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는 한국보다 못 살았지만 현재 부자된 나라 TOP5

국가의 부는 시대에 따라 많은 변화를 겪는다. 잘 살았던 나라가 빈국으로 전락한 사례도 있고 빈국이었지만 경제 발전의 장애 요소를 극복해 부국으로 우뚝 선 나라들이 있다.
그런데 한때는 가난했지만, 20세기 이후 부유해진 5개국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다음 5개국을 살펴보자.

5위, 사우디아라비아

1930년대 초까지 자급자족하는 나라로 세계 최빈국 중 하나였다. 농업 외에 수익은 간혹 찾아오는 순례자들에게 얻는 헌금뿐이었다. 하지만 이마저 수익이 일정하지 않아 사우디 국왕 이븐 사우드는 고민이 깊었다. 그런데 영국군 정보장교 출신이었던 잭 필비가 번뜩이는 제안을 한다. 바로 석유개발이었다.

그는 석유가 중요한 에너지원이 되고 있다는 점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자국 기술로는 개발과 시추가 어려웠다. 그래서 사우디 국왕은 미국 쉐브론에게 (현 아람코) 석유개발권을 줬다. 그리고 1938년에는 대규모 유전까지 발견되면서 본격적인 황금시대가 열렸고 사우디는 눈부신 속도로 발전했다. 1951년에는 중동 최초로 해상 유전도 발견됐다. 이렇게 사우디는 육상과 해상 모두 석유의 생산이 이뤄지며 생산량 하루 100만 배럴에 달하게 됐다. 1980년~1990년대 중반까지 유가 하락으로 경제가 주춤했지만 다시 반등해 과거와 비교할 수 없는 생활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현재 실권자인 빌 살만 왕세자는 오일머니로 축적한 부를 바탕으로 경제 다각화에 힘쓰고 있다.

4위, 브루나이

동남아시아에 위치한 브루나이는 엄청난 복지 국가로 유명하다. 매년 1월 1일이면 브루나이 국왕은 국민들 초대해 세뱃돈 90만 원을 준다. 그리고 한 가구당 차량 4대를 공짜로 지원해 주며 초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는 물론 해외 유학비도 무상으로 제공한다. 산업구조의 97%를 석유와 천연가스에 절대적으로 의지하고 있는 브루나이는 사실 20세기 초까지만 해도 고무를 수출하며 먹고 사는 가난한 나라였다. 그런데 1926년 세리아 강 근처를 지나가던 두 사람이 우연히 맡은 기름 냄새에 탐사를 시작했고, 1929년 최초로 석유 시추에 성공했다. 석유는 브루나이 경제에 엄청난 파급을 불러왔고 이는 전후 1950년대와 1960년대에 걸쳐 브루나이 국가 전체를 탈바꿈시켰다. 1960년대에는 액화천연가스가 매장된 것이 확인되었는데 1970년대 오일쇼크로 유가가 상승하자 상당한 외화를 벌어들이며 GDP는 급격하게 올라갔다. 1984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이후에도 석유 덕분에 독자적인 경제를 꾸려나갈 수 있었다. 현재는 동남아시아 최고 부자나라 중 하나로 주거, 교육, 의료 복지혜택은 북유럽을 능가한다.

3위, 카타르

1916년 영국의 식민지였고, 토지 대부분이 사막인 데다 기후가 덥고, 건조해 농업으로 먹고살기 어려웠다. 하지만 바다를 끼고 있어 어업과 진주 채취로 겨우 먹고살 수 있었다.

그러나 1940년 두칸 유전에서 석유가 발견되었고, 1949년 본격적으로 석유 생산이 이뤄지며 오일머니가 급증했다. 석유와 더불어 액화천연가스의 수출도 활발한 상태이며 비자원 분야까지 경제 다각화를 꾀하고 있다. (*2021년 기준 카타르 1인당 GDP USD 61,791 세계 12위)

2위, 노르웨이

1967년, 북해에서 석유를 발견하기 전까지 북유럽에서 가장 살기 힘든 국가였다. 카타르와 마찬가지로 경작지가 전체 토지 중 3%에 불과해 나라 경제가 어업 중심으로 돌아갔다.

그런데 1970년대에 영국과 함께 북해 유전을 찾게 되면서 반전이 일어난 것이다. 1971년부터 매장량이 상당량의 석유를 생산한 노르웨이는 오일쇼크로 유가마저 상승함에 따라 상당한 외화를 벌어들였다.

수산업이나 해운산업 등이 발전했지만 현재 석유와 천연가스는 수출의 50%, 국내총생산(GDP)의 20%를 차지할 정도로 경제의 핵심이다. 이처럼 노르웨이는 석유 덕분에 세계 최고의 복지 국가가 되었다. (*2021년 기준 노르웨이 1인당 GDP USD 82,244 세계 6위)

1위, 미국

현재 세계 1위 국민 소득의 국가이지만 콜럼버스가 발견하고, 남북전쟁 당시까지만 하더라도 남부는 농업 위주의 국가였다. 그러나 1855년 석유의 발견으로 산업주의 시대의 꽃을 활짝 피웠다.

미국 역사상 최고 부자로 꼽히는 석유왕 록펠러는 1863년 그의 친구와 정유사업을 시작했고, 텍사스주, 오하이오주를 비롯한 미국 전역의 유전과 정유소 40개 사를 연합했다. 해외에도 설립해 천문학적인 돈을 벌어들였다.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전기자동차는 사실 1888년 처음 만들어졌다. 자주 충전해야 했고, 겨울에 방전되는 치명적인 결함이 있었다. 자동차왕 헨리 포드가 1903년 석유 엔진의 자동차를 양산하기 시작했고 석유 사용 역시 자동차와 함께 급증했다.


이렇게 한때는 가난했지만 지금은 부유한 5개 국가의 공통점은 바로 ‘석유’다.
왜 부의 중심에는 항상 ‘석유’가 있을까?

석유는 필수품이다. 화장품, 의약품, 휴대전화, 자동차, 기차, 옷 등 우리가 정의하는 필수품 대부분 석유가 사용된다. 가격이 상승해도 살 수밖에 없다. (특히 한국은 세계 원유의 5위 소비국이다.) 게다가 석유의 가격은 ‘수요와 공급의 법칙’에 신속하게 반응하지 않는다. 수요와 공급에 무감각하기 때문에 유가의 변동성이 굉장히 크다. 텍사스철도위원회가 유가를 관리했던 1934년~1972년의 유가의 변동률은 3.6%에 불과했다. 바로 이때 미국은 세계 최초이자 가장 강력한 석유 수출국 기구였다. 

텍사스철도위원회(TRC)는 지역마다 석유 쿼터제 범위와 규정을 엄격하게 관리했다. 이를 부러워했던 베네수엘라의 후안 파블로는 TRC를 모방해 석유수출국기구 (OPEC)을 창립했고 패권은 미국에서 중동으로 넘어왔다.

이라크, 이란, 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 베네수엘라 이렇게 5대 석유생산수출국 대표가 한자리에 모여 OPEC이 결성되었다. 여러 국가가 모여 결성된 OPEC은 각 나라의 셈법이 달랐기에 제대로 통제되지 않았고, 유가는 다시 요동쳤다. 텍사스철도위원회는 미국이라는 한 나라 안에서 통제했기 때문에 OPEC과는 큰 차이가 있었다.
1973년 1차 오일쇼크 직후 가장 음산한 최후의 날 시나리오가 나돌았다. 그것은 바로 ‘30년 뒤면 원유가 고갈된다’는 예측이었다. 이런 예측이 나돈 뒤 약 50년이 흘렀다. 하지만 원유의 샘이 마른다는 이야기는 종적을 감췄다. 2022년이 저물고 있는 요즘에도 비슷한 예측이 나돌고 있다.  ESG, 대체 에너지, 탄소 중립 선언 등으로 곧 석유 종말의 시대가 올 것 같지만, 화석에너지는 전 세계 에너지의 83%를 차지한다. 4차 산업과 코로나19로 인하여 석유산업에 투자가 줄고 있다. 공급량은 줄고 있는데, 사용량을 갑자기 줄일 수 없다면 유가는 어떻게 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