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성해서, 조잡해서, 음란하진 않아서" 딥페이크 성범죄에 너무 관대한 법원
반성하고 초범이라 형량...깎아주는 법원
피해 회복 쉽지 않은데 '피고인 사정'만 고려
반성문 제출·기습공탁...감경 수단도 다양해
관대한 판결 계속될수록 범죄 근절엔 걸림돌
A씨는 2020년 10월 전 여자친구 얼굴 사진을 나체의 남녀가 성관계하는 영상에 오려 붙인 것을 비롯해 총 52회에 걸쳐 11명에 대한 딥페이크(인공지능 기반 이미지 합성 기술) 성착취물을 제작했다. 또 이 같은 합성물을 16차례에 걸쳐 피해자 실명과 함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엑스(X)에 퍼뜨렸다. 범행 대상은 전 여자친구, 대학 동기나 선·후배, 친구의 전 여자친구 등이었다. 그는 휴대폰에 아동·청소년 성착취물 98개를 소지하기도 했다.
그러나 법원이 A씨에게 내린 처벌은 징역 1년6월에 집행유예 4년에 불과했다. A씨가 수사단계부터 ①진솔하게 반성하는 모습을 보였고 ②형사처벌을 받은 적이 없는 초범이고 ③피해자들과 합의했으며 ④가족들과의 유대관계가 잘 유지돼 재범 가능성도 낮다는 점이 고려됐다. 피해자들이 성적으로 흥분해 눈을 위로 치켜뜬 것처럼 편집한 합성물에 대해서는 "⑤사회통념을 가진 일반인이 봤을 때 성적 수치심을 유발한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해 무죄를 선고했다.
반성·초범·합의...딥페이크 범죄 '감경 패키지'
A씨에 대한 판결은 딥페이크 기술로 성착취물을 제작·반포하는 범죄의 형량을 감경하는 데 있어서 사법부가 어떤 잣대를 들이대는지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한국일보는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소속 김남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으로부터 2019년 N번방 사건 이후 이듬해 3월 신설된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성폭력처벌법) 14조의2(허위영상물 등의 반포 등)가 적용된 사건 75건의 판결문(올해 8월까지 1심 기준·군사법원 판결이나 공개제한 판결 제외)을 입수해 양형 이유를 분석했다. 대법원 양형위원회가 딥페이크 성범죄에 대해 설정한 양형 기준을 근거로 판결문에 양형 이유를 구체적으로 적시한 경우만 분석 대상으로 했다.
그 결과 성폭력처벌법상 허위영상물 등의 반포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77명 중 △징역형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사람은 36명(46.7%)이었고 △징역형 실형 선고는 20명(26.0%) △벌금형은 12명(15.6%)으로 나타났다.
판결문에 양형 기준상 감경 인자 또는 피고인에게 유리한 정상을 적용하고 이를 구체적으로 적시한 사례(중복 집계)를 살펴보니 △반성(40명·51.9%) △합의 및 피해자의 처벌 불원(28명·36.4%) △초범 또는 동종전과 없음(59명·76.6%) △어린 나이(17명·22.1%) △피해 구제를 위한 공탁(12명·15.6%) △경제적 이득을 취하지 않았거나 소액(9명·11.7%) 등을 형량에 반영한 것으로 나타났다.
법관은 법률에 규정돼 있는 법정형 중 징역·벌금형 등 선고할 형의 종류를 선택하고 형을 가중·감경해 처단형을 정하는데, 이때 참조하는 기준이 양형기준이다. 원칙적으로 구속력은 없으나, 합리적 사유 없이 양형기준을 위반해선 안 된다.
①나이가 어리고 초범이라 감경
최근 벌어진 딥페이크 성범죄 사건을 보면 10대 학생들이나 대학생들이 가담하고, 주변 지인들을 범행 대상으로 삼은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판결문상에서도 피고인이 미성년 또는 갓 성년이 된 점이 언급되거나, 이전에 별다른 형사처벌 전력이 없는 초범인 경우가 적지 않았다.
문제는 재판부가 이 같은 '피고인의 사정'을 적극적으로 참작하고 있다는 점이다. 일부 판결문에는 '피고인이 갓 성년이 된 어린 나이', '범행 당시 소년이었고, 판결 시점에도 성년이 된 지 얼마 되지 않은 비교적 어린 나이', '아직 15세 초범이라 앞으로 행동거지를 고쳐나갈 시간과 가능성이 꽤 남았고' 등의 문구가 적시됐다. 피고인들의 나이가 어린 만큼, 부모가 '강한 선도 의지'를 표명한 점이 인정되기도 했다.
가해자의 나이가 비교적 어리거나 초범이라 법원이 형을 감경해주는 등 갱생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은 딥페이크 성범죄가 아닌 다른 범죄에서도 일반적으로 고려되는 감경 요소다. 그러나딥페이크 성범죄 특성상 나이가 어리거나 젊은 가해자가 자신의 또래나 사회적 지인을 범행 상대로 하는 경우가 적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유난히 가해자의 사정만 감안하는 판결이 이뤄진다는 비판도 있다. 김혜정 한국성폭력상담소장은 "가해자가 처벌로 인해 학업에 차질이 생기는 것을 형량 감경 요소로 언급하는 등 가해자의 사정만 고려하는 판결은 고질적인 문제"라면서 "그만큼 피해자가 학업을 못하게 되는 사정도 고려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냐"고 설명했다.
②반성하고 있고 합의했으니 감경
피고인이 반성하거나 피해자와 합의를 했다는 사정도 처벌 수위를 낮추는 데 적극 반영됐다. 분석 대상 판결문 중 절반 이상은 '피고인이 반성하고 있음'을 양형에 고려한 것으로 나타났다. 일부 피해자와 합의하거나, 피해 회복을 위해 법원에 돈을 맡기는 공탁을 했을 때도 감형이 이뤄졌다. 1심에서 징역형 실형을 받은 뒤 2심에서 피해 변제금을 공탁해 집행유예가 되거나, 공탁으로 2심에서 형량이 줄어든 사례도 있었다.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4091113190002692)
이 때문에 딥페이크 성범죄 가해자의 형량을 감경해주기 위한 가해자 대상 '법률 마케팅'도 활개를 치고 있다. 법원이 각종 감경 요소로 처벌 수위를 낮춰주는 만큼 법률사무소나 법무법인 입장에서는 가해자를 상대로 마케팅할 '수단'이 많아지는 셈이다. 자진해서 성폭력 예방교육을 이수하거나, 성실한 학교생활을 증명하거나, 항소심에서 형량을 낮추기 위해 기습적으로 공탁을 하는 사례도 있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가해자는 재판부에 어느 정도 노력하는 모습만 보여도 형량을 낮출 수 있는 반면, 딥페이크 성범죄 피해자는 피해 정도를 파악하고 증명하기가 어려운 데다 피해 회복 방법도 마땅치 않은 경우가 많다"면서 "반성문 제출, 합의 등을 이유로 기계적인 감형이 이뤄지면 피해자 입장에선 박탈감이 더 클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③합성물이 조악하고 음란하지 않아 감경
합성된 허위영상물이 조악하거나 성적 수치심을 불러일으킬 정도는 아니라는 점도 감경의 사유가 됐다. 관련 판결문에는 '합성한 사진이 육안으로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정교하게 편집되지는 않은 점', '반포된 합성사진이 일반 사진에 정액이 묻은 것처럼 편집한 정도에 그쳤고 다소 조잡함', '구매자들에게 합성사진임을 고지해 판매함' 등이 양형 이유로 적시됐다. A씨의 사례에서도 피해자들이 눈을 치켜뜬 것처럼 합성한 성착취물이 '인터넷 하위문화를 중심으로 통용된다'며 피해자로 하여금 당혹감이나 불쾌감을 일으킬 수는 있지만, 일반적으로 성적 수치심을 유발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인모임 여성인권위원회의 백소윤 변호사는 "딥페이크 합성물이 누군가에게 음란하다는 인상을 줘야지만, 또는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피해자가 그런 행위를 한 것으로 착각할 정도로 정교해야만 처벌하는 것이 아니라, 피해자의 의사에 반해 제작·유포된 합성물로 인해 성적 자기결정권이 침해되는지 여부가 처벌의 필요성이나 죄질 등 양형 판단에 반영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앞서 대법원은 버스에서 레깅스를 입은 여성의 뒷모습을 몰래 촬영한 혐의(성폭력처벌법상 카메라 등 이용촬영)로 재판에 넘겨진 A씨에 대해 촬영된 부위가 '성적 욕망 또는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신체'가 아니라며 무죄를 선고한 항소심을 파기한 바 있다. 백 변호사는 "대법원 판례는 성범죄의 대상이 되는 신체가 성적 의미가 부여된 신체에 국한되거나, 노출 여부에 따라 결정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면서 "이는 피해자의 권리, 의사에 반해 성적 대상화가 되지 않을 성적 자유를 보호 법익으로 본 것인데, 딥페이크 성범죄 판결에서는 아직까지 이 같은 보호 법익을 좁게 해석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1010614140000976)
딥페이크 성범죄와 같은 디지털 성범죄가 갖는 파급력에 비해 사법부가 여전히 이를 경범죄 수준에서 접근한다는 비판도 있다. 류영재 의정부지법 남양주지원 판사는 "딥페이크 성범죄가 실제 신체 접촉이 이뤄지지 않거나 신체 일부를 합성하는 특성 때문에 법원의 인식 변화가 늦어지는 것으로 보인다"면서 "딥페이크 성범죄가 피해자의 사회적 정체성이나 인적 관계를 완전히 무너뜨리는 피해를 발생시킨다는 맥락이 더 고려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법원의 관대함이 '국가재난'으로까지 일컬어지는 딥페이크 성범죄를 뿌리 뽑는 데 걸림돌이 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남희 의원은 "딥페이크 등 디지털 성범죄의 문제점은 온라인상으로 피해가 지속적으로 확산될 수 있어 피해 구제가 어렵고 피해자에게 심각한 정신적 고통을 입힌다는 것"이라며 "법원이 딥페이크 성범죄 가해자가 초범이거나 반성한다는 이유 등 피고인의 서사만 고려해 관대한 판결을 계속한다면 범죄 예방과 근절, 실질적인 피해 구제가 요원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현주 기자 memor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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