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건너왔지만… 지금은 한국인이 더 좋아하는 ‘국민 반찬’

한국 밥상을 사로잡은 갓김치, 여수에선 하루 1톤씩 생산
갓김치 자료사진. / mnimage-shutterstock.com

한국 김치의 세계화가 본격화되기 전부터 밥상을 사로잡은 재료가 있다. 바로 여수 돌산 갓이다. 김치 재료로서 갓은 비교적 낯선 채소였지만, 여수 지역에서는 오래전부터 빠지지 않는 주인공이었다.

줄기가 붉고 잎이 넓은 돌산 갓은 원래 일본에서 건너온 품종이다. 1950년대 해방 이후 국내에 도입돼, 여수의 기후와 토양에 맞춰 계량되며 지금의 모습으로 자리 잡았다. 현재는 여수 돌산 일대에서만 재배된다. 따뜻한 해풍과 알칼리성 토질, 고온 다습한 해양성 기후까지 갓이 자라기 좋은 환경이 모두 갖춰져 있다.

돌산 갓김치의 수요는 봄이면 더욱 늘어난다. 봄에 수확한 갓은 겨울을 지나며 얼고 녹는 과정을 거치며 조직이 부드러워지고 단맛이 생긴다. 절이면 숨이 잘 죽고 양념이 깊게 배어든다. 김치로 만들기에 제격이다. 식당, 가정집, 온라인 쇼핑몰까지 돌산 갓김치를 찾는 주문이 이어진다. 하루 수확량은 평균 1톤, 연간으로는 약 3만 톤에 달한다. 돌산 읍 전체가 움직이지 않으면 감당하기 어려운 양이다.

돌산 갓김치의 시작은 밭에서

갓 자료사진. / brand-d-shutterstock.com

지난 4월 방송된 EBS 다큐멘터리 <극한직업>에서는 여수 돌산 갓김치 공장의 하루가 공개됐다. 방송에선 갓 수확이 새벽부터 시작되는 장면이 소개됐다. 작업자 평균 연령은 60대 이상. 각자 손에 맞게 만든 칼을 들고 허리를 숙인 채 갓을 벤다. 줄기 하단을 정리해 김치 담을 때 보기 좋게 만든다. 자른 갓은 보자기에 싸서 바로 공장으로 옮긴다. 박스 포장은 생략된다. 당일 수확, 당일 절임, 당일 양념이 원칙이다.

절이는 과정도 간단하지 않다. 소금을 녹인 염수에 갓을 담근 뒤, 위에 누름판을 올려 숨을 죽인다. 염수만으로 부족할 땐 위에 소금을 따로 뿌려 간을 맞춘다. 10시간 이상 절여야 갓이 부드럽고 숨이 잘 죽는다. 다음날 새벽까지 갓김치 작업이 이어지기 때문에 절이는 시간도 정확히 계산해야 한다.

양념은 국내산 재료로 만든다. 건고추, 찹쌀풀, 마늘, 액젓이 기본이다. 고춧가루만 100kg 가까이 들어가기도 한다. 모든 재료는 손으로 다듬고 갈아 양념장을 만든다. 완성된 양념은 하루 동안 냉장 숙성한 뒤 사용해야 맛이 깔끔하다. 갓김치 전체 공정 중 기계가 쓰이는 건 양념을 한 번 더 갈아주는 과정뿐이다.

세척부터 포장까지, 오직 손으로 만드는 김치

갓김치 담그는 모습. / brand-d-shutterstock.com

절인 갓은 네 번에 걸쳐 씻는다. 줄기 사이 흙, 상한 잎, 이물질 등을 모두 제거해야 한다. 물속에서 갓을 원을 그리며 흔드는 방식이 효과적이다. 작업자들은 하루 종일 물속에서 팔을 움직이며 갓을 씻는다.

세척 후엔 버무리기 과정이 이어진다. 양념을 덜어 갓 줄기에 살살 묻히는 방식이다. 세게 비비면 섬유질이 끊기고 쓴맛이 날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 기계 대신 손으로 양념을 묻히는 이유다. 갓과 양념의 비율도 오로지 손맛에 따라 조절된다. 하루 1톤 가까운 양을 버무리는 동안에도 반복해 확인한다.

양념 향이 작업장 안에 가득 퍼지면 눈물과 콧물이 터져 나온다. 방송에서는 일부 작업자가 “화생방 훈련보다 더 맵다”고 말할 정도였다.

갓김치 담그는 모습. / brand-d-shutterstock.com

양념을 골고루 입힌 갓김치는 가지런히 정리돼 1kg씩 진공 포장된다. 밭에서 시작해 포장까지 마무리되기까지는 하루 10시간 이상 걸린다. 갓김치는 이렇게 매일 여수에서 만들어진다.

돌산 갓은 오래전부터 전라도 김치의 대표 주자로 꼽혀 왔다. 향과 맛이 강하고 섬유질이 적어 씹는 맛이 부드럽다. 회와 함께 먹는 ‘와사비 대용’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수육, 족발, 회, 비빔밥 등 어느 음식과도 잘 어울린다.

돌산 갓김치 만드는 작업자들의 식탁에도 갓김치는 빠지지 않는다. 매일 먹어도 질리지 않는다는 말이 나올 만큼 익숙한 맛이다. 계절 따라 맛이 바뀌는 다른 김치와 달리, 봄 갓김치는 단단하고 부드러워 특히 인기가 많다.

돌산 갓은 일본 품종에서 시작했지만 지금은 한국 밥상에서 빠지지 않는 재료다. 매운맛, 부드러운 식감, 톡 쏘는 향까지, 손끝에서 완성된 이 갓김치는 오늘도 하루 1톤씩 전국 밥상으로 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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