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보증금 늦게 주는 법' 컨설팅 등장…발 묶인 세입자 고통은?
"임대보증금 반환을 연기하는 방법을 말씀드리겠습니다."
보증금을 돌려줘야 하지만 역전세 대란에 자금여력이 떨어진 집주인들을 위한 컨설팅이 등장했다. 회생신청이나 신탁을 활용해 임대차 기간을 사실상 연장하는 방법이다. 역전세난에 처한 임대인에게는 유용한 수단이지만 바로 임대보증금을 받을 수 없게 된 세입자들의 고통이 수반될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16일 부동산업계에 따르면 박예준 법무법인 새로 대표변호사는 최근 서울 모처에서 '임대보증금 반환 연기 방법'을 설명하는 강의를 열었다. 수강생 대부분은 다주택 임대사업자들이다.
박 변호사는 먼저 임대인이 법원에 회생을 신청하면 된다고 설명했다. 회생은 채무자가 채무를 상환할 수 없는 경우 법원이 일시적으로 채무를 동결하고 채무를 재조정해 채무자가 계속 영업할수 있게 하는 제도다. 법원이 채무자를 파산시키는 대신 계속 영업을 하게 해 채권을 상환하게 하는 게 낫다고 판단할 때 절차가 시작된다.
박 변호사는 "법원은 회생절차를 마다할 이유가 없다"며 "주택 임대인이 일시적으로 임대보증금을 반환하지 못하는 것이라, 일시적으로 채무를 동결해 시간을 벌면서 집값이 회복되기를 기다리면 채권자들에게 아무런 손해를 끼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두번째 방법은 신탁이다. 임대인이 주택의 '소유권'을 수탁자에게 신탁하고, 임대인은 신탁된 주택의 '수익권'을 갖는 방식이다. 이 경우 주택의 법률적 소유권은 수탁자에게 있다. 해당 주택에 대한 가압류 등 강제집행이 불가능하다. 임대인은 주택의 수익권자로서 수탁자에게 주택의 처분이나 임대차를 지시할 수 있다.
강의에서 박 변호사는 "1~2년 정도 임대차 기간을 연장하며 시장 변화에 대응할 수 있다"며 "보증금의 반환을 적절히 연기하면서 시장 회복을 기다리면 손해가 없다"고 강조했다. 세입자 입장에 대해서는 "금전적 손해는 없고, 불안한 마음으로 기존 집에 1~2년 더 살았다는 억울함정도만 있을 뿐"이라고 했다.
박 변호사는 머니투데이에 "어차피 돈을 못받는 상황인데 임대인들의 잘못이 아니고 상황이 이렇게 된것"이라며 "지극히 합법적인 수단을 사용하는것"이라고 했다.
역전세 대란, 세금 증가, 대출규제 등 요인으로 부동산 시장 상황이 어려워졌다. 이 상황에서 임대인과 임차인이 임차권등기명령, 반환소송, 경매 등 기존 방법으로 분쟁을 이어갈 경우, 양측 모두 시간이든 금전이든 얻는것보다 잃는게 크다는 것.
오히려 임차인 입장에서도 안정적인 방법일 수 있다고 주장한다. 보증금을 지급할 능력이 없는 임대인에게 소송을 거는 대신, 전세기간을 늘리고 '역월세'를 받거나 파산을 시키는 게 낫다는 설명이다.
박 변호사는 "소송전에 들어가 경매까지 보내면 1000만~1500만원 비용이 들어가는데, 대신 임대인을 파산시키면 몇년간 돈이 묶일뿐 정리할 수 있다"며 "법원이 파산관재인을 보내 해결해준다"고 말했다.
자금난에 처한 임대인에겐 합법적 수단이지만 이로 인해 발이 묶이게 된 임차인들의 고통은 커질 수 있다. 엄정숙 법도 종합법률사무소 변호사는 "부동산 호황 일때는 임차인들 내보내려고 없는 실거주까지 만드는 상황이 벌어지는 반면 역전세 상황이 되니 즉각적인 청구를 못하게 하는 제도를 이용하는 측면도 나온다"며 "임차인도 절차를 취해 재산권을 찾는 방안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종합부동산세 등 세부담이 커지고 대출문턱은 높아진 가운데 전셋값까지 추락하면서 임대인들은 '삼중고'를 겪고 있다. KB부동산 통계에 따르면 지난달 서울 아파트 평균 전세가격은 5억9297만원으로 1년 전 6억7257만원에 비해 7960만원 내렸다. 입주 물량이 몰린 지역에선 최고가 대비 '반값'까지 내린 전세 매물도 나왔다.
반환 소송 사례도 급격히 늘고 있다. 대법원 등기정보광장 부동산 등기 신청현황에 따르면 지난달 한 달간 집합건물(아파트·빌라 등)에 대한 임차권등기명령이 신청된 부동산 수는 전국 2682건으로 지난해 2월(616건) 대비 4배 이상 늘었다. 수도권(서울·경기·인천)에서만 2217건 신청됐다. 임차권등기명령 제도는 임대인으로부터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 세입자를 구제하기 위한 장치다.
부동산업계 관계자는 "집주인들이 법을 이용해 임대보증금 반환을 미루면 세입자가 고스란히 피해를 떠안는 구조"라며 "임대사업자들에게는 선택지가 없어 이같은 현상까지 일어나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평화 기자 peace@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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