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니스는 초등학교 4학년이다. 매일 아침 학교에 등교하기 위해 대개 아침 7시 30분 정도에 일어난다. 어제 오후 아일랜드 풋볼(Irish football) 훈련이 끝나갈 때쯤 내리기 시작한 비를 흠뻑 맞고 돌아온 데니스가 행여나 감기에 걸리지 않았을까 엄마는 이제 막 잠에서 깨어난 아이의 이마를 짚어본다. 엄마는 아일랜드에서 화창한 날씨까지는 기대하지 않지만, 적어도 아이가 운동을 하는 날에는 마른 날 정도가 되어서 아이가 빗물에 옴팡지게 젖어서 훈련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지는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하다. 엄마는 데니스가 세수를 하는 동안 지난밤 다림질해 두었던 학교 교복을 침대 머리맡에 가져다 둔다.
평일의 아침식사
아이의 아침 식사는 대개는 우유와 시리얼이다. 아이가 조금 일찍 일어나거나 식욕이 조금 더 있는 날에는 토스트나 팬케이크 등을 먹곤 하지만 대부분의 날은 우유에 시리얼을 말아먹곤 한다. 대신에 일요일 아침 9시 30분 미사를 드리고 난 뒤 할아버지와 할머니 댁을 방문해서 함께 먹는 아침식사는 이래저래 푸지다. 할아버지가 직접 만드신 오트밀 죽(porridge)과 할머니가 60년 노하우를 한껏 발휘하셔서 요리하신 소시지, 베이컨(rasher), 푸딩(한국의 순대와 비슷하게 생긴 음식)과 계란 프라이가 한 접시에 한가득 담긴 아이리쉬 브랙퍼스트(irish breakfast)에 또 할머니가 전날에 직접 만들어 놓으신 브라운 브레드와 스콘에 향긋한 홍차가 곁들여져 6인용 원목 테이블에 한가득 차려진다. 데니스는 일요일 아침 식사를 기대하고 정말 좋아하는데, 할아버지 할머니 앞에서는 입안에 음식을 가득 넣고 말을 해도 또 밥을 다 먹고 어른들이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만화책을 읽어도 혼내는 부모가 없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할아버지, 할머니는 아이가 무슨 행동을 해도 언제나 ‘He is alright’이라고 말하시며 결코 멈추지 않는 자손에 대한 그들의 사랑을 ‘다정함’으로 쏟아 내주시고, 그의 부모들도 그날은 그냥 부모 하기를 멈추고 주말의 만찬으로 배를 채우고, 두 분의 사랑으로 마음을 채우기 때문이다.
체험학습이 가능한 21일
도시의 학교들을 제외하고 아일랜드 대부분의 아이들은 부모가 자동차로 학교에 데려다준다. 데니스는 20분 남짓의 이 시간 동안 아침기도를 하고 잠시 주위의 풍경을 둘러보며 어제와 다른 모습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그리고는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하루를 시작한다. “엄마, 샘이 오늘은 학교에 올까?” 비수기에 스페인으로 휴가를 떠난 샘의 가족들이 아일랜드로 돌아오는 날이었다. “글쎄, 오늘 도착하니까 내일쯤 학교에 오지 않을까?” 아일랜드 초등학교에서는 공식적으로 21일 정도는 가족의 행사나 휴가 등으로 결석이 가능하다. 그러나 데니스의 경우처럼 외국인인 엄마의 고향을 방문해야 하는 사정 등이 있으면 그 이상의 결석일 수가 있어도 대개는 이해를 받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데니스는 방학이 시작하는 6월 말 전에 먼저 방학을 하고 엄마의 고향을 방문한 적이 몇 번 있었다.
아일랜드의 초등학교는 아이들의 안전을 위해 학교 차원의 보험을 들어 놓는데, 그런 이유로 아이들은 8시 40분부터 학교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 한편 최근에는 등교 전과 하교 후에 학교에서 아이들을 돌봐주는 ‘sherpa' 프로그램이 시작되어서 일하는 부모들도 아이를 8시 전에 등교시키거나 6시에 데리고 갈 수 있게 되었다.
2번의 쉬는 시간과 급식
아일랜드의 초등학교는 유치원 2년과 초등과정 6년을 포함해서 8년 과정이다. 유치원 2년 과정은 9시에 등교해서 1시 40분에 하교를 하게 되고, 이후 1학년부터 6학년까지는 모두 2시 40분(학교에 따라서 조금씩 다르지만 대개 3시 이전에 끝이 난다.)에 하교를 한다. 한국에서 40분씩 수업시간과 10분씩의 휴식시간 사이에 점심시간이 배치되는 것과 달리 아일랜드 초등학교는 선생님의 재량에 따라 과목을 가르치고 10시 20분경에 20분 그리고 12시 20분경에 40분씩 두 번의 쉬는 시간이 있다. 이 두 번의 시간에 아이들은 집에서 직접 가지고 온 도시락을 먹고 나서 운동장에 나가서 놀게 되는데, 비가 내리는 날에는 교실 안에서 보드게임을 하거나 영화를 보기도 한다. 2024년부터 아일랜드 초등학교에서 무료 급식이 시작되었는데, 학교 안에 급식실은 없고 대개 바깥의 업체에서 스파게티나 인도식 카레 치킨 너겟 등의 메뉴로 음식을 배달해 오는데, 음식에 손도 대지 않고 집으로 가져온 아이를 다그치려 하다가 먼저 그 음식의 맛을 보니 아이가 왜 그렇게 했는지 이해가 될 만큼 음식의 질은 그리 높지 않다.
달리고 또 배우고
데니스는 점심시간이 끝나고 오후 수업을 하기 전에 교실의 모든 아이들과 함께 학교에 설치된 달리기 길을 따라 2바퀴를 돌고 다시 교실에 들어가서 수업을 하곤 한다. 데니스 반 학생뿐만 아니라 모든 학생은 매일 반드시 학교 둘레를 2바퀴씩 돌고 있는데, 달리면서 줄을 맞춰 달리거나 반드시 2바퀴를 모두 돌아야 하는 어떠한 강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그저 함께 달리고 웃다가 교실로 들어가는 일이 더 많은 것 같았다.
영어, 아일랜드어, 수학과 종교 과목을 매일 배우고 그 밖에도 선생님들의 의지에 따라 사회나 과학, 미술, 드라마, 체육 등의 수업을 하게 된다. 최근에 대건이의 학교에서는 아일랜드 전통 악기 수업과 줌바 수업 등이 열려 외부의 강사가 일주일에 한 번씩 학교를 방문해서 수업을 하고 또 외부의 수영장에서 수영 수업을 받고 있다.
그렇다면 초등학교 4학년 데니스는 방과 후에 무엇을 할까?
대부분의 아일랜드 아이들은 성별을 불문하고 방과 후의 대부분의 시간을 운동 경기 연습과 새로운 것을 배우는데 할애를 하고 있다. 데니스의 경우 월요일에는 지역의 뮤지컬 그룹의 연습에 참여하고, 화요일에는 테니스 연습을 마치고 축구 연습을 한다. 또 수요일에는 아이리쉬 전통 운동경기인 헐링(hurling) 연습을 한다. 목요일에는 태권도 수업이 있었지만, 4학년이 된 뒤로 수영 수업을 받는 것으로 바꾸었고, 금요일에는 아일랜드어 전통 음악홀에서 ‘반조(banjo)'를 배우고 있다. 주말에는 대부분 이웃 지역의 클럽들과 운동 경기를 가지게 되어서 주말 오전의 늦잠을 자는 경우는 거의 없다. 데니스의 친구들 중에는 태권도나 가라테를 배우거나 골프나 승마 레슨을 받는 경우도 많다. 또 최근에는 농구, 배구, 체조 또 스케이팅이 새롭게 아이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다고 했다. 대개는 한 시간 남짓 수업이 이루어지는데 수업료는 대개 1회에 10유로(한화 15,000원, 지역에 따라 가격은 다르다) 정도이다. 그렇지만 피아노나 클래식 악기 수업은 20분에 50유로를 훌쩍 넘기도 한다.
아이들의 방과 후 시간은 이렇듯 새로운 것을 배우거나 운동 경기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소위 수학 학원과 같은 사교육 기관에 가는 경우가 그리 많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한국에서도 잘 알려진 구몬 학습지가 아일랜드에도 있는데 대부분 이민을 온 인도 사람들이 자신의 집에 교습소를 차려놓고 운영을 하고 있고, 그곳에서 공부를 하는 아이들도 대부분은 인도 아이들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대신에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이 영어나 수학 등의 학습에 어려움을 가지고 있는 경우,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추가의 돌봄을 제공하고 있다.
학교는 여러 방면으로 아이들의 학습을 지원해 준다.
학교에는 SET(Special Educated Teacher) 교사가 있어 담임을 맡지 않고, 학습에 어려움을 가진 학생들을 자신의 교실로 불러 매일 일정 시간 맞춤형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예를 들어 데니스의 반에는 주의력행동결핍(ADHD)과 난독증을 진단받은 아이가 있는데, 이 아이는 SET 교사와 개별적 수업을 하면서 동시에 교실에서 수업을 병행하면서 통합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 아이에게는 SET 교사뿐만 아니라 SNA(Special Needs Assistance) 보조원이 배정되는데 이들의 도움을 받아 학습장에 숙제를 적는 일이나 수업 시간에 수학 문제를 풀 때 도움을 받거나, 집중력이 떨어졌을 때 SNA와 함께 교실 밖에서 10분 정도 가벼운 운동을 하고 돌아오기도 한다.
20분이면 끝이 나는 숙제
데니스는 저녁 식사를 하기 전에 숙제를 시작한다. 숙제는 매일 한 페이지씩의 영어 독해, 1개의 수학문제, 5개의 아일랜드어 문장 쓰기, 구구단 외우기와 5개의 영어와 아일랜드어 스펠링 외우 기이다. 때에 따라 프로젝트로 주제에 따라 글을 쓰거나 발표 자료를 만드는 등의 숙제가 있긴 하지만 한 학기에 1-2번 정도다. 데니스는 오늘도 20분 만에 숙제를 모두 끝냈다. 한국 엄마의 극성에 한국에서 가져온 수학 문제집을 3장 푼 뒤, 15분 동안 악기 연습을 하고 또 30분 동안 닌텐도 게임을 한다. 그런 뒤 퇴근한 아빠와 함께 집 앞 풀밭에서 축구를 하며 논다. 저녁 식사를 하며 하루의 이야기를 가족들과 나누고, 잠을 잘 준비를 하고 침대에 누워 1-2권의 책을 읽은 뒤 잠자리에 든다.
“엄마, 다음 주가 정말 기다려져.”
“왜? 생일이 있어서?”
“응. 내 생일날에는 숙제패스 쿠폰을 받을 수 있으니까!”
“데니스, 한국에 있는 사촌들의 학교 숙제를 본 적이 있지? 또 학원 숙제도 매일 있고. 사촌들에 비하면 너의 숙제는 정말 얼만 안 되는 거야!”
“아-알지. 그래도 숙제는 숙제니까. 숙제는 없으면 더 좋으니까!”
“그렇긴 하네. 하하하!”
처음 아일랜드를 방문했던 여름, 나는 남편의 조카들이 방학 내내 여분의 공부를 하거나 방학 숙제를 하는 것을 본 적이 없어서 내심 아이들이 걱정되었다. 그래서 어느 날은 조카들에게 방학숙제는 없느냐, 가을에 중학교에 가는데 미리 공부를 해 둬야 하지 않느냐라고 물었다. 그때 조카들은 무슨 그런 질문을 하느냐는 표정으로 “방학인데 왜 공부를 해요?”라고 반문했다. 방학 내내 아이들은 선행으로 수학이나 영어 문제 따위를 푸는 데 시간을 보내기보다, 하루 종일 실컷 놀았으면서도 내일 또 무엇을 하고 놀지 그 궁리를 하는데 에만 골똘히 머리를 쓰는 것처럼 보였다. 그렇게 10여 년 이 지났고, 조카들은 그렇게 매년 방과 후에는 데니스처럼 운동을 하며 매일을 보내고 또, 방학이 되면 놀고 또 놀면서 어른이 되었다. 그리고 이제는 어른이 된 후에는 각자의 자리에서 제 몫을 하며 삶을 잘 살아내고 있다. 아이들의 웃음이 가득한 저녁, 그리고 아이들의 그을린 얼굴이 여름방학의 숙제 그 자체인 아일랜드의 푸른 풀밭에서 데니스도 그렇게 체력 좋은 아이로 잘 자라고 있다.
*아일랜드 일상다반사
국제결혼을 한 뒤 아이를 키우며 아일랜드의 작은 도시에 살면서 겪고 있는 일상의 이야기들을 나눕니다.
*도윤
사람을 돕기 위해 공부하고 또 일하며 살다가, 이제는 아일랜드에서 아내이자 엄마로 살고 있습니다. 나를 알고 너를 이해하기 위하여, 그리고 내가 쓰는 글로 누군가를 도울 수 있기를 희망하며 읽고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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