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사진을 보라. 지하철 노선도를 보면 비교적 최근 개통된 노선들은, 우리에게 익숙한 1~9호선과 달리 노선명이 숫자가 아니다. 9호선이 개통된 후 신분당선, 수인분당선, 서해선 등 중전철도, 우이신설, 신림선, 김포골드라인 등 경전철도 여럿 개통했는데 숫자를 쓰지 않고 전부 지역명을 사용하고 있다. 유튜브 댓글로 “지하철 10호선부터는 왜 없는지, 앞으로도 숫자 노선은 안 나오는 건지 알아봐 달라”는 의뢰가 들어와 취재해 봤다.

결론부터 말하면, 정부에서 주도하는 지하철 사업에서 10호선, 11호선과 같은 새로운 숫자 노선이 등장할 일은 당분간(최소 2029년까진) 없다고 보면 된다. 이는 90년대말 외환위기를 겪은 이후 새 지하철 노선 건설이 경전철+민자사업+숫자가 아닌 지역중심 노선명이라는 새로운 컨셉으로 주로 진행되기 때문.

90년대말 외환위기를 겪기 전까지만 해도 지하철 10호선뿐 아니라, 11, 12호선도 계획은 있었다. 수도권 지하철 계획은 1, 2, 3기로 나눌 수 있는데, 1기는 1~4호선 건설, 2기는 5~8호선 건설, 3기는 3호선 오금 연장안과 9~12호선 건설계획이었다. 기존 10호선은 광명역에서 구리시 토평을 잇는 노선이었고, 11호선은 우면동에서 신월동을, 12호선은 성북역에서 왕십리를 잇는 노선이었다.

지하철 1, 2기 계획까지는 순차적으로 잘 진행됐지만, 3기 지하철 계획에 따라 9호선 강남구간 설계를 벌이던 중 외환위기 사태로 3기 지하철 계획은 대부분 무산되었고 경제적 타당성이 높다고 판단한 3호선 연장안(수서~오금)과 9호선 건설만 추진되었다. 무산된 10, 11, 12호선 계획은 전면 백지화된다.
정대현 서울시 도시철도설계부장
“한국정부가 IMF에게 구제금융 조치를 요청하면서 1998년 5월 기획예산처는 3기 지하철 사업의 재검토를 권고하였습니다. 지하철건설본부 등 관계부처 검토 결과 3기 지하철 중 9호선을 제외한 10, 11, 12호선의 노선을 연기가 아닌 전면 백지화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이후 2001년 중장기계획을 새로 만드는데 여기서부터 지하철 호선 이름은 국가 주도였던 과거와 달리 민간사업자가 제안한 명칭으로 정하자고 합의가 됐다. 우이신설, 신림선 등 경전철뿐 아니라 수인분당선, 신분당선처럼 중전철의 경우에도 숫자가 들어간 노선보다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지역명이 들어간 노선명을 부여했다.
정대현 서울시 도시철도설계부장
“지역을 노선명으로 사용하는 이유는 숫자로 된 노선명만을 들었을 때는 그 노선의 경유지를 파악하기 어렵기 때문에, 지리적 명칭이나 행정구역, 특정 명칭을 노선명에 사용함으로써 지하철이 어느 지역을 지나가는지 짐작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섭니다.”

당시 무산됐던 10호선은 현재 신안산선과 면목선으로 계승되고, 11호선의 일부는 신분당선으로, 12호선은 동북선 사업에 축소 반영될 예정이라고 한다. 이렇게 축소, 편입되는 과정에서 10, 11, 12호선이라는 고유 노선명은 사라지게 됐다.

그래도 혹시나해서 앞으로 지하철 노선명에 10, 11호선처럼 숫자 노선이 생길 수도 있는지 물어보니 계획이 없다는 단호한 답변을 받았다.
정대현 서울시 도시철도설계부장
“2019년 서울시에서 발표한 도시철도망 구축계획에 따르면, 도시철도 노선명에 숫자는 사용하지 않고 기/종점의 지명이나 행정구역 명칭을 사용하는데 앞으로도 강북횡단선, 서부선, 목동선처럼 지역 명으로 쓰일 것 같고 현재 숫자 노선이 생길 계획은 없습니다.”

외환위기라는 아픈 과거로 추진되지 못했던 지하철 계획, 여전히 온라인에서는 특히 11호선의 경우 원래 강남에서 이태원, 서대문구를 잇는 중요노선으로 기대를 모았었는데 무산된 것에 지속적으로 아쉽다는 반응이 많은데 그래도 기존 광역전철 연계나 경전철 사업으로 그나마 지하철의 영역이 점점 더 넓어지고는 있으니 불행 중 다행이라 해야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