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주년을 맞이하는 유럽 최대 가전 박람회 IFA 2024

안녕하세요, 독일 베를린에 다녀온 이주형입니다. 전 세계에 대표적인 가전 박람회가 몇 개가 있는데요, 저는 그중 하나인 IFA를 다녀왔습니다.

IFA는 매년 독일 베를린에서 열리는 가전 박람회입니다. 1924년부터 시작하여 올해로 무려 100년째를 맞이했죠. 역사가 얼마나 오래됐냐면, 1930년에는 천재 물리학자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 IFA 개회사를 연설했던 적이 있을 정도입니다.

IFA를 향해 출근(?)하는 사람들의 모습.

일단 IFA를 처음 와본 입장에서 느낀 건 행사장의 크기입니다. 1,700여 개의 업체가 약 48,000여 평에 달하는 메쎄 베를린 전시장에 부스를 차렸습니다. 전시장 안에는 셔틀버스가 돌아다니고, 문을 여는 아침 10시에 들어가서 관심이 가는 부스를 살펴보면서 돌기에는 하루를 꼬박 써도 모자를 정도였습니다.

밀레 부스에서 진행하고 있던 즉석요리 쇼.

지금 가전 박람회의 양대산맥은 CES와 IFA입니다. CES는 1월에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고, IFA는 9월에 베를린에서 열리죠. 상반기와 하반기, 그리고 미국과 유럽에서 열린다는 상반된 차이점을 가지고 있는 셈입니다. CES는 좀 더 IT에 치중하는 분위기가 난다면, IFA는 좀 더 백색가전의 전시회에 가까운 분위기입니다. 실제로 삼성과 LG도 백색가전 전시에 더 집중하는 분위기고, 그 외의 메이저 참여 업체도 밀레와 (커피 머신으로 유명한)유라와 같은 가전 업체가 대부분이었습니다. 가전 박람회이니만큼 이와 관련된 체험 행사가 많았는데, 대표적인 게 바로 즉석요리 쇼였습니다. 특히 대형 가전 부스만 가면 맛있는 음식 냄새가 코를 찔러서 돌아다니는 내내 참 배가 고팠네요.

DJI가 선보인 소형 드론인 네오.

그렇다고 IFA에 IT 기업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대표적으로 DJI가 있었는데, 최근에 발표한 신형 미니 드론인 DJI 네오를 홍보하느라 바쁜 모습이었습니다. 컨트롤러의 필요 없이 손 제스처만으로 이착륙을 하며, 자동으로 사용자를 따라오면서 촬영도 할 수 있는 드론입니다. 한 쪽에는 이를 시연하는 구역을 마련하기도 했죠. 그 외에도 인스타360과 같은 카메라 업체에서 아이폰 케이스 업체와 일론 머스크가 이끄는 스페이스X의 위성 인터넷 서비스 부서인 스타링크까지, 다양한 브랜드에서 부스를 마련했습니다.

선이 없어도 잘 돌아가는 믹서기입니다.

이번 IFA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것 중 하나는 바로 기(Ki)라 부르는 새로운 무선 전력 공급 표준입니다. 기 표준은 최대 2.2kW의 전력을 공급하여 믹서기나 전기 포트 주전자, 심지어 에어프라이어까지 무선으로 전원을 공급할 수 있는 새로운 기술입니다. 전력 공급은 식탁 아래에 전력 공급 패드를 시공하면 된다고 하고, 패드에는 자석도 있어 전력을 공급하려는 기기의 위치를 최적으로 맞출 수 있습니다. 기 표준을 개발했고, 역시 우리에게 익숙한 무선 충전 표준인 치(Qi) 표준도 관리하는 무선 파워 컨소시엄(WPC) 관계자에 따르면, 이미 필립스를 비롯한 다양한 가전 기업들이 해당 표준을 사용한 가전제품을 선보일 예정이라고 하네요. 가전 박람회인 IFA에서 볼 법한 기술이었죠.

솔직히, 이번 IFA를 취재하며 어떤 내용을 쓸까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원래는 거기서 마주치게 될 재밌는 제품들에 대한 기사를 쓰기로 마음을 먹고 있었는데요, 실제로 IFA를 정신없이 보고 오니 든 생각은 ‘가전 박람회의 미래’였습니다. 좀 뜬금없을 수 있지만, 한 번 얘기해보겠습니다.

삼성의 IFA 프레스 컨퍼런스도 직접 봤지만, 눈길을 끄는 건 별로 없었습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이러한 가전 박람회가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전 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기술의 발전을 한 곳에 모여서 볼 수 있는 행사였으니까요. 하지만 인터넷의 발전 덕분에 이러한 가전 박람회의 필요성은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여기의 대표적인 예가 삼성인데요. 원래 삼성은 갤럭시 스마트폰의 상반기 발표를 2월에 바르셀로나에서 열리는 MWC(Mobile World Congress)에서 하고, 하반기 발표는 9월에 IFA 현장에서 진행했었습니다. 하지만 이 시기를 조금씩 앞으로 옮기더니 올해의 경우 갤럭시 S24 시리즈는 1월에, 갤럭시 Z 6세대 시리즈는 7월에 발표했죠. 삼성이 IFA에 부스를 아예 안 차린 건 아니었지만, 눈에 확 들어오는 발표는 딱히 있다고 보기 힘들었고 여태까지 이미 선보인 솔루션에 대한 전시가 대부분이었습니다. 약간 ‘재방송’의 느낌이 강했달까요?

삼성은 이미 7월에 갤럭시 Z 6 시리즈와 갤럭시 링을 파리에서 선보였었죠.

그렇다면 왜 삼성은 이런 선택을 했을까요? 따로 발표하면 관심이 자신에게 쏠리기 때문입니다. IFA 같은 가전 전시회에는 삼성 뿐만 아니라 많은 기업들이 주목을 받기 위해 경쟁할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거기에 전시회 일정에 출품할 제품의 개발 일정을 맞춰야 한다는 애로사항도 있죠. 삼성과 같은 큰 기업들은 이렇게 다른 업체들과 경쟁을 하느니 자신만의 타임라인에 제품을 발표하는 것이 자신이 받는 주목도나, 개발 일정 등을 고려하면 더 나은 선택인 셈입니다. 특히 인터넷을 통한 라이브 스트리밍이 보편화되면서 예전과 다르게 전 세계 동시 생방송이 훨씬 쉬워졌고, 코로나19 판데믹 이후에 더더욱 온라인 행사를 선호하는 경향이 강해진 것도 한 몫했을 겁니다. 이러한 현상은 자동차 산업에서도 비슷한데요, 실제로 올해 열린 부산모빌리티쇼에는 BMW를 제외한 모든 수입차 업체가 불참하여 반 쪽짜리였다는 평가를 들어야 했습니다.

위에 대표적인 가전 박람회로 IFA와 CES를 언급했었죠. 예전에는 많은 기업들이 이러한 가전 박람회들에서 제품 발표를 해 왔기에 IFA와 CES가 모두 존재할 의미가 있었지만, 삼성과 같은 큰 기업들이 이제 발표를 자체적으로 하면서 예전과 다르게 이러한 가전 박람회들에 대한 주목도가 점점 줄어들고, 규모도 작아지고 있습니다. 그나마 CES는 신상 가전 및 IT 제품의 대부분이 소비되는 미국에서 열린다는 이점을 가지고 있어서 여전히 많은 관심을 받지만, IFA에 대한 관심은 확실히 예전보다 덜해졌다는 기분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그런 느낌은 IFA 행사장을 둘러보면서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산업 관계자나 언론만이 출입할 수 있는 CES는 개인적으로 가보진 않았지만 늘 발 디딜 틈 없이 정신이 없다는 얘기를 다녀와본 지인들에게서 많이 들었었습니다. IFA는 (비록 관람권 가격이 비싸지만) 일반인도 관람을 할 수 있음에도 전시장이 꽉꽉 차 있다는 느낌을 받기 어려웠죠. (워낙 넓어서 그런가 싶기도 하지만요.) IT에 관심이 많은 제 아내도 CES는 들어봤어도 IFA는 제가 출장을 간다고 했을 때 처음 들어봤을 정도로 IFA는 일반 대중에게도 각인되어있지 않아 있습니다. CES는 대표적인 가전 박람회로서 살아남겠지만, 점점 전시회에 기업들이 의존하는 정도가 줄어들면서 IFA의 미래는 불투명한 이유입니다.

하지만 저는 이런 가전 박람회가 없어지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비록 큰 기업들은 더 이상 가전 박람회에서 가치를 보지 않을지 몰라도, 여전히 자신만의 행사를 마련할 자본이 없는 중소기업이나, 아직 특정 국가에 진출하지 못한 기업들에게는 IFA 같은 곳이 자신의 제품을 오프라인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선보일 수 있는 몇 안 되는 기회이기 때문이죠. 실제로 제가 IFA에서 재밌게 봤던 제품들은 삼성스토어나 LG 베스트샵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제품들이 아닌, 늘 기사나 유튜브를 통해서만 접했던 회사들 제품이었습니다. 실제로 사기 전까지 실물을 한 번도 구경하기 힘든 그런 제품들이죠. 여기가 아니었다면 언제 앤커의 신제품을 한곳에서 볼 수 있을까요? 구글의 픽셀 9 프로 폴드도 한국에서는 체험해 보기가 매우 어려운 제품이었을 겁니다.

이런 제품들뿐만 아니라, IFA는 다른 나라에서 자신의 제품을 선보이는 건 꿈을 꿔보지도 못했을 스타트업들이 자신의 기술을 선보일 수 있는 기회를 주기도 합니다. 대표적으로 이번 IFA에는 ‘대전관’이 있었는데요, 대전광역시에서 관내에 있는 스타트업들을 후원해 IFA에 차린 부스입니다. IFA와 같은 곳이 아니었다면 이러한 스타트업들이 전 세계를 상대로 홍보하기는 훨씬 어려웠을 겁니다.

21세기는 초연결의 시대라고 하죠. 인터넷만 연결돼 있다면 전세계의 어떤 사람이던 화상회의가 가능한 이 초연결성이 전통적인 박람회의 필요성을 줄이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매일 인터넷으로 새로운 소식을 접하고 이에 대한 기사를 인터넷에 올리는 일을 하면서도 여전히 매번 이런 박람회에 갈 때마다 어린아이처럼 설레는 기분이 드는 건, 여전히 박람회가 우리에게 제공하는 가치가 있다는 증거 아닐까요?


IFA 2024의 분위기를 느껴볼 수 있는 사진들

삼성은 갤럭시 AI 기능들을 중점적으로 홍보하는 모습이었습니다.

IFA에서는 비즈니스 솔루션 제품도 볼 수 있는데요, 이 제품의 경우 한 곳에서 여러 스토어의 가전을 통제할 수 있게 해주는 모습입니다.

연초에 선보였던 뮤직 프레임 스피커의 <위키드> 한정판.

삼성의 가사 로봇(?) 볼리를 시연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자체적으로 프로젝터가 달려 있어 영화를 볼 수도 있다네요.

인텔의 루나 레이크를 탑재한 갤럭시 북 프로 신제품도 전시됐습니다.

DJI의 사내 벤처에서 개발한 산악용 전기 자전거. DJI가 드론 기술을 기반으로 개발한 전기 모터를 사용한다고 해요.

논밭에 농약을 뿌려주는 드론.

풀 로봇청소기가 벽을 구석구석 닦고 있네요.

“손!”

돌아다니느라 지쳤으니 바디프렌드 안마의자에서 안마를 받아보는 건 어떨까요?

베를린에서 꿈돌이를 볼 줄이야.

KT가 후원한 스타트업들이 모여 있는 KT 파트너스관의 모습.

우리나라에서는 내년에 만나보게 될 애플의 ‘나의 찾기’ 네트워크를 지원하는 USB-C 멀티 충전기라고 합니다.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하게 됐냐”라고 물어보니 “여행이나 출장을 갈 때 보통 충전기를 가방에 넣을테니 그걸로 캐리어나 가방을 추적할 수 있는 이중적 용도를 생각했다”라고 하더군요. 이제 우리나라도 곧 나의 찾기 네트워크를 지원하게 되는만큼 국내 제조사들에서도 이런 참신한 액세서리들이 나오길 기대해봅니다.

이번 IFA에서 발표된 앤커의 신제품들입니다. 이렇게 한 번에 확인해볼 기회가 우리나라에서는 많지 않죠.

내년에도 만날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