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사주고 옷사줬던 이모가 사실은 엄마였어요.." 엄마를 이모로 알고 지낸 배우의 눈물

모델 정혁, 반듯한 얼굴과 여유 있는 말투로 ‘부잣집 도련님’ 같은 인상을 주지만 그의 어린 시절은 그 이미지와 거리가 멀었다.

세 살 무렵 부모님의 이혼으로 아버지 밑에서 자라며 반지하 집에서 기초생활수급을 받던 유년기를 보냈다.

주말이면 주민센터에 들러 쌀과 라면을 받는 일이 익숙했고, 늘 같은 옷만 입다 보니 친구들 사이에선 놀림도 받았다.

‘왜 더럽냐’는 말까지 들었다고 했다. 그래도 그 시절, 유일한 위안이었던 건 개그 프로그램이었다. 개그콘서트를 보며 웃음을 잃지 않으려 애썼고, 그래서인지 어린 시절 꿈도 개그맨이었다.

실제로 공채 개그맨 시험을 여러 번 봤지만 번번이 고배를 마셨고, 결국 현실을 받아들이며 방향을 틀었다.

그렇게 모델이라는 길로 들어서게 된 건 군 제대 후 아르바이트를 하던 유니클로 매장에서 동료들의 권유가 계기가 됐다.

25살, 직접 포트폴리오를 만들어 서울패션위크 오디션에 지원했고, 그렇게 2015년 첫 런웨이를 밟았다.

뒤늦은 출발이었지만 단단히 준비된 시작이었다.


어머니와는 이혼 후 오랫동안 연락이 끊겨 있었다. 그러던 중, 중학생이 된 어느 날 ‘이모’라며 한 여성이 집을 찾아왔다.

레스토랑에서 밥을 사주고, 마트에서 필요한 걸 마음껏 골라주던 그 ‘이모’.

“이모가 잘 사나 보다”라고 생각했지만, 나중에야 그 사람이 엄마라는 걸 알게 됐다.

자연스럽게 멀어진 관계였지만, 지금은 다시 이어져 잘 지내고 있다고 한다.

부모 사이의 연은 끊어졌을지 몰라도, 부모로서의 마음은 여전히 남아 있었던 것이다. 정혁은 “엄마는 지금도 아빠와 왕래를 하고 있다”고 전했다.

정혁은 아버지에 대한 미안함과 감사함도 숨기지 않았다. 한창 바빴던 아버지는 졸업식, 체육대회, 학예회 같은 학교 행사에 참석하지 못했다.

그 시절을 돌아보며 “어릴 땐 외로웠지만 지금은 이해된다”고 말했다.

방학 때마다 시골 할머니 댁에 보내졌던 기억도 있다. 아버지가 잠깐 바람 쐬고 온다고 하더니 한 달을 통째로 맡기고 돌아오지 않았던 날들.

“버리고 간 거 맞다”며 웃었지만, 그 이면엔 아버지의 고단함도 있었다.

아버지는 “나가서 점심 한 끼 챙겨줄 사람도 없었고, 적어도 거기선 세끼 밥을 먹일 수 있으니…”라며 조심스레 속마음을 털어놨다.

그렇게 자라온 정혁은, 어른이 된 지금도 아버지를 보면 눈물이 난다고 했다.

“아빠는 내 눈물 버튼”이라며, “원망이 아니라 감사의 마음”이라고 담담하게 말했다.

가난했던 시절, 반찬이 없어 라면으로 끼니를 해결하던 그는 지금도 ‘라면 덕후’로 유명하다.

컵라면을 고이 사와 뜨거운 물을 붓고, 어머니가 담가준 김치를 곁들여 먹는 소소한 식사.

어린 시절엔 그게 전부였지만 지금은 그마저도 따뜻한 기억이 됐다.

정혁은 스스로를 ‘라믈리에’라 부르며, 라면 덮밥을 만들고, 물고기 밥을 먼저 챙기는 일상을 소중히 여긴다.

에어컨 없이 등목으로 더위를 식히고, 다 쓴 치약을 가위로 잘라 끝까지 사용하는 모습에서 보이는 건, 단순한 절약이 아니라 삶을 대하는 태도다.

정혁은 지금도 결혼은 신중하게 생각 중이다.

“여유가 없다면 결혼은 낭떠러지로 가는 기분”이라며 비혼주의를 밝히기도 했지만, 언젠가 결혼하게 된다면 결혼반지 대신 손가락에 문신을 새기고 싶다는 말도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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