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현철의 명화산책] 신낭만주의 거장 들라크루아 ‘자유의 여신’

강현철 2025. 11. 12.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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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현철 논설실장


프랑스의 대문호 빅토르 위고의 소설을 바탕으로 한 ‘레 미제라블’을 영화나 뮤지컬로 본 사람이라면 시위 군중 앞에 휘날리는 ‘빨간 깃발’을 생생히 기억할 것이다. ‘빨간 깃발’은 자유와 평등, 박애 등 혁명의 이념과 동의어이기도 하다.

외젠 들라크루아,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La Liberte guidant le peuple). 1830년 . 캔버스에 유채. 세로 325 x 가로 260 cm. 루브르 박물관 소장


이 명장면을 위고의 소설보다 앞서 그림으로 남긴 화가가 있으니 바로 외젠 들라크루아(Ferdinand Victor Eugene Delacroix, 1798~1863년)다.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으로 불리는 들라크루아의 이 작품은 프랑스 낭만주의를 상징하는 대표작이다. ‘1830년 7월 28’이라는 별제가 붙어있는 것처럼 1830년 7월 27일부터 29일까지 ‘영광의 사흘’로 불리는 프랑스 7월 혁명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1812년 러시아 원정 실패로 나폴레옹과 프랑스 제국이 몰락하면서 복귀했던 부르봉 왕가의 폭정에 반대한 혁명이다.

쓰러진 시신들을 딛고 전진하는 혁명의 전사들 앞에 자유의 여신이 나타나 이들을 이끌고 있다. 역사적 사건에 상상력을 가미, 낭만주의 예술의 진수를 보여준다. 삼색기(프랑스 국기)를 높이 들고 화면 가운데 우뚝 선 여신은, 챙이 없고 원뿔처럼 생긴 프리기아 모자를 쓰고 가슴을 노출한 채 한 손에는 프랑스 국기를 다른 손에는 총검을 들고 사람들을 이끈다. 프리기아 모자는 1789년 프랑스 혁명 당시 자유를 상징하는 것이기도 했다.

여신의 겨드랑이에는 털이 나있는데, 강인한 여성을 표현한다. 여신은 피라미드 구도의 중심을 차지하면서 드라마틱한 혁명을 상징한다. 왼쪽의 긴 총을 든 부르조아는 화가 자신이다. 그의 옆에는 흰색 띠를 두른 노동자 계층의 모습이 보이고, 아래쪽 얼굴만 튀어나온 청년은 대학생이다. 여신 오른쪽에는 권총을 든 청소년이 있다. 이들 모두는 자유를 향한 열망과 결의로 가득찬 눈빛이다. 그림의 주 색채는 삼색기의 빨강 파랑 하양이다. 당시 빨강과 파랑은 파리시의 상징이었으며, 하양은 부르봉 왕가의 색이었다. 강렬한 색채와 명암 대비를 활용해 혁명의 격정과 긴장감을 잘 표현하고 있다. 총소리와 전투의 흔적이 자욱한 노도와 같은 군중의 저편으론 노트르담 성당이 희미하다.

자유의 여신은 훗날 수많은 작품에 오마주됐다. 여러 사회적, 정치적 운동에 영감을 주었으며, 현대까지도 혁명적 정신과 자유의 아이콘으로 자리잡고 있다.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은 7월 혁명을 기념하기 위한 공모전에서 당선작 중 하나다. 혁명 당시 용감하게 나서지 못했던 들라크루아는 혁명에 헌신했던 위대한 시민들에 헌사를 하고 싶었다고 한다.

19세기 프랑스 화단은 장 오귀스트 도미니크 앵그르를 축으로 하는 신고전주의자들과, 교훈적인 세상에 대한 환멸을 격정적이고 담대한 색채로 풀어내려는 낭만주의자들 간 각축장이었다. 들라크루아는 낭만주의를 이끌었다. 앵그르는 들라크루아의 그림에 대해 “푸줏간의 고깃덩어리”라고 비난했으며, 들라크루아는 앵그르의 작품을 “낡아빠진 소묘 덩이리”라고 응수했다.

들라크루아의 작품은 △두껍고 역동적인 붓질로 질감을 그대로 드러내는 강렬한 색채와 붓터치 △폭발적인 에너지를 표현하는 극적이고 역동적인 구성 △개인의 감정과 상상력, 이국적 세계를 강조하는 낭만주의적 감성이 특징이다. 종교·신화·문학·역사에서부터 현실의 풍속·인물·풍경·정물 등 다양한 소재의 작품을 남겼다. 현실을 초월한 상상 세계에서의 인간의 진실한 모습과, 영웅적인 모습이 되려고 노력하는 인간의 표상을 담고자 했다.

들라크루아의 낭만주의는 ‘메두사호의 뗏목’이라는 명작을 남긴, 공포에 질리고 처절한 육신들의 모습이 특징인 데오도르 제리코의 영향이 컸다. 프랑스의 시인 보들레르는 “들라크루아는 르네상스의 마지막 거장이면서도 최초의 화가”라고 했다.

들라크루아는 프랑스 샤랑통생모리스(현 생모리스)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외교관이었고, 어머니는 유명한 궁정 가구업자의 딸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음악과 문학에 조예가 깊었으며, 파리 보자르에서 신고전주의 화가 피에르 나르시스 게랭으로부터 그림을 배웠다. 루브르 박물관을 드나들며 루벤스와 제리코의 영향을 받았다.

들라크루아, ‘단테의 배 (La Barque de Dante). 1822년. 캔버스에 유채. 246 x 189 cm. 루브르 박물관 소장.


1822년 살롱에 출품한 첫 작품인 ‘단테의 배’는 낭만주의 회화의 시작을 알리는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작은 배엔 세 인물이 서있다. 붉은 두건을 두른 이는 ‘신곡’을 쓴 단테다. 그의 오른쪽은 고대 로마의 시인 베르길리우스다. 단테는 베르길리우스에 의지한채 먼 곳을 바라본다. 허공으로 뻗은 단테의 팔과 얼굴 표정은 놀라움과 공포로 가득차 있다. 뱃사공 플레기아스는 배를 젓느라 여념이 없으며, 배 주변에는 일곱명의 망자(亡者 )가 배에 오르려 아귀다툼을 벌이고 있다. 배에 매달린 왼쪽 끝 인물 뒤로는 물위로 얼굴만 내민 이들이 적지 않다. 뱃사공의 탄탄한 등근육은 고대 조각 벨베데레의 토르소와 닮았다. 마른 붓으로 표현된 물결, 넘쳐나는 자유분방한 색채와 에너지는 루벤스의 화풍과 유사하다.

단테는 베르길리우스의 서사시 ‘아이네이스’에 영감을 받아 지옥, 연옥, 천국의 이야기를 담은 신곡을 쓴다. 베르길리우스의 안내로 지옥의 아홉 구역을 건넨 단테가 연옥의 정상에서 연인 베아트리체를 만나 천국에 함께 간다는 내용이다. ‘단테의 배’는 지옥의 다섯번째 구역에서 영원히 고통받는 망자들을 주제로 한 작품이다.

1832년 모로코 여행은 들라크루아 작품 세계의 전환점이 됐다. 북아프리카의 강렬한 햇빛과 이국적인 풍경, 문화를 접하고 수많은 스케치를 남겼으며, 이를 바탕으로 ‘하렘의 알제 여인들’ 같은 걸작을 남겼다. ‘하렘의 알제 여인들’은 르누아르, 피카소 등에 영향을 줬다.

들라크루아, ‘사르다나팔루스의 죽음’ (La Mort de Sardanapale). 1827년. 캔버스에 유채. 392 × 496cm. 루브르 박물관 소장.


‘사르다나팔루스의 죽음’은 오리엔트 아시리아의 왕 사르다나팔루스가 전쟁에서 패한 후 자살 직전 자신의 소유물을 남김없이 파괴하라는 명령을 내렸는데 이를 그린 것이다. 칼에 찔려 살육당하는 여성들을 왕은 태평스럽게 바라본다. 폭력, 파괴, 관능적인 색채가 특징이다. 파괴의 광경은 폭력적이고 혼란스럽지만, 시각적으로 화려하다.

들라크루아는 유화·데생·수채화·파스텔화·판화 외에 루브르 박물관의 아폴로 전시실 천장화, 파리 시청 벽화 등 천장화와 벽화 또한 많이 그렸다. 사자 사냥이나 말 그림처럼 최고의 동물화가이기도 했다. 그가 그린 사자 그림만 해도 300점이 넘는다. 단테는 물론 윌리엄 셰익스피어, 스코틀랜드 작가인 월터 스콧, 독일 작가인 요한 볼프강 폰 괴테 등의 작품을 석판화로도 제작했다.

들라크루아의 표현적인 붓놀림과 색의 광학적 효과에 대한 연구는 인상파, 상징파 등에 영향을 끼쳤다. 화가 폴 세잔은 “우리 모두는 들라크루아 안에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142㎝의 키로 유난히 작은 거인이었던 그는 1863년 세상을 떠났다.

평론가 정연복씨는 “들라크루아의 그림에선 힘과 힘의 대결, 야만과 문명, 고요와 동요 사이의 긴장이 느껴진다”며 “팽팽하게 유지되는 투쟁과 긴장이 작품의 본질”이라고 평가했다.

사족으로 들라크루아의 이름을 가진 프랑스 화가가 한 명 더 있는데 현대 화가 미셸 들라크루아(Michel Delacroix)가 그다. 그는파리의 주요 건축물과 거리를 배경으로 시민들의 따뜻한 일상을 주로 그리고 있다.

강현철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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