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흔에도 숙제 다 못했지만 꿈 위해 작업하죠"

‘황혼의 찬란한 여정:인생은 구름 같아요-환희’

“맨날 이번 개인전이 마지막이어야 하면서 아트페어 3회를 망라해 개인전 10회가 넘는 전시 비용을 아들이 모두 부담했거든요. 근데 이번 전시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이번 전시가 진짜 마지막이 될 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하고 있어요. 제 또래 전후 나이먹은 화가들이 그림을 못 그리는 사람들 많은데 저는 아직 그릴 수 있을 만큼 건강하기 때문에 개인전을 마련할 수 있었습니다. 문득 문득 찾아오는 외로움을 달래고 잊기 위해 꾸준하게 하루를 건너뛰지 않고 작업에 집중했죠. 어디 안 나가고 되도록 그림 앞에 앉아서 작업을 하면 잡념이 들지 않고 외로움도 극복할 수 있어 좋더군요.”

이는 올해 구순에 접어들었고 화업 67년을 맞이한 전남 구례 출생 교육자 출신 원로 서양화가 고정희씨가 지난 9월24일 개막, 오는 10월27일까지 광주예술의전당 갤러리에 개인전에 앞서 만나 밝힌 소감이다. 작가의 이번 전시는 지원 공모전으로 마련, ‘황혼의 찬란한 여정’이라는 타이틀로 근작 40여점을 출품해 선보이고 있다.

‘인생은 구름 같아요-환희’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이번 전시는 힘에 부칠 나이를 훨씬 넘어섰지만 젊은 작가들 못지 않게 하루 6시간씩 매일 작업하며 예술혼을 불태워온 작가의 예술에 대한 행간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사실 젊은 작가들 또한 매일 6시간씩 작업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작가는 90년 간 그림으로 살아온 일상이 다람쥐 쳇바퀴 돌 듯했다는 소회를 토로했다.

다행히 대개 나이 먹은 작가들이 손이 떨리거나 해서 그림을 그리지 못하지만 자신은 아직 손이 떨린다든가 하는 게 없어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데 감사해 한다. 그가 이처럼 청년 예술가들도 하기 힘든 6시간씩 작업을 하는데는 외로움과 쓸쓸함은 몰론이고, 잡념이 찾아오기 때문에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라고 귀띔했다.

이런 작업 패턴이 건강에 도움이 된다는 점 역시 잊지 않았다. 동물성이나 기름진 것을 먹지 않고 단백질 많은 것을 즐겨 먹는 등 음식을 가려 먹고 있는데 비교적 소식을 하는 게 건강의 비결이라고 소개했다. 아울러 코로나19로 죽을 고비를 넘겼다고 전제한 뒤 집에 갇혀 어딜 나갈 수 없어 하늘만 바라보며 산 적이 있다고도 했다. 작가는 아마 태반 주사를 여섯차례 맞지 않았으면 어떻게 됐을지도 모른다고 덧붙였다.

“그렇게 아팠는데 이렇게 살아나 가지고 그렸던 작품들로, ‘인생은 구름같아요-환희’ 같은 경우가 대표적이죠. 저는 그림으로 살아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1>미술사가 조인호씨가 늘 자신을 포함해 목포 최초 여성 서양화가인 고 김영자 화가와 광주살레시오여고 교사를 역임한 고 임막임 화가(광주여상작가협회 창립멤버)를 지역 3대 여성화가라고 하는 말하는 것도 들었지만, 그 말에 개의치않고 자신의 회화인생을 잘 마무리하는데만 신경을 쓸 계획임을 잊지 않았다.

모란이나 연꽃을 집중적으로 작업을 하다가 창 밖의 구름을 보고 구름 이야기들을 선보여오는데 주력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적색과 녹색, 흰색 등 칼라를 구사하면서 마치 회오리처럼 돌고 있는 인간 군상을 통해 쳇바퀴도는 듯한 일상을 표현했다. 코로나19 여파가 몰고 온 일상에 대한 변화 투영이기도 하다.

고 원로화가는 전시에 앞서 “어려운 생활 속에 한때는 작품 활동을 중단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자녀들이 성장해 경제적인 도움을 줘서 나 자신이 가슴 속에 갖고 사는 염원을 실현하기 위해 서울과 광주, 외국 등 전시회를 세월 가는 줄도 모르고, 작품에 전념하다 보니 세월이 구름같이 흘러 인생의 끝자락 노후를 맞게 됐다”며 “아직 숙제를 다 못했다. 관절염을 앓는 등 건강이 좋지 않지만 붓을 놓지 않지 않는 이유다. 지금도 100호 작업을 하는 등 숙제를 하고 있다는 일념으로 작업에 임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편 작가는 작업실에 총 300여점을 소장 중인데 적지 않은 나이인 관계로 시간이 얼마나 더 주어질 모르지만 추후 여건이 맞으면 국립현대미술관이나 광주시립미술관 등 공적 영역의 미술관에 작품을 기증할 계획도 내비쳤다.

고선주 기자 rainidea@gwangna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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