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0만원 훔쳤다고 17년 옥살이" 분노…흉악범이 된 잡범의 절규[뉴스속오늘]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뉴스를 통해 우리를 웃고 울렸던 어제의 오늘을 다시 만나봅니다.
1988년 10월 15일, 지강헌 일당 4명이 서대문구 북가좌동 고모씨 집에 잠입해서 고씨의 가족을 인질로 잡았다.
지강헌을 비롯해 안광술, 한의철, 강영일은 10월 15일 오후 9시 40분쯤 서울 서대문구 북가좌동의 한 가정집에 들어가 가족을 인질로 잡았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편집자주] 뉴스를 통해 우리를 웃고 울렸던 어제의 오늘을 다시 만나봅니다.
"유전무죄! 무전유죄!"
1988년 10월 15일, 지강헌 일당 4명이 서대문구 북가좌동 고모씨 집에 잠입해서 고씨의 가족을 인질로 잡았다.
지강헌은 그해 10월 8일 영등포교도소에서 충남 공주교도소로 이감되던 25명 중 12명과 함께 집단 탈주하고 서울 시내로 잠입해 인질극을 벌이다가 경찰이 쏜 총에 사살당했다.
560만원가량 절도를 저지른 자신은 징역 7년에 보호감호 10년 등 17년 옥살이를 하는 반면, 70억원 이상을 횡령한 전두환 전 대통령의 동생 전경환씨는 겨우 7년(1991년 가석방)을 선고받은 것을 탈출 이유로 들었다.
그는 인질극을 벌이며 "돈 없고 권력 없이는 못 사는 게 이 사회"라면서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발언을 했다.
1988년 10월 8일 영등포교도소에서 대전과 공주교도소, 공주치료감호소로 이송되던 25명 중 12명이 교도관을 흉기로 찌르고 탈주해 서울 시내로 잠입했다.
당초 이들은 잡범이었으나 교도권을 흉기로 찌르고 권총을 탈취하면서 흉악범이 됐다.
12명 중 5명은 그날 밤 검거됐고, 1명은 14일 자수 의사를 밝힌 뒤 체포됐다. 지강헌을 비롯해 안광술, 한의철, 강영일은 10월 15일 오후 9시 40분쯤 서울 서대문구 북가좌동의 한 가정집에 들어가 가족을 인질로 잡았다.
사건은 인질 중 한 명이 다음날이 16일 오전 4시 몰래 빠져나와 경찰에 신고하면서 드러났다. 경찰은 거의 모든 경찰력을 현장에 집결시켰고, 매체는 무장 인질극을 생중계했다.
1988년 10월 16일 오후 12시쯤, 인질극을 벌인 일당 중 강영일이 협상을 위해 밖으로 나와 있을 때 한의철과 안광술은 지강헌이 가지고 있던 총을 빼앗아 극단적 선택을 했다.
지강헌은 경찰에게 1967년 히트곡인 비 지스의 '홀리데이'(Holiday)가 담긴 카세트테이프를 요구했다. 그는 '홀리데이'를 들으며 창문을 깨 유리조각을 자신의 목에 갖다 댔다.
총소리가 들리자 경찰은 인질이 위험하다고 판단해 현장에 진입했다. 지강헌은 경찰이 쏜 총에 맞고 현장에서 검거됐다. 경찰은 그를 인근 병원으로 옮겼으나, 결국 약 2시간 뒤 과다출혈로 숨졌다.
인질극 일당 중 유일한 생존자인 강영일은 이 일로 징역 9년형을 추가로 선고받았으며 2007년 6월 만기 출소했다.
당시 지강헌 일당은 인질극을 벌이면서도 "이해해 달라", "조금만 참아 달라", "해치지 않겠다" 등 흉악범과 거리가 먼 모습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인질극에서 풀려 난 가족들은 "죄는 미워도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말이 실감 났다"며 강영일의 선처를 청한 것으로 전해졌다.
지강헌 탈옥 및 인질극 사건을 계기로 교정직 공무원(교도관)들의 처우가 개선됐다. 수감자들에 대한 몸수색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주원인이 과도한 근무 시간으로 인한 교도관들의 피로라는 지적이 나왔기 때문.
당시 교도관들은 사실상 25시간씩 근무해야 하는 '2부제'라는 가혹한 환경에 처해 있었다. 지강헌 일당 역시 교도관들이 피곤해서 이송 중 곯아떨어질 것을 예상하고 일을 벌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후 2부제는 3부제로 전환됐다.
아울러 사건을 촉발한 원인 중 하나인 보호감호제도 역시 '이중처벌'이라는 지적을 받으면서 개정돼 2005년 폐지됐다. 1980년대 전두환 신군부가 "상습범은 형기 종료 후에도 즉각적인 사회 복귀를 막아야 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시설에 가두는 제도였다.
차유채 기자 jejuflower@mt.co.kr
Copyright © 머니투데이 & mt.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 '이혼 3번' 이상아, TV 속 첫남편에 분노…"가끔 본다, 무슨 얘기 하는지" - 머니투데이
- 이진호, 빚 원금만 23억…"부모님 일로 급해" 동료들에 손 벌렸다 - 머니투데이
- 초아, 33살에 자궁경부암 진단…"앞이 안 보일만큼 눈물 쏟아내" - 머니투데이
- 약혼한 남친 집에서 발견된 여자 속옷…"여장이 취미" 충격 고백 - 머니투데이
- 신정환 아이도 탔는데…"졸음운전 차에 받혀, 엄청난 속도 내더라" - 머니투데이
- "이런 비는 200년에 한 번"…제주, 태풍 '콩레이'로 이틀째 물폭탄 - 머니투데이
- "14조원 안 내면 주한미군 철수"…트럼프 컴백, 상·하원 싹쓸이 땐 악몽 - 머니투데이
- "주민들 연 80만원 넘게 준대" 우르르…이 섬, 인구가 늘어났다 - 머니투데이
- 화사, '과감' 옆트임+초밀착 드레스…모델과 같은 옷 다른 느낌 - 머니투데이
- 지드래곤, 태양 학창시절 폭로…"눈썹 스크래치·어깨빵하고 다녀" - 머니투데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