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밭’에서 압승한 한동훈‧이재명…용산은 가시방석?
조국 이긴 이재명, 부산 지킨 한동훈 ‘리더십 타격’ 피해
한동훈 “당정쇄신 기회”…尹과의 독대 앞 전운 고조
(시사저널=박성의 기자)
반전도, 이변도 없었다. 10·16 재·보궐선거에서 여야 간 격전지로 떠오른 부산 금정구청장 보궐선거에서 국민의힘이 더불어민주당을 누르고 압승했다. 부산에서 고배를 마신 민주당이지만, 전남 영광군수 재선거에서는 조국혁신당과 진보당의 거센 도전을 따돌리며 제1야당으로서 체면을 지켰다. 각자의 텃밭을 사수하면서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도,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도 리더십 타격은 피하게 됐다.
총선 후 2연패를 걱정했던 윤석열 정부도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분위기다. 그러나 여권 일각에선 미묘한 긴장감도 감지된다. 윤 대통령과의 독대를 앞둔 한동훈 대표가 이번 선거의 의미를 "국민의힘과 정부가 변화하고 쇄신할 기회"로 해석하면서다. 한 대표가 용산을 향해 더 강한 개혁을 요구할 시 '윤-한 갈등'과 당내 계파 갈등이 격화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패장'은 없었다…안방 지킨 한동훈‧이재명
16일 치러진 재‧보궐선거는 군수·구청장 4명을 뽑는 '미니 선거'였다. 그럼에도 여야는 총선에 버금갈 만큼 사력을 다했다. 이번 재‧보궐선거가 총선 이후 민심을 가늠해 볼 첫 시험대로 인식되면서다. 여기에 양당의 '텃밭'을 위협하는 변수가 등장하며 선거의 열기가 더해졌다. 민주당의 안방인 전남 영광과 곡성에는 혁신당이 '대안 정당'을 외치며 대항마로 나섰다. 국민의힘이 강세인 부산 금정은 야권 후보가 단일화에 성공하면서 여론조사가 박빙을 이뤘다.
양당 모두 악재까지 떠안았다. 국민의힘은 선거운동 기간 증폭된 '김건희 여사 관련 의혹'에 애를 먹었다. '김건희 여사 공천 개입 의혹'의 핵심 당사자인 명태균씨를 둘러싼 논란이 가열되자, 논란이 부산 민심에 영향을 줄까 노심초사하는 분위기가 읽혔다. 민주당은 선거 막판 김영배 의원의 설화가 논란을 불렀다. 김 의원은 이번 선거가 전임 부산 금정구청장이 뇌출혈로 숨지면서 치러졌음에도 "국민의힘이 원인을 제공한 혈세 낭비"라고 언급했다가 여권으로부터 "패륜적 언행"이라는 비난을 받았다.
이에 국정감사라는 '대형 이벤트'에도 각 당 대표를 포함한 당 지도부가 자당 후보를 돕기 위해 선거운동 현장에 직접 뛰어들며 총력전을 펼쳤다. 이재명 대표가 낮은 국정 지지율을 지적하며 "2차 정권심판" "선거 치료" 등의 구호로 후보를 지원하자, 한동훈 대표는 "이번 재‧보선은 지역민들 삶을 누가 개선시킬 것이냐 정하는 것"이라며 '정부심판론'에 '민생'으로 맞불을 놨다. 특히 한 대표는 김 여사 논란을 의식한 듯 대통령실 내 '한남동 라인'(김 여사 측근이라 의심받는 비선 인사들) 정리를 공개적으로 요구하기도 했다.
개표 결과 재‧보궐선거의 완벽한 승자도, 패자도 없었다. 양당 모두 안방을 사수하는데 성공했고, 상대의 텃밭을 탈환하는 데엔 실패했다. 민주당은 관심을 모았던 '호남 대전'에서 혁신당에게 압승을 거뒀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전남 곡성군은 조상래 민주당 후보가 55.26%의 득표율로 당선됐다. 도전자로 나선 박웅두 조국혁신당 후보는 35.85%의 득표율로 고배를 마셨다. 전남 영광군에서는 장세일 민주당 후보가 41.08%의 득표율로 당선됐다. 2위는 이석하 진보당 후보(30.72%)로, 반전을 노렸던 장현 조국혁신당 후보(26.56%)는 3위에 그쳤다.
국민의힘도 강세 지역이었던 인천 강화군과 부산 금정구를 모두 지켜냈다. 인천 강화군에서는 박용철 국민의힘 후보가 50.97%의 득표율로 한연희 민주당 후보(42.12%)를 따돌리며 당선증을 손에 쥐었다. 최대 격전지로 부상했던 부산 금정구도 개표 결과 예상 외로 '시시한 승부'가 펼쳐졌다. 윤일현 국민의힘 후보(61.03%)가 김경지 민주당 후보(38.96%)를 더블스코어에 가까운 격차로 따돌리며 압승을 거뒀다.
'집토끼' 유권자들의 강한 지지, '산토끼' 유권자들의 여전한 반감을 확인한 양당 대표 모두 '민심을 받들겠다'는 입장을 내놨다. 한동훈 대표는 개표가 마무리 수순에 접어든 이날 오후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 뜻대로 정부·여당의 변화와 쇄신을 이끌겠다"며 "어려운 상황에서 주신 소중한 기회를 놓치지 않겠다"고 밝혔다. 이재명 대표는 선거 결과가 나온 뒤 페이스북에 "민심을 받들어 정권의 퇴행을 막고 국민의 삶을 지키는 데 더욱 앞장서겠다"고 적었다.
'쇄신' 강조한 한동훈…독대 테이블에 '김 여사' 올릴까
여당이 전통적인 보수 강세 지역인 금정(구청장)·강화(군수) 선거에서 승리하면서 정부도 한숨 돌리는 분위기다. 최근 윤 대통령과 여당 지지율이 동시에 침체된 가운데, 만약 보수 텃밭 민심이 돌아섰다면 '조기 레임덕'(대통령 권력의 조기 누수) 우려가 증폭될 수밖에 없었다. 부산에서 승리하더라도 '살얼음판 승부'가 펼쳐졌다면 정부 위기론이 확산할 것으로 예측됐지만, 우려했던 '최악의 시나리오'는 면했다.
그러나 여권 내에선 미묘한 긴장감이 읽힌다. 일각에선 한동훈 대표와 이재명 대표가 무승부를 거둔 이번 재‧보궐선거가 윤 대통령에겐 그리 달갑지 않은 상황이란 해석이 나온다. 우선 용산으로선 거야를 이끄는 이재명 대표의 존재감이 더 커졌다는 게 걸림돌이다. 호남에서 혁신당 후보가 승리하거나 민주당 후보와 박빙의 대결을 펼쳤다면, '이재명 리더십'에 타격이 불가피했다. 그러나 호남 민심이 조국 대신 이재명을 택하면서, 이 대표는 명실상부한 야권의 제1 대선 주자 입지를 재확인했다.
한 대표가 부산에서 승전보를 울린 것 역시 윤 대통령에겐 '딜레마'가 될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만약 이번 재‧보궐선거에서 여당이 금정·강화 중 1곳이라도 패했다면 '한동훈 위기론'이 확산할 수밖에 없었고, 그를 견제해온 친윤(親윤석열)계가 득세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바 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한 대표는 당권을 잡은 후 친 첫 시험에서 준수한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친윤계가 아닌 친한(親한동훈)계 목소리에 더 힘이 실리게 된 셈이다.
한 대표가 선거 후 일성으로 '변화와 쇄신'의 대상을 당뿐만이 아닌 정부라 못 박은 점도 용산으로선 불편한 대목이다. 이번 재‧보궐선거 기간 한 대표는 이른바 '김 여사 리스크'와 관련해 '한남동 라인'의 대대적인 인적 청산과 '국민 눈높이'에 맞는 정부 기조 변화를 요구했다. 일각에는 이것이 '산토끼'를 잡기 위한 일시적인 선거 구호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그러나 김 여사와 한 대표, 윤 대통령과 한 대표의 사이가 이미 '루비콘강'을 건넜다는 게 여권 핵심 관계자 다수의 전언이다.
익명을 요구한 여당 지도부의 한 관계자는 "정부와 여당은 '오월동주'(적대 관계에 있으나 뭉쳐야 하는 관계)가 아닌 '일심동체'"라면서도 "대통령과 당 대표가 더 자주 소통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만약 그 둘 사이를 가로막는 누군가, '한동훈은 적'이라 말하는 누군가가 있다면 민심을 전혀 읽지 못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내주 초 윤 대통령과 독대를 앞둔 가운데, 한 대표는 김 여사 문제에 대한 해결 방안을 집중적으로 언급할 예정이다. 다만 윤 대통령이 한 대표의 요구를 전격 수용할 지는 미지수다. 만약 '윤-한 독대'가 빈손에 그칠 경우 당정갈등뿐 아니라 당내 계파 갈등도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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