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지배구조(Governance)를 분석합니다.

미국의 가치투자 운용사인 코페르닉 글로벌 인베스터스의 등장으로 LX그룹의 앞날에 묘한 긴장감이 흐르고 있다. 2세 승계의 마침표를 찍으려던 오너 일가와 계열사 지배력 확대를 서둘러야 하는 지주사 LX홀딩스로서는 주주명부에 이름을 올린 깐깐한 이방인이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다.
시장에서는 코페르닉의 독특한 투자 성향이 앞으로 LX그룹 지배구조 개편 과정에서 상당한 나비효과를 불러올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28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코페르닉은 내재 가치 대비 저평가된 기업과 실물 자산에 주목하는 운용사다. 거시경제 전망이나 시장의 유행에 편승하지 않고 독자적인 분석으로 본질적인 가치를 발굴하는 전통적인 상향식 가치투자를 지향한다.
실제로 코페르닉은 단기적인 주가 변동보다 투자 원금이 영구적으로 훼손될 가능성을 본질적인 위험으로 본다. 시장의 외면이나 일시적인 악재로 내재가치 또는 장부가치보다 가격이 크게 낮아진 자산이라면 변동성이 크더라도 과감하게 매수하는 딥밸류 투자 전략을 구사한다.
코페르닉이 한국 대기업의 지주사 체제를 유독 눈여겨본 배경도 이 때문이다. 창립자인 데이비드 아이벤은 한국 기업들이 견조한 이익 창출력을 갖췄음에도 재벌기업의 복잡한 지배구조에 대한 우려로 과도한 지주사 할인을 받고 있다고 평가해왔다. 최근 정부가 추진하는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이 지배구조와 주주환원 개선의 잠재적인 촉매로 작용할 가능성도 열어둔 채 저평가된 지주사에 대한 투자를 이어온 것으로 풀이된다.
이 같은 성향을 지닌 코페르닉의 지분 확보는 향후 LX그룹의 지배구조 개편 방향에 영향을 미칠 주요 변수로 꼽힌다. 코페르닉은 최근 LX홀딩스의 보통주 382만8560주를 보유해 지분율이 5.02%에 달했다고 공시했다. 지난달 중순부터 1주당 7100원에서 7800원대 사이에서 주식을 집중 매집하며 지분율을 끌어올렸다.
그런 와중 LX홀딩스는 핵심 자회사 지분율이 20~30%대에 불과해 지배력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 주요 상장 계열사 지분율은 보통주 기준 △LX인터내셔널 27.83% △LX하우시스 33.53% △LX세미콘 33.08% 등에 그치고 있다. 이 때문에 이들은 회계 처리상 지주사의 온전한 종속기업이 아닌 관계기업으로 분류된다.
과거 대기업들은 곳간이 비었을 때 오너 일가나 지주사에게 유리한 비율로 계열사 간 합병을 하거나 주식 스와프를 단행해 지분을 늘리곤 했다. 하지만 코페르닉이라는 외부 감시자가 주주명부에 버티고 있는 이상 일반 소액주주의 이익을 침해하는 형태의 지분 확대나 개편 시나리오는 소송 리스크에 막힐 수 있다는 분석이다.
또 다른 시나리오는 배당을 둘러싼 오너 일가와의 이해관계 일치 가능성이다. 최대주주 지위를 물려받게 된 구형모 사장은 막대한 증여세를 납부해야 한다. 이를 마련할 수 있는 대표적인 재원 가운데 하나가 지주사에서 받는 배당이다. 저평가 해소와 주주가치 제고를 중시하는 코페르닉의 투자 성향이 오너 2세의 세금 납부 수요와 맞물릴 수 있는 대목이다.
현재 LX홀딩스의 최대주주인 구 회장은 다음달 10일 자신이 보유한 LX홀딩스 보통주 610만주를 장외 증여 형태로 아들인 구 사장에게 넘기기로 했다. 증여 후 구 사장의 지분율은 기존 11.92%에서 19.77%로 두 배 가까이 높아지며 최대주주가 된다.
구 사장이 증여받게 될 주식의 가치는 지난 24일 종가인 7910원 기준 483억원에 달한다. 이에 따라 국세청에 납부해야 할 증여세는 대주주 할증 등을 고려할 때 290억원 안팎으로 추산된다.
이런 이해관계를 놓고 보면 LX홀딩스는 앞으로 배당 확대에 나설 가능성도 커진다. 다만 이 경우 지주사 본연의 역할인 자회사 지분 추가 매입이나 성장동력 확보를 위한 실탄 투자는 그만큼 더 제약받는 딜레마에 빠질 수 있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코페르닉의 진입은 LX그룹 경영진에게 투명한 주주 친화 경영만을 요구하는 강력한 브레이크가 될 것"이라며 "승계 세금을 내야 하는 후계자와 주주환원을 요구하는 외인 주주가 당분간 고배당이라는 한 배를 타겠지만, 지주사 본연의 재투자 여력 측면에서는 장기적으로 양날의 검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황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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