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세 박인희 “요즘 분에 넘치는 사랑… 나이 생각하면 기이한 경험”

장재선 기자 2024. 10. 2.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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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년만의 콘서트 전국서 열풍
“관객들 울고 웃으며 하나돼
가슴에 쌓인게 많구나 느껴”
최근 산문·시집 3권 재출간
31일 태안예술제서 피날레
박인희 씨는 “팬들의 사랑이 과분해 어쩔 줄 모르겠다”고 했다. 아래 사진은 KBS ‘7080’에 나온 것으로, 박 씨와 이해인 수녀의 중학생 때 모습을 볼 수 있다. 마음의숲 제공

박인희 씨는 ‘노래하는 시인’이자 ‘문학하는 방송인’이다. 78세의 나이에 콘서트를 잇달아 열고, 산문집 1권과 시집 2권을 복간했다. 여전히 차분하면서도 정감 있는 목소리로 콘서트에서 라디오 방송 DJ 시절을 재현해 관객들을 매혹했다.

“제가 요즘 분에 넘치는 사랑을 받고 있어요. 나이를 생각하면 기이한 경험이에요.”

그가 지난 6월 연세대 대강당에서 연 8년 만의 콘서트는 1641개 좌석이 모두 매진됐다. 9월 21일 같은 장소에서 진행한 앙코르 콘서트도 마찬가지였다. 객석을 꽉 메운 관객들은 그의 노래와 시낭송에 울고 웃으며 하나가 됐다.

“커튼콜 때 객석에 내려갔는데, 구석에 휠체어 탄 분이 계시더군요. 저도 모르게 가까이 가서 손을 잡아줬더니 사진을 함께 찍고 싶어 하셨어요. 가슴이 뭉클했지요.”

그는 이달 31일엔 ‘태안 예술 가곡의 밤’의 피날레를 장식한다. 이 행사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 50인조 오케스트라와 유명 성악가들이 출연한다. “주최 측에서 피날레를 저더러 해달라고 요청하시니 영광이지요. 지난 4월 태안공감콘서트 출연 때 군민들께서 참 좋아해 주셨기 때문이라고 하더군요.”

그는 중년들이 트로트에만 열광하는 듯 싶지만 그 내면엔 다른 장르의 노래를 듣고픈 욕구가 있을 것이라고 했다. “제 노래를 들으며 우는 분들이 참 많아요. 이분들의 가슴에 쌓인 게 참 많구나, 라고 생각을 해요. 각박한 세상에 지쳐서 위로받고 싶고 기대고 싶겠구나….”

박 씨는 1970년대에 대표적 포크 가수였다. ‘모닥불’ ‘봄이 오는 길’ ‘방랑자’ ‘그리운 사람끼리’ ‘끝이 없는 길’ 등 수많은 히트곡을 갖고 있다. 박인환의 시 ‘목마와 숙녀’는 그의 낭송 덕분에 명시 반열에 올랐다. 그는 가사를 직접 쓰기도 했다. 라디오 방송 프로그램을 10여 년 진행하며 절정의 인기를 구가했다. 그러던 1981년에 돌연 미국으로 떠났다. 현지에서 한인 방송을 진행하고, 일시 귀국해서 공중파 프로그램을 맡기도 했다. 그러나 이후 오랫동안 모습이 보이지 않자 사망설 등 루머가 나돌았다.

그는 2016년 KBS ‘불후의 명곡’ 초청을 계기로 귀국해 35년 만에 국내에서 콘서트를 했다. “그때 12번 공연하며 전국을 다 가봤어요. 엎드려 절할 만큼 감사한 일이지요. 그로부터 8년 세월이 흘렀는데도 이렇게 좋아해 주시니….”

그는 미국으로 바로 돌아가지 않고 올가을 내내 한국에 머물 예정이라고 했다. 각종 콘서트와 시낭송 초청에 응하는 한편 그동안 메모해놨던 노래, 시를 완성하는 작업을 하기 위해서다.

컴맹으로 디지털 문외한이었던 그는 요즘 유튜브 영상을 보며 감탄을 흘린다. ‘불후의 명곡- 박인희편’ 조회 수가 최근 급격히 늘어 1000만 명을 훌쩍 넘어선 것이 신기해서다.

KBS 제주방송국이 특별 제작해서 지난달 14일 전국으로 방송한 ‘노래하는 시인 박인희의 콘서트 7080 플러스’ 영상도 2주 만에 30만 뷰를 바라보고 있다. “그 프로그램은 KBS 본사에서 일하다가 제주에 머물러 살게 된 허주영 PD가 정성을 들여 만들었어요. 저에게 잊지 못할 경험을 선물해줬지요. 허 PD는 부산 수녀원에 있는 해인이(이해인 수녀) 영상을 떠왔어요. 저를 깜짝 놀라게 해 주려고 사전에 이야기를 하지 않고….”

영상 속에서 이해인 수녀는 박 씨를 본명인 춘호라고 부르며 애틋한 정을 표현한다. 알려진 것처럼, 그와 해인 수녀는 1958년 풍문여중 입학식에서 만난 이후로 평생 우정을 나눠온 벗이다. 서로 만나지 못할 때도 편지와 전화를 통해 꾸준히 교감해왔다.

신앙과 문학을 매개로 그가 해인 수녀와 나눴던 편지글은 그의 책 ‘우리 둘이는’에서 볼 수 있다. 1987년에 나왔던 이 책은 해 출판사 마음의숲에 의해 복간됐다. “책이 절판됐는데, 팬들이 찾는 덕분에 중고 책방에서 20만∼30만 원에 팔린다는 거예요. 그런 상황이 제 마음에 짐이 됐지요. 마침 1987년에 책을 편집했던 권대웅 씨가 지금은 출판사 대표가 됐다며 책을 다시 내겠다고 하기에 감사한 마음으로 응했어요.”

책에는 유명 가수이자 방송인으로 살던 그가 미국으로 홀연히 떠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담겨 있다. ‘추측으로 도마 위에서 난자당하는 삶은 내가 원하는 삶이 아니었다. 유명인 뒤에는 내면의 붕괴가 컸다.’

책은 그의 편지와 함께 일기를 보여준다. 자신의 무너진 내면을 신앙으로 다시 일으키고, 이국에서 아들을 키우며 함께 성장하는 모습이 거기에 있다. ‘우리 둘이는’에는 소설가 김승옥 씨가 박 씨의 영성 체험에 대해 쓴 글도 있어 이채롭다. “해인이가 기거하는 부산 수녀원에서 김 선생님을 만났어요. 그분이 (저에 대해) 쓴 글을 계기로 제 책도 나오게 됐지요.”

이번에 함께 복간한 시집 ‘소망의 강가로’와 ‘지구의 끝에 있더라도’는 각각 1989년, 1993년에 나왔던 것들이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 현대인의 고독한 영혼을 신앙의 온기로 안아주는 작품이 주류를 이룬다. 그런데 두 시집에 공통적으로 나오는 이름 ‘안젤라’는 누구일까.

“저에게 힘이 돼주는 친구의 가톨릭 세례명입니다. 이번에 제가 처음 공개하는데, 그 친구의 세상 이름은 이명숙이에요. 한국 화단의 거목인 이준 화백의 큰딸이지요. 아시다시피, 해인 클라우디아 수녀의 원래 이름도 이명숙이잖아요. 저와 가장 가까운 친구 두 명의 이름이 같으니… 하하, 운명이겠지요.”

장재선 전임기자 jeijei@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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