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윤범 자사주 매입 정당성 건드렸다… MBK ‘공개매수가 인상 중단 선언’ 숨은뜻

노자운 기자 2024. 10. 10.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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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충분히 높다…83만원이 끝”
’기업가치 훼손’ 건드려 가처분으로 무게중심 옮겨
”최윤범 체제 유지, 2.7조 지출 이상 효과?“
”자사주 매입 ‘규모’ 문제삼으면 답 안나와”
그래픽=손민균

이 기사는 2024년 10월 10일 8시 53분 조선비즈 머니무브(MM) 사이트에 표출됐습니다.

고려아연 경영권을 놓고 최윤범 회장과 분쟁 중인 MBK파트너스가 돌연 ‘가격 인상 중단’을 선언했다. 양측이 번갈아 공개매수가를 끌어올리며 ‘핑퐁식’ 출혈 경쟁을 계속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되던 중 갑작스레 나온 입장이다.

MBK의 입장 발표에 대해 시장에서는 다양한 해석을 내놓고 있다. 고려아연 공개매수의 불공정 여부를 조사하겠다며 칼을 뽑아 든 금융당국의 경고를 받아들이는 모양새를 갖추는 동시에, 최 회장 측에도 가격을 더 올리지 말라고 압박하는 효과를 노렸다는 해석이다.

MBK 측 입장문 행간에는 또 다른 뜻이 숨어 있다. 최 회장 측 자사주 공개매수의 정당성을 흔든 것이다. MBK와 영풍은 이미 고려아연이 자사주를 83만원에 공개매수하는 게 회사와 주주의 이익을 해하는 배임 행위라며 법원에 자사주 취득 금지 가처분을 신청한 상태다. 최 회장 측 고려아연이 대규모 차입을 통해 자사주를 시세보다 지나치게 높은 가격에 사들이고 있으며, 이는 회사의 재무구조 및 경쟁력 악화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 그동안 MBK가 강조해 온 논리였다. 이런 상황에 다시 한번 “추가 가격 경쟁은 기업가치·주주가치를 떨어뜨리고 (특히) 차입 방식의 자사주 공개매수는 고려아연에 돌이킬 수 없는 손해를 가져다줄 것”이라는 입장을 밝힌 건, 현재 진행 중인 가처분에서 유리한 입지를 점하기 위한 메시지로 해석할 수 있다.

◇ 입장문서 ‘기업가치 훼손’ 거듭 강조한 MBK… 최윤범 겨냥

10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MBK는 전날 입장문을 내고 “고려아연 및 영풍정밀의 공개매수 가격은 각 회사의 오늘 현재 적정 가치 대비 충분히 높다”며 “더 이상 올리지 않겠다”고 밝혔다. MBK가 처음 제시했던 고려아연 공개매수 단가는 66만원이었으며, 이후 두 차례에 걸쳐 75만원에서 83만원까지 인상한 상태다. 최 회장 측이 제시한 자사주 공개매수 가격도 83만원으로 같다. 양측은 고려아연 주주사 영풍정밀에 대해서도 주당 3만원으로 동일한 공개매수가를 내걸었다.

중요한 대목은 공개매수가를 추가 인상하지 않는 ‘근본적인 이유’다. MBK는 “현재의 공개매수 가격 그 이상의 가격경쟁은 고려아연 및 영풍정밀의 재무구조에 부담을 주게 돼, 기업가치 및 주주가치를 떨어뜨리고 글로벌 경쟁력을 악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추가적인 가격 경쟁으로 인해 고려아연과 영풍정밀의 기업가치가 훼손되는 것을 지켜볼 수만은 없다”, “MBK파트너스에 더욱 중요한 것은 차입 방식의 자사주 공개매수로 인해 고려아연에 돌이킬 수 없는 손해가 발생되는 것을 방지하고, 고려아연이 투명한 지배구조하에서 안정적으로 발전해 나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MBK가 이날 입장문에 ‘기업가치 훼손’이라는 키워드를 거듭 언급한 데는 그럴 만한 배경이 있다. MBK-영풍은 지난 2일 서울중앙지법에 고려아연 자사주 취득 금지 가처분을 신청한 상태다. 심문기일은 오는 18일로 예정돼 있다. 고려아연 이사회의 자사주 매입 공개매수 결의가 회사와 전체 주주의 이익을 해하는 배임 행위이기 때문에 중지돼야 한다는 게 이번 가처분의 골자다.

MBK-영풍은 앞서 지난달 13일에도 고려아연의 최윤범 회장과 박기덕·정태웅 대표, 한국투자증권을 상대로 자사주 취득 금지 가처분 신청을 냈다가 기각된 바 있는데, 이번 2차 가처분과는 별개의 건이다. 1차 가처분의 쟁점이 ‘고려아연이 공개매수자인 영풍과의 특별관계를 해소하고 별도의 주식 매수를 할 자격이 있느냐’였다면, 2차 가처분에서는 ‘고려아연이 시세보다 높은 주당 83만원에 자사주를 공개매수하는 게 배임인지’ 여부를 따진다.

최 회장 측 ‘고가’ 공개매수가 고려아연의 재무구조와 기업가치를 훼손할 것이라는 주장은 MBK가 2차 가처분을 신청하면서 줄곧 강조해 온 논리다. MBK는 “공개매수 종료 후 주가가 이전 시세로 회귀하는 경향을 감안할 때, 고려아연이 주당 83만원에 취득할 주식 가치는 이른 시일 내 30% 이상 하락할 가능성이 있다”며 “최윤범 회장을 지키고자 회사에 막대한 금전적 손실을 불러일으키고, 남은 주주들의 주주가치를 심각하게 훼손하는 업무상 배임”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더욱이 고려아연의 이번 자사주 취득에 대규모 차입이 동원된 만큼, 회사의 부채비율도 높아질 것이라는 게 MBK 측 입장이다.

이런 상황에 ‘지나치게 높은 공개매수가=기업가치 훼손’이라는 논리를 다시금 전면에 내세운 건, 투자자 보호를 내세운 당국의 경고에 순응하겠다는 메시지이자, 최 회장 측 자사주 공개매수의 정당성을 흔드는 시도로 해석할 수 있다. 출혈 경쟁보다는 사법의 영역에서 승부를 보겠다는 의지로도 읽힌다. 실제로 이번 입장문에서 MBK는 “자사주 공개매수 절차 중지 가처분 재판에서 반드시 승소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하겠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김광일 MBK파트너스 부회장이 지난달 19일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고려아연 공개매수 관련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뉴스1

◇ 자사주 83만원에 사는 것, ‘적법한 수준의 방어책’인가

이제 시장의 눈은 2차 가처분 재판을 맡은 서울중앙지법 민사50부에 쏠린다. 만약 법원이 이번 가처분 신청을 인용한다면 최 회장 측 자사주 공개매수는 무효화된다. 반면 1차 가처분 때와 마찬가지로 기각될 경우, 최 회장은 경영권 방어에 한걸음 더 다가가게 된다. 공개매수가를 MBK보다 더 높은 90만원대로 올린다면 승산은 더 커진다. MBK의 이번 선언으로 인해 최 회장 측만 공개매수가를 추가 인상할 경우 ‘시장 교란자’라는 오명을 혼자 뒤집어쓸 위험도 생겼지만, 그렇다고 가격을 더 올리지 말란 법은 없다.

관건은 재판부가 고려아연의 자사주 매입을 어떤 관점에서 바라보느냐다. 자본시장 전문 변호사는 “자사주 취득은 현금이 빠져나가 회사 가치가 떨어지는 효과를 내기도 하지만, 반면 주주환원 효과도 있다”며 “그 경계에서 이중적 성격을 띠고 있기 때문에 애매하다”고 말했다.

MBK를 옹호하는 쪽에서는 최 회장 측 자사주 공개매수가 ‘적법하고 비례적으로 적절한 수단인지’ 여부가 중요하다며, 이 부분이 명확하게 소명되지 않는다면 공개매수를 불허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부회장을 맡고 있는 천준범 변호사는 “이번 고려아연의 자사주 공개매수는 대규모 유보금을 소진하고 부채를 증가시키는 엄청난 규모의 공개매수 방어 행위”라며 “회삿돈으로 경영진과 이사회의 자리를 보전하는 게 법적으로 정당화될 수 있는 유일한 논리는, ‘현 경영진이 유지되는 것이 최소한 이 돈을 쓰는 것 이상으로 회사와 전체 주주에게 훨씬 더 좋다’는 것뿐”이라고 주장했다.

이 같은 주장은 1985년 미국 유노칼(현 쉐브론) 경영권 분쟁에서 착안한 것이다. 유노칼은 캘리포니아 유니언 오일 컴퍼니의 지주사였는데, 메사 페트롤리움이 주당 54달러의 공개매수를 통해 적대적 M&A를 시도했다. 유노칼은 이에 자사주 공개매수로 대응했다. 메사가 보유한 주식을 제외한 모든 주식을 주당 72달러에 자사주 형태로 사주겠다고 제안한 것이다. 당시 쟁점은 ‘공개매수가 회사에 대한 위협이었는지’, ‘방어 수단이 위협의 정도에 비례적으로 맞는 것이었는지(방어적 조치가 위협과 비교했을 때 합리적이었는지)’ 등 2가지였다.

마찬가지로 최 회장 역시 MBK-영풍의 공개매수가 회사와 주주들에게 실제로 위협이 됐는지, 또 2조7000억원 규모의 자사주 공개매수가 그 위협 정도에 맞는 적당한 방어 수단인지 입증해야 할 것이라는 게 천 변호사의 설명이다. 쉽게 말해, 최 회장 등 현재 이사회 멤버들이 존속하는 게 회사에 최소 2조7000억원 이상의 이익이 될 수 있다는 걸 증명해야 한다는 얘기다.

◇ ”얼마까진 괜찮고 얼마부터는 배임이라는 논리, 답 안나와”

반면 자사주 취득 금액을 ‘정도의 문제’로 접근한다면 MBK에 불리할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자본시장 전문 변호사는 “자사주 공개매수 규모가 너무 과다하다는 게 문제라면, ‘83만원까진 괜찮고 얼마부터는 배임’이라는 식의 논리가 과연 답이 나오는 논리냐”고 반문했다.

이 변호사는 “쉽게 예를 들어 83만원은 배임이 아니고 90만원은 배임이라고 가정하면, 그 차액 7만원은 누구에게 간다는 것이냐”며 “고려아연의 경우 전량을 소각한다고 했으니 이익이 주주들에게 환원되는 셈인데, 그러면 ‘소각 주식 수를 늘리는 것’을 문제 삼는 게 가능할까 싶다”고 덧붙였다.

모든 주주가 자사주를 팔 기회를 얻는 게 아니기 때문에 기회를 얻지 못한 주주들은 피해를 볼 수 있다는 논리도 있지만, 그럼에도 고려아연은 주주평등원칙에 의거해 모든 주주에게 기회를 균등하게 줬기 때문에 문제가 안 된다는 게 이 변호사의 설명이다.

일각에서는 엄밀히 따지면 배임죄의 적용 대상이 주주가 아닌 ‘회사’이기 때문에 주주에게 환원했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건 아니라는 시각도 있다. 그러나 이 역시 따지기 쉽지 않은 문제다. 자본시장 전문 변호사는 “‘주주 아닌 회사 입장에선 배임’이라는 건 법철학적 영역의 얘기이며 형식 논리에 불과하다”며 “결국 주주들에게 이익이 다 돌아간다는 점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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