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작가 한강의 2024년 노벨문학상 수상 의미
소설가 한강이 한국인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문학인이 되었다. 스웨덴한림원은 10일(현지시간) 한국 작가 한강을 2024년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발표했다.
선정 사유의 핵심은 다음과 같다. “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서고 인간 삶의 연약함을 드러내는 강렬한 시적 산문을 성취한 한국 작가 한강에게 수여한다. 작가 한강은 자신의 작품에서 역사적 트라우마와 보이지 않는 규칙에 직면하면서, 각 작품에서 인간 삶의 연약함을 드러낸다. 작가 한강은 육체와 영혼, 살아있는 자와 죽은 자 사이의 연결에 대한 독특한 인식을 가지고 있으며 시적이고 실험적인 문체로 현대 산문의 혁신가가 되었다.”
▮노벨문학상과 한국
‘노벨문학상 수상’은 한국 예술계뿐만 아니라 한국인 모두의 오래된 염원이다. 아주 큰 염원이다. 몇 가지 근거를 들 수 있다.
먼저 한국 문화·예술의 성장과 위상 상승이다. 한국이 선진국 권역에 진입하면서 한국 예술·문화는 급격히 성장하고 깊어졌다. K 컬처라는 표현이 그 상징이다. 일정한 단계에 예술·문화 수준이 올라서자 K 컬처는 한국 사회·경제 발전을 오히려 이끄는 구도까지 만들어냈다. 외국으로 뻗어나간 K 컬처는 특유의 ‘특수성+보편성’ 조합 모델을 형성하며 큰 인기와 영향력을 발휘했다.
한국은 미국 같은 초대형 선도 국가도 아니고, 유럽처럼 ‘전통+선도(아방가르드)’를 겸비한 공유형 대륙도 아니다. 이런 나라의 예술이 수많은 나라에 제대로 ‘먹히기’ 위해서는 ‘특수성+보편성’ 조합이 필요하다. 특수성만 있으면 특이한 존재로 반짝 관심을 끄는 데 그치기 쉽다. 보편성을 갖추되 특이함·새로움·실험성 등을 뜻하는 특수성이 없으면 관심 자체를 끌지 못한다.
영화(예컨대 ‘기생충’) K팝(예컨대 BTS·블랙핑크) 클래식(예컨대 조성진 임윤찬) 미술 등 여러 영역에서 정점을 찍는 사례가 나왔다. 그런데 문학에서는 그 정점이 노벨문학상으로 널리 인식된다. 해마다 문학 담당 언론인이 10월만 되면 ‘올해 노벨문학상, 한국인이 받을까’를 놓고 기대하고 기사를 준비했다가 실망하기를 반복해 온 이유다.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은 고대하던, 그 중요한 조각을 선사했다.
문(文)과 문화의 가치에 관해 한국인이 가진 오래된 긍지도 들 수 있다. 문화의 가치에 관한 긍지는 김구 선생이 강조한 ‘오직 문화의 힘’을 분석해 보면 잘 알 수 있다. 문(文)의 전통과 두터운 바탕 또한 달리 강조할 필요는 적은 요소다. 조선 왕조 500년은 엄청난 문(文)의 세계였다. 이 탓에 지독한, 지나친 문약에 빠졌던 것도 사실이나 독하게 문(文)에 몰입한 결과 사물의 핵심까지 가 닿는 깊이에 관한 존중과 사상·사유 등을 보편성 갖춘 원리로 완성해 내려는 기질을 품어 현대까지 전달했다.
그런 상황에서 세계 최고 권위 문학상으로 꼽히는 노벨문학상에 관한 갈증은 갈수록 강해졌다. 한강이 그 목마름을 적셨다.
작게는 무(武)와 실용의 전통을 오래 가꾼 이웃 나라 일본에서 작가 가와바타 야스나리와 오에 겐자부로, 2명이 노벨문학상을 탔는데 문과 사상의 바탕이 강한 한국에서는 한 명도 없었던 현실도 노벨문학상 염원에는 어느 정도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채식주의자’ ‘소년이 온다’처럼 어딘지 연약한 존재를 표상하는 제목의 소설을 쓴 ‘50대 여성 작가’ 한강이 이런 아쉬움을 녹인 셈이다. 스웨덴한림원이 밝힌 “시적이고 실험적인 문체로 현대 산문의 혁신가가 되었다”는 표현은 이런 점에서도 주목할 만하다.
▮작가 한강은
작가 한강은 2016년 ‘채식주의자’로 세계 문학계에서 매우 권위가 높은 맨부커상에서 영연방 이외 작가에게 주는 인터내셔널 부문을 한국인 처음으로 받으며 세계 문학계에서 명성을 높였다.
소설가 한강은 1970년 11월 전남 광주(현재 광주광역시)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한국 문학계의 큰 작가 한승원이다. 10살 되던 해 가족이 서울로 올라오며서 서울의 풍문여고를 졸업하고 연세대 국문학과를 나왔다. 한강 작가 공식 홈페이지를 보면, 1993년 계간 ‘문학과 사회’ 겨울호에 시 ‘서울의 겨울’을 비롯해 5편을 발표하며 시인이 됐다. 이듬해인 1994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단편소설 부문에 ‘붉은 닻’이 당선되며 소설가가 되었다.
23세에 시인이 되고, 24세에 소설가가 됐으니 이른 나이에 등단했다. 재능과 노력과 사유가 일찍부터 남달랐음에 틀림없다.
첫 소설집은 ‘여수의 사랑’(1995·문학과지성사)이다. 소설가로 등단한 이듬해 곧장 작품집을 낸 점으로 보아 치열한 수련 기간을 보냈고 문학에 대한 사랑은 일찍부터 깊었다. 첫 소설집을 낸 뒤 직장을 그만뒀다고 위키백과에는 나온다. 이 정보에 따르면, 20대에 전업 작가 길에 들어섰다. 장편소설 ‘검은 사슴’(1998·문학동네) 소설집 ‘내 여자의 열매’(2000·창비)를 냈다. 첫째 둘째 셋째 소설책을 문지·문학동네·창비라는 권위 있는 대형 출판사에서 냈으니 크게 촉망받는 작가였다.
장편소설 ‘그대의 차가운 손’(2002·문학과지성사) 동화 ‘내 이름은 태양꽃’(2002·문학동네) ‘붉은 꽃 이야기-詩說, 시적인 이야기’(2003·열림원) 산문집 ‘사랑과, 사랑을 둘러싼 것들’(2003·열림원) 산문집 ‘가만가만 부르는 노래’(2007·비채) 동화 ‘천둥 꼬마 선녀 번개 꼬마 선녀’(2007·문학동네어린이) 장편소설 ‘채식주의자’(2007·창비) 동화 ‘눈물상자’(2008·문학동네) 장편소설 ‘바람이 분다, 가라’(2010·문학동네) 장편소설 ‘희랍어 시간’(2011·문학동네) 소설집 ‘노랑무늬영원’(2012·문학과지성사)
시집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2013·문학과지성사) 장편소설 ‘소년이 온다’(2014·창비) 장편소설 ‘흰’(난다) 장편소설 ‘작별하지 않는다’(2021·문학동네) 등. 위키백과를 참고한, 한강 작가의 책 목록이다.
왠만큼 치열하지 않고는 이토록 꾸준히 자기 언어로 작품을 창작할 수 없다. 문학상도 많이 탔다. 한국소설문학상(1991) 문화관광부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2000) 이상문학상 대상(2005) 황순원문학상(2005) 맨부커 국제상(2016) 말라파르테문학상(2017) 김유정문학상(2018) 산클레멘테문학상(2019) 대산문학상(2022) 메디치외국문학상(2023) 그리고 노벨문학상(2024)이다.
한강 작가 작품세계에 관한 평은 죽음과 폭력 등 보편적인 인간 문제를 시적이고 서정적인 문체로 풀어내는 독창적이 작품세계를 구축했다는 데로 집중된다. 광주민주화운동을 담은 장편소설 ‘소년이 온다’, 제주 4·3 비극을 다룬 장편소설 ‘작별하지 않는다’ 등은 한국 현대사의 어둠과 상처를 소설로 그렸다. 공식 홈페이지에는 1998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지원을 받아 미국 아이오와대학교 국제글쓰기프로그램에 3개월간 참여한 이력도 나온다.
▮노벨문학상 수상 둘러싼 소식
작가 한강은 10일 수상 소감으로 “매우 놀랍고 영광스럽다”고 말한 것으로 연합뉴스에 보도됐다. 한강은 이날 수상자 발표 후 노벨위원회와 가진 전화 인터뷰에서 어릴 때부터 자신에게 영향을 미친 여러 작가의 “모든 노력과 힘이 나에게 영감이 줬다”고 했다. 또 영국 일간지 가디언 등에는 한강 작가와 통화한 노벨문학상 측 인사가 그는 “평범한 하루를 보내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아들과 막 저녁 식사를 마친 참이었다”는 소식이 실렸다.
외신과 연합뉴스 등을 참고하면 다음과 같은 소식도 있다. 한강의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를 프랑스어로 펴낸 프랑스 출판사 그라세(Grasset)의 조하킴 슈네프 편집자는 “한강의 수상 소식은 우리 모두에게 엄청난 놀라움과 기쁨이었다. 믿을 수가 없었다. 언젠가 그가 노벨문학상을 받을 거라고 확신은 했지만 오늘이 그날이 될 거라곤 생각지도 못했다”며 기뻐했다.
외국 매체는 역시 K 컬쳐와 관련 언급도 한 것으로 전해진다. AP는 “점점 커지는 한국 문화의 세계적 영향력을 반영한다”며 “앞서 봉준호 감독이 영화 ‘기생충’으로 오스카상을 받았고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도 성공했으며 그룹 방탄소년단(BTS)과 블랙핑크 등 K팝 그룹도 세계적 명성을 얻고 있다”고 짚었다.
▮역대 노벨문학상 수상자
지금까지 노벨문학상을 받은 이들의 이름만 살펴도 소설가 한강의 성취는 뚜렷하다.
최근순으로 꼽아보면 다음과 같다. 욘 포세(노르웨이), 아니 에르노(프랑스), 압둘라자크 구르나(탄자니아), 루이즈 글릭(미국), 페터 한트케(오스트리아), 올가 토카르쿠츠(폴란드), 가즈오 이시구로 (영국), 밥 딜런(미국),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벨라루스),
파트리크 모디아노(프랑스), 앨리스 먼로(캐나다) , 모옌(중국), 토머스 트란스트뢰메르(스웨덴),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페루), 헤르타 뮐러(독일), 르 클레지오(프랑스), 도리스 레싱(영국), 오르한 파무크(터키), 해럴드 핀터(영국), 엘프레데 옐리네크(오스트리아),
J M 쿳시(남아프리카공화국), 임레 케르테스(헝가리), V. S. 네이폴(영국), 가오싱젠(중국), 귄터 그라스(독일), 주제 사라마구(포르투갈), 다리오 포(이탈리아), 비슬라바 쉼보르스카(폴란드), 셰이머스 히니(아일랜드), 오에 겐자부로(일본),
토니 모리슨(미국), 데렉 월코트(세인트루시아), 나딘 고디머(남아프리카공화국), 옥타비오 파스(멕시코), 카밀로 호세 세라(스페인), 나기브 마푸즈(이집트), 요세프 브로드스키(미국), 월레 소잉카(나이지리아)
클로드 시몽(프랑스), 야로슬라프 세이페르트(체코슬로바키아), 윌리엄 골딩(영국),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콜롬비아), 엘리아스 카네티(영국), 체슬라브 밀로즈(폴란드/미국)
역대 노벨문학상 수상자와 어깨를 나란히 한 작가 한강의 한마디가 그의 공식 홈페이지에 나와 있다.
“천천히, 계속 더 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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