥 텔레비전을 보다가도 괜히 울컥하고, 스쳐지나는 광고 문구에 마음이 흔들리기도 해요. 나만 이렇게 느끼는 게 아니라는 게 그나마 위안이 되더라고요.
결국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 건 작은 계기 덕분이에요
어느 날 산책을 하다가 아는 얼굴을 우연히 마주쳤어요. 오랜만에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다 보니, 예전엔 분명 나도 활기찬 사람이었단 게 떠올랐어요. 그래서 아주 작게라도 시작해보자는 생각이 들었어요. 처음엔 도서관에 가서 책 한 권 읽고 오는 것부터였어요. 그렇게 조금씩, 아주 조금씩 일상 속에 목적이 생기기 시작하더라고요.
‘행동’이 달라지면 삶의 결도 달라지더라고요
퇴직이 끝이 아니라 다른 시작이라는 말, 그전엔 그냥 위로처럼 들렸어요. 근데요, 정말 그런 것 같아요. 하루 중 몇 시간만이라도 내가 움직이는 시간이 생기니까 확실히 느껴지더라고요. 몸도, 마음도 덜 무겁고요. 그저 ‘아무것도 안 하는 것’이 인생을 망치는 시작이라는 걸 이제는 정말 실감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