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GOUT Report] 경기상업고등학교 한지윤

성공을 위해 성장하는 과정

첫 타석부터 있는 힘껏 휘두른 배트, 결과는 헛스윙 삼진. 두 번째 타석 역시 타구는 내야를 벗어나지 못하고 아웃되고 만다. 이후 세 번째 타석이자 선발 투수와의 마지막 맞대결이 돼서야 마침내 안타가 터져 나오고, 우리는 이러한 선수를 타율 3할대의 뛰어난 타자라고 부른다. 인생은 성공과 실패가 존재하는 것이 아닌, 성공과 ‘과정’이 존재한다는 말이 있다. 이를 야구에 적용해본다면, 10번 중 세 번의 안타가 나오기까지의 일곱 번의 아웃은 실패가 아닌 타이밍을 맞춰가는 과정이라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실패의 스포츠’라 불리는 야구의 매력에 빠져 성공을 위한 과정을 겪고 있는 한 소년, 한지윤의 이야기를 전해본다.

Photographer Inbi Na Editor Yeonsu Kim Location Gyeonggi Commercial High school

한지윤
출생
2006년 4월 10일
신체조건 188cm 93kg
출신교 서울 가동초-서울 휘문중-경기상업고
포지션 포수 투타 우투우타
2023년 성적 26경기 타율 0.382 2홈런 29안타 29타점 3도루 OPS 1.116

#설레는 처음

<더그아웃 매거진>과는 첫 만남이네요. 독자분들께 간단한 자기소개와 인사 부탁해요. (1월 4일 인터뷰)
안녕하세요. 경기상고 포수 한지윤입니다. (원래부터 <더그아웃 매거진>에 대해 알고 있었나요?) 재작년에 (엄)형찬이 형이 인터뷰해서 알고 있었어요. 그래서 섭외 소식을 듣고 얼떨떨하기도 하고 기분 좋았습니다.

얼마 전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됐는데, 새해 소망은 빌었어요?
2024년에는 아프지 않고 3학년 애들이랑 다 같이 웃으면서 헤어졌으면 좋겠다고 빌었어요. (성적과 관련된 소원은 없네요?) 기록보다 더 중요한 건 다치지 않는 거로 생각해서요. 팀 목표는 우승입니다.

최근에 좋은 소식도 하나 있었죠. ‘2023 퓨처스 스타대상’에서 스타상 수상자로 선정된 거 축하해요! 그날 못다 한 소감이 있다면 전해볼까요?
상을 받을 거라곤 정말 예상 못 했는데, 좋게 평가해 주셔서 영광입니다. 그리고 올해 (황)준서 형이 대상을 받았는데, 내년에는 제가 받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트로피와 함께 상금 100만 원도 받았는데, 어떻게 사용했어요?) 야구용품 구매 쿠폰인데 나중에 배트 사려고 아껴두고 있어요.

그만큼 두각을 드러냈던 2023시즌이었어요. 본인에게는 어떤 기억으로 남았나요?
과정에는 후회가 없는데, 결과에 대해서는 ‘더 잘할 수 있었는데’ 하는 아쉬움은 있어요. 만족도로 표현하면 50% 정도? 개인적으로 만족스러운 한 해는 아니었어요.

#감동적인 처음

지난 청룡기 대회를 통해 경기상고가 창단 이래로 첫 전국 4강 진출에 성공했어요. 그 배경에는 팀의 4번 타자이자 주전 포수인 본인의 역할이 컸다고 평가되고 있던데요?
사실 대회 치르면서 선수단도 그렇고, 감독‧코치님도 저희가 이렇게까지 올라갈 거라곤 예상 못 했거든요. 그동안 함께 노력한 만큼 좋은 결과를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제가 수비하는 동안 뒤로 빠뜨린 공이 거의 없었던 거로 기억하는데, 그 부분에서는 스스로도 좋게 평가하고 있어요.

당시 16강에서는 홈런 포함 4타수 4안타, 8강에서 멀티히트, 마지막 4강에서3타수 3안타까지… 정말 말도 안 되는 기록이에요! 뜨거운 타격감의 비결이 있다면요?
솔직히 운이 따라줬죠. 빗맞아도 안타가 되고, 방망이에 맞기만 하면 안타가 되더라고요. 감사하게도 타격상까지 받아서 뿌듯했습니다.

대회 기간에 스스로 컨디션이 남다르다고 느꼈나요?
그때 장마 기간이랑 겹치면서 경기 지연이 잦았어요. 청룡기 대회가 한 달가량 치러지면서 체력적으로 힘들다고 느껴졌는데, 그게 저한테는 역으로 좋게 작용했습니다. 평소 타격할 때 힘이 들어가면 밸런스가 무너지는 편인데, 힘이 빠지면서 오히려 자세를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았나 싶어요.

16강 경기가 끝나고 이어진 취재진과의 인터뷰에서 “8강에서 그치지 않고 더 높이 올라가 중계에 많이 나가고 싶다”라고 했어요. 평소 관심을 즐기는 성격인가 봐요?
싫어하는 편은 아니긴 한데요. (웃음) 그때 그렇게 얘기했던 건, 저희 학교가 신생팀이고 전국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받은 적이 없었다 보니 학교를 더 알리고 야구 명문으로 거듭나고 싶은 마음이었어요. 그래서 최대한 중계에 많이 나가면 사람들이 알아봐 주고 관심을 가져주시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팀의 4번 타자를 맡으면서 자부심이 느껴짐과 동시에, 때로는 부담감으로 다가오기도 했겠어요.
저는 그 중압감이 좋아요. 마음이 붕 뜨고 어수선하면, 집중이 안 되고 결과도 좋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긴장되는 느낌을 즐기려고 하고 있어요.

청룡기 외에도 특별한 경험이 많았던 한 해였어요. ‘한화 이글스 배 고교 대학 올스타전’에도 출전했는데, 어떻게 참여하게 됐어요?
명단이 발표되기 전에 감독님께서 먼저 알려주셨어요. 대회가 열린다는 걸 듣고 뽑힐 거라곤 정말 상상도 못 했기 때문에 저랑은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소식을 듣고 굉장히 얼떨떨했습니다. 경기하는 동안 관중도 많이 오셔서 애들이랑 되게 재밌었던 하루였어요.

#부족한 처음

사실 순탄치만은 않았던 경기였어요. 7회에 수비로 교체 투입되자마자 팀이 위기를 맞았는데, 당시 경기 상황이 어땠나요?
처음 보는 투수들과 호흡을 맞추면서 어려움이 많았어요. 사인 미스도 한 번 있어서 공이 뒤로 빠지기도 했고, 변화구도 지금까지 받아본 공이랑 느낌이 달랐거든요. 공에 적응하지 못한 채로 경기하면서 힘든 점도 많았지만, 정말 재밌어서 올해도 꼭 다시 나가고 싶어요.

이후 위기를 극복하고 8회에 도루 저지에 성공하면서 이닝을 끝내기도 했잖아요! 도루 저지, 프레이밍 등 신경 써야 하는 게 많은 포지션인데, 포수로서 가장 중요한 자질이 무엇이라고 생각해요?
투수가 편하게 공을 던질 수 있게 해주는 거요. 그러기 위해선 공을 잘 잡고 뒤로 빠뜨리지 않는 게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그 부분에서는 본인에게 100점 만점에 몇 점을 주고 싶어요?) 98점이요. 만족하지 않는 애들도 있을 수 있으니깐 2점은 빼겠습니다!

그럼, 지난 시즌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는 언제였어요?
청룡기 8강 대구상원고전이요. 그날 1회 시작부터 점수를 줬거든요. 게다가 (김)도운이 형이나 (임)상현이 형을 포함해서 상원고 투수진이 좋잖아요. 그래서 오늘 경기 힘들 수도 있겠다 싶었는데, 어느 순간 분위기가 넘어오는 거예요. 포기하지 말고 해보자! 하면서 집중했더니… 갑자기 출루하고 3연속 장타를 치고, 결국에는 7회에 역전해서 정말 짜릿했던 순간이었습니다.

한 번 분위기를 타면 매섭게 몰아치는 게 경기상고의 매력이기도 하죠. 선수단이 꼽는 경기상고의 장점은 어떤 게 있을까요?
방금 훈련할 때 보셨다시피 저희 팀이 파이팅이 넘치고 팀 케미가 되게 좋아요. 항상 감독님께서 팀워크를 강조하셔서 자연스럽게 스며들었어요.

올해 KBO리그 신인드래프트 핵심 포지션이 포수인데, 그중에서도 최대어로 꼽히고 있어요. 이와 관련된 평가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요?
정말 영광이죠. 1학년 때까지만 해도 최대어라는 건 상상도 못 했어요. 최대어라는 평가가 굳혀지게 남은 기간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올해의 최대어는 ‘나’다?) 네!

최대어로 언급될 수 있었던 다른 포수들과 차별화된 본인만의 장점이 궁금한데요?
보통 볼 배합의 공식이 어느 정도 존재하거든요. 근데 저는 여우 같은 볼 배합이랄까요? 생각지도 못한 경기를 보여주는 게 장점인 거 같아요. 그리고 초등학교 때부터 블로킹은 잘한다고 생각했는데요. 고등학교 오면서 엄종수 코치님과 대화도 자주 나누고 연습량도 늘리면서 이젠 그 누구보다 자신 있습니다!

통상적으로 선수에게 큰 체격은 장점이지만, 포수로서는 단점으로 보는 시선도 존재해요. 체격이 커서 겪은 어려움은 없었나요?
포수는 체격이 크면 안 된다고 하는 이유를 알 거 같긴 한데, 전 단점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어요. 아무래도 체격이 크면 그만큼 민첩성이 떨어진다고 생각하시거든요. 근데 저 같은 경우에는 단거리 달리기 기록이 학교 내에서 빠른 편에 속하고 전혀 느리지 않아요. 체격이 커도 빠르면 그만 아닙니까? (능청)

맞아요. 상당히 민첩한 편이라 프로에서도 흔치 않은 ‘도루하는 포수’잖아요! 경기할 때 ‘도루하기’와 ‘도루 저지하기’ 중에 어떤 게 더 짜릿해요?
둘 다 좋아서 못 고르겠어요. 도루 잡는 거는 저 혼자 할 수 있는 게 아니고 투수와 잘 맞아야 성공하는 거잖아요. 투수와 호흡이 잘 맞는다는 점에서 매력 있어요. 도루 성공은 그 반대로 저 혼자서 타이밍을 빼앗아 상대 배터리를 흔들어 놓는다는 게 기분 좋습니다. 포수여서 상대방이 도루했을 때의 그 기분을 누구보다 잘 알거든요.

#특별한 처음

최근에 등번호를 12번으로 바꿨던데요. 특별한 의미가 담겨 있을까요?
처음 중학교 1학년 때 남는 번호 중에 12번이 있어서 별생각 없이 달았다가, 3학년 때 한번 10번으로 바꿔봤어요. 이후 고등학교 왔는데 10번이랑 12번 모두 주인이 있어서 34번을 달았는데요. 이제는 (김)재상이 형이 삼성으로 갔으니깐 다시 12번으로 돌아왔습니다. 예전부터 달았던 번호인 거지, 등번호에 따로 의미를 부여하지는 않아요.

그럼 징크스도 없겠네요?
징크스는 하나 있어요. 경기장 가는 버스에서 마지막 곡으로 뉴진스의 ‘Ditto’를 듣고 가요. 그 노래를 좋아해서 전지훈련 때부터 계속 들었는데, 이후 윈터리그 때 성적이 잘 나왔거든요. 그래서 지금까지 쭉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나중에 프로 데뷔하게 된다면 하고 싶은 등장곡도 있어요?
이번에 KIA로 이적하신 저희 트레이너 코치님이 나중에 프로에 가게 된다면, ‘The Drum’이라는 노래를 등장곡으로 사용하라고 추천해 주셨어요. 등장곡은 웅장한 느낌의 노래로 하고 싶습니다.

어린 시절 LG 트윈스 팬이었던 엘린이 출신이라고 알려져 있어요. 부모님께서 야구를 좋아하셨나 봐요?
아뇨, 어릴 때 야구를 좋아한 건 부모님이 아니라 형의 영향이 컸어요. 형 따라서 야구를 보러 갔다가 처음에는 SK 와이번스(현 SSG 랜더스)를 좋아했는데, 부모님이 한쪽으로 통일하라고 하셨어요. (웃음) 근데 또 LG가 멋있잖아요. 특별한 이유 없이 ‘와… 멋있다’라는 생각이 드는 팀이에요.

최근에도 직관한 적 있어요?
요즘도 가끔 가는데 형이 맨날 오렌지석으로 예매해서 응원석으로만 가요. 근데 계속 일어나야 하니깐 너무 힘들어요! (그럼, 응원가도 열심히 부르겠네요?) (박해민의 응원가 율동을 하며) 그렇죠, 거의 다 알고 있어요. (어떤 선수의 응원가를 제일 좋아해요?) 음… 홍창기 선수요!

야구 외에 다른 스포츠에는 관심 없었어요?
중학교 때 농구도 좋아했어요. 마침 학교에 농구부도 있어서 농구를 할 수 있는 환경이 잘 돼 있었거든요. 그래서 점심시간에 친구들이랑 농구도 즐겨 했는데, 요즘은 손가락을 다칠 수도 있으니깐 안 하고 있어요. (농구에 재능은 없었어요?) 뛰어나게 잘하진 않았는데 그래도 다른 애들보다는 잘했죠. (뿌듯)

운동 말고 다른 취미는 없어요? 평소 스트레스를 받으면 어떻게 푸는 편이에요?
불 끄고 잠을 오래 자거나 게임을 하면서 편하게 쉬는 걸 좋아해요. (MBTI가 내향형인 I인가 봐요?) ESTP인데 E랑 I는 반반 같아요. 친구들 만나는 것도 좋아하고 막상 나가면 재밌게 노는데 자주 나가지는 않아요. 친하게 지내는 애들이 다 야구를 하다 보니 시간 맞추기가 어렵더라고요.

아직 고등학생이라 학교 수업도 들어야 하잖아요. 공부는 잘하고 있어요?
노코멘트 하겠습니다! (야구부 친구들이랑 점수 내기는 안 하나요?) 해본 적은 없는데 그래도 애들 중에서 중간 정도는 된다고 생각해요. (웃음)

#다가올 처음을 위해

또래 친구들을 보면 한창 장래 희망을 고민할 나이잖아요. 만약에 야구를 안 했으면 지금쯤 어떤 꿈을 꾸고 있을까요?
평범한 남학생이었을 거 같아요. 어릴 때부터 운동이라면 다 좋아했는데, 야구처럼 하고 싶다는 마음은 든 적이 없었거든요. 야구 말고는 할 수 있는 것도 없고, 하고 싶은 것도 없어요.

어린 나이에 꿈을 정하고 10년 넘게 야구를 해오면서 불안했던 적은 없었어요?
많았죠. 운동하기 싫었던 적도, 그만두고 싶었던 순간도 많았어요. 원하는 만큼 결과가 안 나오고 스스로 부족하다고 느껴지면 마음이 아프더라고요. (그런데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하는 이유가 있다면?) 여전히 야구가 재밌습니다.

그렇게 흔들릴 때 본인을 붙잡아주는 문장도 있을까요?
‘실패했다는 것은 시도했다는 것이다’요. 야구를 실패의 스포츠라고 부르잖아요. 다른 스포츠 중에 축구를 예로 들면, 페널티킥 성공률이 30%면 잘하는 선수가 아닌데, 야구는 타율이 3할만 넘으면 최고의 타자로 불리는 게 매력적이에요. 실패가 거듭되더라도 10번 중 3번만 성공하면 되니깐, 실패에 대한 두려움 없이 계속 도전할 수 있는 거 같아요.

본인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야구선수는 어떤 모습이에요?
학교 운동장에도 크게 쓰인 문장인데, ‘팀보다 위대한 선수는 없다’라는 말을 평소에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거든요. 종종 본인의 경기가 안 풀리는 날이면 팀 분위기 자체를 안 좋게 만드는 선수가 있어요. 야구장에서 감정을 표출하거나 팀에 안 좋은 영향을 끼쳐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야구선수는 항상 팀을 먼저 생각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프로에 가기 위한 마지막 관문만이 남았네요. 올 한 해를 어떻게 보낼 예정인가요?
후회 없는 한 해를 보내고 싶어요. ‘그때 조금만 더 열심히 했으면 잘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은 안 들었으면 좋겠습니다. 비록 제 실력이 부족해서 야구를 그만두게 되더라도, 그 마지막 순간에 후회는 남겨두고 싶지 않아요.

마지막으로 한지윤의 꿈을 함께 응원하는 팬분들께 한마디 전하며 마무리할게요!
예전에는 정말 상상도 못 했는데 이렇게 많은 관심과 응원 보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 응원에 걸맞은 결과로 보답할 수 있도록 앞으로 더 노력하겠습니다.

위 기사는 더그아웃 매거진 2024년 154호 (2월 호)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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