숯골원냉면 4대 100년의 평양냉면 명가 “냉면은 겨울이 제맛이죠!”

오래전부터 일본에는 라면의 날(8월 25일), 서양에는 파스타의 날(10월 25일)이 있다. 우리 민족이 가장 즐기는 면 요리 중 하나인 냉면의 날도 있을까? 있다! 2021년부터 전국 냉면 맛집들이 대거 참여, 음력 11월 11일을 ‘냉면의 날’로 지정해 겨울 제철을 맞는 냉면의 가치와 의미를 되새기고 다양한 이벤트를 열고 있다. 올해는 12월 23일(매년 음력 11월 11일)이 제3회 ‘냉면의 날’이다. 이번 호에서는 북한에서 30년, 남한에서 70여년을 합쳐 100여년 동안 4대를 이어오고 있는 평양냉면의 명가(名家) 대전의 〈숯골원냉면〉을 소개한다.

북한 《노동신문》은 2022년 12월 18일 “우리의 ‘평양랭면 풍습’은 인류의 대표적인 비물질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평양랭면은 놋대접에 메밀국수 사리를 놓고 고기와 김치, 남새(채소), 과일 등의 꾸미와 고명을 얹은 다음 시원한 동치미 국물이나 고깃국물을 부어 먹는 음식”이라고 소개했다.

앞서 유네스코 무형유산위원회는 2022년 11월 30일(현지 시각) 모로코 라바트에서 열린 회의에서 북한이 신청한 ‘평양랭면 풍습’을 대표 목록에 올렸다.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 누리집에선 평양냉면을 “북한의 관습적인 사회문화적 음식이며, 평양 사람들의 삶에 깊이 뿌리내린 전통 민속 요리”라고 소개했다.

유네스코 유산 ‘평양냉면’… 남북 70년 갈라져 발전

평양냉면은 남북 간에 대화 분위기가 강할 때 예외 없이 등장했다. 1972년 5월 남한의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이 평양을 방문했을 때 만난 김일성 주석의 첫인사는 “옥류관 냉면은 드셨습니까?”였다. 2000년 6월 첫 남북 정상회담 둘째 날 김대중 대통령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옥류관에서 냉면도 먹었다”고 인사를 건넸다.

2007년 10월 2차 남북 정상회담 때도 둘째 날 김정일 위원장은 노무현 대통령을 만나 “냉면 자주 하십니까? 평양국수랑 서울국수가 뭐가 다릅니까?”라고 물었다. 그러자 노 대통령은 “평양국수가 더 맛이 좋습니다”라고 대답했다.

2018년 4월 판문점에서의 3차 남북 정상회담은 평양냉면을 최고의 화제로 만들었다. 남한에서 평양냉면이 대중화하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정상회담 인사말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어렵사리 평양에서부터 평양냉면을 가져왔습니다. 대통령님께서 편한 마음으로 평양냉면, 멀리 온, 멀다고 말하면 안 되갔구나. (웃음) 맛있게 드셨으면 좋겠습니다”라고 말했다.

평양냉면은 조선 때부터 유명했으며, 이미 19세기 서울에도 평양냉면집이 있었다. 그러나 평양냉면이 남한 전 지역에 보급된 것은 6·25전쟁 이후였다. 해방 뒤부터 전쟁이 끝날 때까지 100만 명 넘는 북한 주민이 남쪽으로 넘어왔다. 이들이 전국으로 흩어지면서 비로소 냉면이 남한 음식이 됐다. 분단과 전쟁으로 냉면은 70년 이상 남북으로 갈라져 발전했다.

피난살이 설움을 안고 태어난 대전 〈숯골원냉면〉

〈숯골원냉면〉은 1920년 1대 창업주인 박재록 씨가 평양에서 숯골원냉면의 전신 〈평양모란봉냉면〉을 개업한 이후 2대 박내섭 씨가 1940년 가업을 이어받았다. 3대째 대를 이은 장남 박근성 대표는 당대 유명인들이 냉면을 먹으러 왔었다고 작고하기 전에 회고한 적이 있다. 평양모란봉냉면은 냉면의 본거지 평양에서도 유명세를 떨친 곳이다. 당시 김일성 주석의 단골집이자 가끔은 김 주석이 어린 김정일의 손을 잡고 오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1954년 남한으로 피난 온 3대 박근성 대표는 대전 숯골(대덕구 탄동면)에 정착한 뒤 가업을 이어 닭 육수와 동치미를 배합한 모란봉냉면의 맛을 재현해 〈숯골원냉면〉을 개업했다.

부친 박근성 대표의 뒤를 이어 4대째 가업을 잇게 된 박영흥 대표는 1991년 현 신성동으로 이전해 부인 윤선 대표와 함께 〈숯골원냉면〉을 경영하고 있다. 박영흥 대표와 윤선 대표는 3대 박근성 대표에게 전수 받은 전통의 맛과 장인정신을 지키며 가업을 이어가고 있으며, 5대 박준호 씨가 가업을 잇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

꿩 곤 육수에 동치미 국물… 北 30년 南 70년 명맥

대부분 피난민이 평양냉면집을 한다고 하지만 육수나 면이 현대적인 입맛에 맞춰 변형된 경우가 많은데, 이 집은 고집스럽게 꿩 육수와 닭 육수에 동치미 국물을 섞는다. 닭(꿩)을 곤 육수에 동치미 국물을 섞어 메밀로 면을 뽑아 말아내는 것. 꾀를 부리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평양냉면을 만드는 것이 대를 이어 지켜온 가족의 사명이다.

고명으로 올라간 계란 지단과 냉면 무, 오이채, 닭살이 면과 호환되어 식감이 좋고 메밀 함량이 높아 고들고들하면서도 쫄깃한 면을 계속 씹다 보니 구수한 향이 입안에서 은은하게 퍼진다.

원래 숯골은 현 자운대 쪽의 지명이다. 그 동네에서 냉면집을 열었고, 현재는 신성동으로 옮겨왔다. 숯골원냉면(비슷한 이름의 냉면집이 여럿 생기는 바람에 원조라는 뜻으로 ‘숯골원냉면’이라고 부른다)의 주방은 4대 박영흥 대표가 맡는다. 그는 대학에 다니면서도 학업보다 냉면 뽑는 일을 더 좋아했다고 한다.

이냉치냉(以冷治冷)… 냉면은 겨울이 제맛

원래 ‘냉면(冷麵)’은 ‘이냉치냉(以冷治冷)’이라고 겨울에 먹는 음식이었다. 면의 재료인 메밀은 보통 가을에 거두고, 국물이 되는 동치미는 겨울에 담그기 때문이다. 가을에 거둔 메밀로 만든 면을 겨울에 담근 동치미 국물에 말아서 동치미 무나 배추 백김치를 얹어서 먹는 게 냉면의 원형이다. 또 잘 풀어지는 메밀국수의 성질상 더운 국물로는 국수를 만들기 어렵고, 차가운 국물은 겨울에만 얻을 수 있으므로 자연스레 겨울 음식이 됐다.

특히 북한에선 집집마다 메밀을 심어서 겨울에 먹었다고 한다. 여름에는 일하느라고 해먹을 새가 없었다. 추운 겨울 아궁이에 불을 때서 바닥이 끓을 때 시원한 냉면을 먹었다고 한다. 이런 풍경은 백석(白石, 1912~1996, 일제강점기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시인이자 소설가, 번역문학가)의 시(詩) 〈국수〉(1941년 4월)에 “겨울밤 쩡하니 닉은(익은) 동티미국(동치밋국)을 좋아하고 (…) 탄수(식초) 내음새, 또 수육을 삶은 육수국 내음새 자욱한 더북한 삿방(갈대자리 방) 쩔쩔 끓는 아르궅(아랫목)을 좋아하는 이것은 무엇인가”이라고 잘 묘사돼 있다.

숯골원냉면 본점, 국민 추천 백년가게 대전 1호점

〈숯골원냉면〉 본점은 2020년 7월 1일 국민 추천 백년가게 대전 1호점으로 지정됐다. 백년가게는 업력 30년 이상의 소상공인(단일 제조업 제외) 중 경영자의 혁신 의지, 제품·서비스의 차별화, 영업의 지속 가능성 등을 전문가가 종합 평가해 선정한다.

이 집은 노포의 어떤 경향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 거래처를 바꾸지 않는 것도 그런 스타일이다. 메밀은 공주 방앗간에서 필요한 만큼 제분해서 가져온다. 수십 년째 거래처다. 닭집, 두붓집도 마찬가지다. 어린 일꾼이었던 배달원이 이제 희끗한 머리가 되어 물건을 가지고 오기도 한다. 이런 것이 바로 노포의 역사를 이룬다.

이 가게 입구에는 몇 개의 분틀(국수틀)이 있다. 나무로 된 것이 두 개, 쇠로 된 것이 한 개다. 이 집의 역사를 말해준다. 홀로 이남으로 탈출한 청년 박근성이 결혼하여 이 분틀로 메밀을 뽑았다. 대를 잇는 냉면 장인의 업을 떠올리게 된다.


정리 이규열(본지 발행인 겸 편집인)
[참고도서] 노포의 장사법 | 박찬일/노중훈 | 인플루엔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