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휴직 쓴 기자 해외연수 자격 박탈… "법 위에 군림하는 한국일보 경영진"

박서연 기자 2024. 9. 25.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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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측, 2명 선발에 2명 지원했는데 A 기자만 육아휴직 문제 삼아 탈락
언론노조 성평등위 "우리 언론계 성평등 의식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사태"

[미디어오늘 박서연 기자]

▲전국언론노조 한국일보지부가 쓴 성명과 한국일보 구성원 107명이 쓴 성명이 25일 서울 중구 한국일보 내부에 붙어있다. 사진=한국일보지부

한국일보가 총 2명의 해외연수 지원자 중 A 기자의 육아휴직 사용을 거론하며 해외연수 지원 심사에서 탈락시키자 “남녀고용평등법 위에 군림하는 한국일보 경영진”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A 기자는 만 15년의 기자 생활 중 3명의 아이를 출산해 총 3년의 육아휴직을 사용했다.

미디어오늘 취재를 종합하면 지난달 29일 진행된 '2025 외부 기관 해외연수 추천 대상자 선발' 면접 절차에는 이성철 사장, 권동형 전무, 김영화 뉴스룸국장, 이태규 논설실장이 배석했다. 이성철 사장은 A 기자에게 '최근 육아휴직으로 인한 공백이 많았다. 연수보다 계속 업무를 하면서 커리어를 이어가는 것도 필요해 보인다. 지금 연차에서 연수를 다녀오면 갈 수 있는 자리가 없을지도 모른다'는 취지의 발언을 질문 중에 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후 지난 6일 김영화 국장은 A 기자를 직접 만나 탈락 사유를 전하면서 “가장 걸림돌이 된 게 출산, 육아휴직 때문에 적지 않은 공백이 있는 상황에서 연수라는 자발적인 업무 중단을 다시 받아들여 주는 게 맞느냐에 대한 고민이 가장 컸다”고 말했다.

남녀고용평등법 '육아휴직' 조항을 보면 사업주는 육아휴직을 이유로 해고나 그 밖의 불리한 처우를 해서는 안 된다.

전국언론노동조합 성평등위원회는 25일 <남녀고용평등법 위에 군림하는 한국일보 경영진… '육아휴직' 빌미 차별행위 즉각 중단하라> 성명서에서 “이는 단순히 개인의 경력 공백을 우려하는 차원이 아니라 모든 육아휴직자에 대한 차별적 시각을 갖고 있다는 것을 방증하는 행위”라며 “이번 일이 한국일보의 사내에서 벌어진 '사건'을 넘어 우리 언론계 성평등 의식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사태'로 봐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주장했다.

언론노조 성평등위는 “아울러 '다른 사람과 같은 조건이 아니다'라는 경영진의 발언은 조직 내 성평등을 해치는 주요 원인이 된다. 이는 오히려 경력 단절이 개인의 책임인 양 비치게 해 모든 직원이 안전하게 육아휴직을 이용할 수 있는 환경을 위협하는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 뒤 “한국일보는 저널리즘의 가치에서 공정성과 평등을 지켜나가야 할 의무가 있다. 그러나 경영진은 공정한 평가와 기회를 보장하는 것이 아닌 육아휴직을 이유로 차별적 결정을 내리는 구태를 보였다”고 비판했다.

언론노조 성평등위는 “육아휴직을 통한 경력 단절은 대부분 여성 언론인이 직면하는 현실이다. 이를 이유로 차별하는 시대착오적 행태는 더는 용납되어서는 안 된다”며 “한국일보 경영진의 진심 어린 사과와 함께 육아휴직 사용자에 대한 차별 행위를 즉각 철회할 것을 요구하며, 이런 사태가 재발하지 않도록 방지책을 마련할 것을 촉구한다”고 했다.

지난 23일 전국언론노동조합 한국일보지부(지부장 유환구)는 <육아휴직 사용자에 대한 위법한 추천 탈락 즉각 철회하라>는 제목의 성명을 내고 “경영진은 명백하게 위법하고 시대착오적인 판단을 했다. 조합이 의견을 구한 노무법인 역시 '남녀고용평등법을 위반한 행위에 해당한다고 보여진다'고 답했다”며 “해당 조합원은 육아휴직 외에 다른 사유로 인한 업무 공백이 없었다. 육아휴직을 쓰지 않았다면 업무 공백이 많았다는 지적을 받을 여지가 없었다. 육아휴직 사용에 대한 차별이라 볼 수밖에 없는 이유다. 육아휴직 기간을 빼더라도 10년 넘게 근속한 구성원에게 역량을 키우는 기간이 더 필요하다는 식의 논리 역시 공감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기자와 PD 등을 포함한 한국일보 구성원 107명도 지난 24일 <육아휴직자 차별을 규탄한다> 성명서에서 “이번 조치로 당장 남녀 불문 숱한 구성원 사이에선 '연수를 가고 싶으면 육아휴직 사용을 자제해야 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퍼지고 있다. 한국일보는 시대착오적인 차별 기업으로 역행하고 싶은가”라고 물은 뒤 “책임자들은 진솔하게 공개 사과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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