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 상가 한가운데 기둥 떡하니···공조 시설도 없다니 "분양 대금 돌려달라" 법정 공방
대구 도심 주상복합아파트 상가를 분양받은 당사자들이 미리 알려주지 않은 여러 하자가 있고 계약 내용도 지키지 않았다며 시행사를 상대로 분양 대금을 돌려달라는 소송을 내 법정 공방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시행사 측은 계약 내용에 아무런 문제가 없고 하자라고 주장하는 것도 미리 고지한 것이라며 반박하고 있는데요.
서울과 인천 등 다른 지역에서도 유사한 분쟁이 있었던 터라 어떤 결과가 나올지 주목됩니다.
상가 한가운데 기둥이···"식당에 필수적인 공조 시설도 없어"
지난 10월 16일, 대구 중구에 있는 주상복합아파트 상가를 찾았습니다.
박은숙 씨는 이 주상복합아파트의 상가를 약 5억 원에 분양받았습니다.
남편의 퇴직이 다가오면서 노후 대비를 위해 직접 장사를 하거나, 세를 놓을 생각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마무리 공사가 진행되던 즈음 우연히 방문했다가 한가운데 자리 잡은 커다란 사각기둥을 발견했습니다.
박은숙 상가 수분양자, "뒤로 자빠질 뻔했어요. (군 입대한) 아들이 휴가 나와서 잠깐 뭐 그때부터 봉사를 하고 있었어요. 4월 30일 입주인데 26일인가 왔는데 그냥 공사하고 있는데 잠시 가보자 해서 들어왔는데 정말 깜짝 놀랐어요. 제가 어떻게 해야 할지 가슴이 막막하더라고요. 우리 아들이 공사하시는 분한테 이 기둥이 뭐냐 하면서 물었거든요. 그 사람도 놀라더라고 이 기둥이 왜 여기 이렇게 있냐면서···"
직접 가게를 운영하기도, 세를 놓기도 어렵게 됐다며 하소연합니다.
박은숙 상가 수분양자, "김밥 체인점인가 거기에 제가 한번 문의를 해본 적이 있었어요. 그래 이 기둥이 있는데 왜 분양받으셨어요? 이렇게 이야기하는 거예요. 저한테 왜 분양받았냐고, 처음 분양받을 때는 몰랐죠."
이런 곳이 여기만이 아니었습니다.
성인이 양팔을 벌려야 닿을 정도 너비의 사각기둥이 있는 곳도 있었습니다.
기둥이 문제가 된 상가는 확인된 곳만 30여 곳에 이릅니다.
대다수 상가에는 식당 등 업종에 필수적인 공조 시설이 설치돼 있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상호 상가 수분양자, "기본적으로 상업지역의 주상복합 아파트 상가를 지을 때 최신 공법으로 상가를 지을 때는 요즘 덕트 공조 시설, 냉방기· 실외기 공조 시설을 설치해야 하는데 지금 이 상가에는 대부분이 덕트하고 실외기 설치 공간이 없습니다. 그게 없으면 요식업을 할 때 허가가 안 납니다. 덕트 공조 시설이 없으면 주인이 직접 직영을 해도 할 수가 없고 임대를 해도 할 수가 없는 상황입니다. 그래서 이 상가는 창고보다 못합니다."
"'임대 케어' 서비스 아니었다면 분양 안 받았을 것"
이들은 시행사가 상가 분양 당시 강조했던 이른바 '임대 케어' 서비스 약속이 지켜지지 않았다고 주장했습니다.
'임대 케어' 서비스는 전문 임대업체에 맡겨 우량 임차인을 유치하는 서비스를 말하는데, 상가 분양 홍보물 곳곳에 국내 1위 업체와 업무협약을 해서 이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문구가 들어있었습니다.
5억 원가량을 투자하면 수익률 5%대를 확보할 수 있다고도 했습니다.
고객을 끌어들일 수 있는 핵심 점포, '앵커 테넌트' 유치를 추진한다는 내용도 들어 있습니다.
그런데, 맨 아래쪽에 깨알 같은 글씨로 "상기 내용은 협의 과정에 의해 변경 및 취소될 수 있다"고 써 놓았습니다.
상가를 분양받은 사람들은 그런 협의 과정은 없었고 시행사가 약속을 지키지 않은 거라고 주장합니다.
황유진 상가 수분양자, "저희가 4년 전에 분양을 받을 때 그 임대 케어 서비스 유명 회사와 협약을 해서 준공 1년 전에는 시장조사를 해서 유명 프랜차이즈 입점 의향서를 받아가지고요. 준공 6개월 전에 공실 없이 모든 수익률 5%를 맞춰주시겠다고 그 약속을 저희는 진짜 철석같이 믿고 계약을 했는데 실제로 이렇게 준공에 나서도 하나의 약속이 이행되지도 않았고,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지금 현재 대형마트, 앵커 시설 유치도 천장 높이도 낮고 물류 기반 시설이 전혀 되어 있지 않고 주차 시설도 대수가 너무 모자라서 지금 현재로 거의 불가능한 상태라고 저희가 알고 있습니다."
상가 수분양자들 "분양 대금 돌려달라" 소송 제기···시행사 측, 채권추심 절차 들어가
결국 상가 분양을 받은 50여 명이 계약을 해제하고 돈을 돌려달라며 소송을 내 재판이 진행 중입니다.
계약 해제를 요구하는 수분양자들이 중도금을 내지 않거나 잔금을 치르지 않자 시행사가 채권 추심 절차에 들어가면서 고통이 커지고 있습니다.
배상호 상가 수분양자, "건물을 보고 도저히 쓸 수가 없는 상태라서 어쩔 수 없이 소송을 들어갔는데 지금 (미납 대금에 대한) 이자가 한 1,800만 원 정도 됐고요. 그래서 월급이라든지 모든 부분에 가압류가 지금 들어올 예정이고 그냥 죽고 싶은 마음이···. 월급 받아서 그냥 빚 갚아가면서 월세 조금 받으려고 했던 게 이렇게 큰 고통으로 올 줄 몰랐어요."
시행사 측 "분양 계약에는 아무 문제 없어, 소송에서 밝혀질 것"···관련 유사 판결 잇따라, 이번에는?
시행사 측은 법률 대리인을 통해 분양 계약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며, 진행되는 소송에서 밝혀질 것이라는 입장을 내놨습니다.
상가에 기둥이 있는 건 계약 과정에서 설명했고, 임대 케어 서비스 제공과 앵커 테넌트 유치는 변경 및 취소 가능성도 함께 안내했다는 겁니다.
최근 인천에서는 상가 모델하우스에 설치된 입체모형에 기둥이 있는 자리를 제대로 표시하지 않은 게 고지의무 위반이라, 분양 대금을 전부 돌려주라는 법원 판단이 나왔습니다.
상가를 분양받은 13명이 분양 사업자 측이 기둥이 있다는 걸 제대로 알리지 않아 손해를 봤다며 매매대금을 돌려달라고 소송을 내자 분양 사업자 측은 모델하우스에 있던 입체모형을 제시하며 반박했는데요.
기둥이 들어설 자리에 까만 네모로 분명히 표시를 해뒀다는 겁니다.
재판부는 고지 의무를 어겼다고 판단했습니다.
"입체모형의 네모 표시가 기둥인지 알 수 있는 별도의 문구가 없었다"며 "기둥의 존재는 분양계약 체결 여부나 조건을 결정하는 데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면서 분양 대금 전액을 돌려주거나 가치 하락에 따른 손해의 90%를 배상하라고 했습니다.
2023년 12월 서울고등법원도 이런 식으로 기둥을 네모로 표시한 제주의 분양 사업자에게 계약금을 반환하라고 했습니다.
또 지난 7월 서울중앙지법은 상가 앞에 거대한 방음벽이 들어서는데도 도면에 깨알 글씨로 작게 표시한 인천의 분양 사업자에게 계약금을 돌려주라고 했습니다.
물론 사업자 측 손을 들어준 판결도 있습니다.
상가와 인도 사이의 단차가 당초 예상보다 커져서 상가 수분양자가 상가 분양 및 시공자를 상대로 분양계약 취소를 청구한 사건에서 2022년 3월 대법원은 사업자 쪽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상가 분양계약서에 관련 유의 사항으로 "단차가 발생하니 반드시 현장을 확인하라’는 내용이 있었고 상가 모형도에도 같은 형태로 제작되어 있었는데도 상가 분양계약을 체결했기 때문에 허위 사실을 고지해 속였다고 인정하기 어렵다는 겁니다.
또 수원지법은 2023년 9월 상가 수분양자가 점포 외부에 설치된 기둥이 점포의 시야를 해쳤다며 신의칙상 고지의무 위반으로 점포 가치 하락분에 대해 손해를 배상하라며 시공자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사업자 쪽 손을 들어줬습니다.
분양공고문 유의 사항에 '판매시설에 따라 내외부 창호, 점포별 구성, 형태, 기둥의 유무 및 크기 등은 달라질 수 있음'이라고 기재돼 있고 모형도와 비교해 카탈로그를 살핀다면 카탈로그의 '■' 표시가 기둥을 의미한다고 이해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과연 이번 분쟁에서는 법원이 어느 쪽 손을 들어줄지 주목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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