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른 배 두드리며 '쿨쿨', 도파민 좇던 2030…"천천히 늙을래" 달라졌다

하수민 기자, 유예림 기자 2024. 10. 30. 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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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리포트] '저속노화' 시장이 뜬다 (上)
[편집자주] 달고 짠 '마라탕후루'부터 유튜브 '숏츠' 등 도파민을 좇던 젊은 세대가 달라졌다. 전문적이고 세세한 '건강관리'와 천천히 나이 들어가는 '저속노화'에 관심을 보이고 있는 것. 저속노화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유통업계는 원물 재료를 강화한 건강식품부터 제로당, 알콜음료까지 다양한 제품을 선보인다. 뷰티업계에선 '슬로에이징' 캠페인이 벌어진다. 떠오르는 '저속 노화' 트렌드와 시장을 조명하고 실제로 가능한지, 과도한 욕구는 아닌지 함께 짚어본다.
샐러드부터 먹고 산책은 필수…"천천히 늙을래" 2030이 달라졌다

가속노화·저속노화/그래픽=이지혜
#직장인 강연오씨(28)는 최근 혈당관리에 '진심'이다. 가당 음료 섭취를 줄이고 식사 할때는 채소와 단백질부터 천천히 섭취해 혈당이 가파르게 오르지 않도록 관리한다. 흰쌀밥 대신 다양한 콩과 곡류가 섞인 잡곡밥을 먹는다. 식후 산책도 필수다. 강씨는 "배달음식을 먹고 배부른채로 누워서 유튜브를 보다 잠들던 시절보다 덜 피로하고 개운하다"면서 "자기 절제가 최고의 자기 사랑이라는 말을 되새기면서 저속노화 생활을 즐기려고 한다"고 말했다.

밤 늦게까지 유튜브 숏츠를 보다 수면 부족에 시달리고 '마라탕후루' 등 단짠단짠(달고 짠) 음식 굴레에 중독돼 '가속노화'의 삶을 살던 2030 세대가 '저속노화'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선천적인 노화 요인은 피할 수 없지만, 생활습관 개선을 통해 천천히 나이 들어가는 방법을 찾고 있는 것.

가속노화란 정희원 서울아산병원 노년내과 교수가 저서를 통해 소개한 개념으로 정제 탄수화물, 당 섭취 등의 식습관과 운동 부족, 과도한 스트레스로 인해 실제 정상적인 노화 속도보다 빠르게 신체적인 노화가 진행되는 것을 뜻한다. 가속노화를 오래 방치할 경우 신체적·정신적인 노쇠가 빨리 찾아와 삶의 질이 낮아지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정희원 서울아산병원 노년내과 교수는 직접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운영하면서 식단 관리 등 생활 습관 개선을 통해 노화 속도를 4분의 1까지 늦출 수 있다고 전파하고 있다. 사진은 정 교수가 운영하는 저속노화 식단 커뮤니티 채널 갈무리.

정 교수는 직접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운영하면서 식단 관리 등 생활 습관 개선을 통해 노화 속도를 4분의 1까지 늦출 수 있다고 전파하고 있다. 정 교수가 만든 저속노화 식단 커뮤니티에는 이날 기준 2만8000여명이 참여 중이다. 커뮤니티 참여자들은 자신의 식단을 공유하거나, 다른 이들을 위해 손쉽게 따라할 수 있는 저속노화 식단 레시피를 공유한다.

생활습관을 통한 혈당관리는 주로 당뇨병환자나 중장년층의 관심 분야였다. 하지만 최근 2030세대에서 당뇨와 고혈압 환자의 비율이 가파르게 증가하며 건강을 챙기기 시작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통계에 따르면 2030세대 당뇨환자는 2018년 13만9000여명에서 2022년 17만4000여명으로 증가했다. 고혈압 환자는 21만3136명에서 25만8832명으로 21.4% 늘었다. 2030세대의 건강의 적신호가 켜지자 건강관리의 방법 중 하나로 저속노화가 하나의 트렌드로 떠오르고 있는 것.

저속노화를 위해서는 생활습관 말고 마인드셋(인생을 바라보는 시각)도 중요하다. 정 교수는 "성공과 즐거움은 자기돌봄에서 시작할 수 있다는 생각을 바탕으로 무엇을 하더라도 과도하게 치우치지 않는 중용의 마인드셋이 기본이 되어야 한다"며 "노화에 대해 부정적으로 바라보기보단 노년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성장의 마인드셋도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이같은 트렌드를 반영해 기업들도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다. 최근 3년간 GS25에서 판매된 저당, 저칼로리, 제로슈거 등 제품군의 전년 대비 매출 신장률은 2022년에 93.3%, 2023년에 126.3%, 그리고 2024년 10월 27일 기준으로 88.3%로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특히 빵, 아이스크림 등 저당 디저트 매출의 경우 전년 동기 대비 140% 상승했으며 상품수도 지난해 10여개에서 30여개로 확대됐다. 식음료 업계도 다양한 저당, 저칼로리 제품을 내놓는 한편 주류업계는 제로, 라이트 제품을 속속들이 선보이고 있다.

"단순 다이어트 아냐"…저속노화 실천 위해 당·알코올 줄이는 2030
식품·유통업계 '저속노화' 제품 사례/그래픽=이지혜

"요즘 젊은 세대는 건강에 별다른 문제가 없어도 어떤 음식을 먹으면 혈당이 높아지는지 셀프 혈당 측정기로 확인하고 다이어트에 활용합니다. 소비자들은 이런 혈당에 맞춰 음식을 조절하기 때문에 당을 낮춘 식품을 계속 개발할 수밖에 없습니다."

한 식품업계 관계자는 제품 개발을 위해 혈당 관리에 관심을 갖게 된 배경을 이같이 설명했다. 저속노화를 실천하는 여러 방법 중 2030세대가 가장 심혈을 기울이는 건 체중, 혈당에 직결되는 식단 관리다. 따로 시간과 비용을 들여야 하는 운동이나 건강 기기 구매에 앞서 식단을 주도적으로 짜고 음식을 고른다.

식품·유통업계도 이러한 트렌드를 적극 공략한다. 제로(Zero) 칼로리·설탕 제품 출시가 가장 활발해 시장 규모도 매년 커지고 있다. 과거 제로는 일반 제품을 보조하는 수준에 그쳤다면 매출 비중이 커지면서 식품사의 주요 제품군으로 자리 잡은 모습이다. 대표 제품인 제로 탄산음료 시장은 2018년 1634억원에서 지난해 1조2775억원(유로모니터 기준)으로 커졌다.

주류업계도 제로 열풍에 올라타고 있다. 하이트진로는 최근 맥주 '테라'의 신제품 '테라 라이트'를 출시했다. 알코올 도수는 4.0%, 열량은 100㎖ 기준 25㎉로, 기존 테라보다 모두 낮췄다. 원료, 첨가물에 당류나 감미료를 사용하지 않으면서도 맥주 본연의 맛을 살렸다. 하이트진로는 테라 라이트가 출시 2주 만에 판매량 1000만병을 넘어서자 초기 생산량을 계획 대비 1.5배 이상 늘리기도 했다.

건강기능식품·발효유 등도 혈당 관리하는 소비자를 겨냥해 재단장했다. hy는 장수 브랜드 '윌'의 당 함량을 70% 줄인 '헬리코박터 프로젝트 윌 당밸런스'를 출시했다. 혈당 상승을 억제하는데 도움을 주는 난소화성말토덱스트린도 2300㎎ 함유했다. 출시 첫 달 130만개 판매됐고 7월 기준 누적 판매량은 약 600만개다. 국내 건강기능식품 1위 기업 KGC인삼공사는 혈당 관리 전문 브랜드 '지엘프로(GLPro)'를 이달 선보였다.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혈당 조절 기능성'을 인정받은 정관장 홍삼과 혈당 관리에 도움되는 부원료를 함유한 것이 특징이다.

견과나 과일, 구황작물을 활용한 원물 간식을 찾는 소비자도 늘었다. 각종 첨가물이 들어간 가공식품 대신 있는 그대로의 원물을 건강하게 즐기려는 것이다. 롯데마트가 판매하는 건강 간식 상품의 올 상반기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약 5배 가량 증가했다. 100% 국내산 '고구마 말랭이', '고구마 바', '고구마칩' 등이다. 롯데마트·슈퍼는 매출에 맞춰 미국 캘리포니아산 호두 원물을 선별한 '프리미엄 호두 정과', 고구마와 같은 뿌리 작물 카사바로 만든 '카사바 스틱'을 출시했다.

아워홈 마곡 본사에 마련된 캘리스랩 건강 부스존(오른쪽부터 스트레스혈관측정기, 혈압계, 인바디, 영양컨설팅 데스크)./사진제공=아워홈

저속노화 트렌드는 구내식당으로도 확산하고 있다. 식당에서 한끼를 때우는 것을 넘어 맞춤형 식단을 찾는 것이다. 아워홈은 지난해 개인별 헬스케어 서비스 '캘리스랩(KALIS lab)'을 선보였다. 구내식당에 준비된 혈당측정기, 혈압계, 인바디 등으로 확인한 건강 상태를 토대로 전문 영양사가 1:1로 영양 컨설팅을 해주고, 맞춤형 건강식을 짜는 방식이다. 혈압·체중 관리, 근육 증진 등 목적에 맞게 전문 셰프가 만든 맞춤형 식사를 먹을 수 있다. 아워홈은 여의도 IFC몰에도 캘리스랩을 열며 서비스를 확대하고 있다. 해당 매장엔 월평균 2550명 이상이 방문하고 있으며 올 3분기 매출은 1분기 대비 40% 이상 증가했다.

식품업계 관계자는 "최근 고혈압, 당뇨병을 앓는 젊은 세대가 늘어나면서 이들의 식단 관리는 단순 다이어트 차원에 그치지 않는다"며 "식습관이 저속노화의 출발점인 만큼 첨가물을 줄이면서도 맛있는 식품을 위해 시제품을 평가해 보고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수민 기자 breathe_in@mt.co.kr 유예림 기자 yesrim@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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