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수협 결성 시도와 최동원의 선봉장 역할
1988년, 불합리한 연봉 체계와 구단 중심의 협상 문화에 반기를 든 최동원은 선수회를 결성해 연봉 상한 철폐, 선수 연금 도입 등을 요구했다. 그는 회비까지 모아 어려운 후배를 돕고자 했지만, 선수들의 처우 개선은 야구계의 금기였고, 그의 용기는 결국 ‘보복’의 표적이 됐다.

KBO 사장단의 조직적 탄압
선수회 결성 직후 KBO는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대의원 참가 선수와 회비 납부 선수는 계약하지 않고, 받아주는 구단과는 경기조차 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내세웠다. 노조를 연상케 하는 움직임에 위협을 느낀 구단들은 선수단 통제에 혈안이 되었고, 선수회는 백지화됐다.

롯데 구단과 KBO의 분노, 그리고 트레이드 압박
롯데 선수들이 전원 회비를 완납한 사실이 알려지며, 구단들 사이에 ‘롯데가 이 사태를 키웠다’는 불만이 폭발했다. 특히 최동원은 KBO 전체의 눈엣가시였다. 결국 롯데는 최동원이 부상 핑계로 등판을 거른 것까지 문제삼으며, 내부 압박 끝에 트레이드 결정을 내린다.

1988년 11월, 역사상 최악의 3:4 트레이드 단행
롯데는 최동원을 포함한 3명을, 삼성은 김시진을 포함한 4명을 맞바꾸는 초대형 트레이드를 단행했다. 양 팀 팬들은 분노했고, 언론은 ‘보복성 트레이드’라며 맹비난했다. 선수협을 만들었다는 이유 하나로 국가대표 투수가 구단에서 쫓겨난 것이나 다름없었다.

트레이드 이후 모두가 잃었다
트레이드 이후 최동원과 김시진 모두 성적 부진에 시달리다 은퇴했고, 함께 트레이드된 선수들 또한 큰 활약 없이 사라졌다. 이번 사건은 단순한 전력 교환이 아니라 야구선수의 권리 요구에 대한 대가였기에, 지금까지도 KBO 최악의 트레이드로 회자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