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채식주의자' '소년이 온다', 이래서 특별하다
"채식주의자, 육식문화로 대변된 남성 질서 저항"…"소년이 온다, 사라진 광주 시민 목소리 대변"
[미디어오늘 장슬기 기자]
*책의 줄거리가 일부 포함되어 있습니다.
한국 최초로 한강 작가가 노벨문학상 수상이 결정됐다. 아버지 한승원 작가는 11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강이가 (상을) 타게 된 것을 살펴보니 '채식주의자'에서부터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 작가라고 이야기된 것 같다”고 말했다. 한 작가는 지난 2016년 '채식주의자'로 세계 3대 문학상인 맨부커상을 받았다.
'채식주의자'는 2004~2005년 발표해 2007년 묶어 낸 작품이다. 어느 날 육식을 거부한 영혜의 남편 관점에서 서술한 '채식주의자', 영혜의 형부(인혜의 남편) 관점에서 서술한 '몽고반점', 언니 인혜 관점에서 서술한 '나무 불꽃' 등 세 작품으로 구성한 연작소설이다. '채식주의자'는 식물로 변한 한 여자와 그 여자가 담긴 화분을 돌보며 사는 남편의 시선을 담은 소설 '내 여자의 열매'를 모티브로 했다.
영혜가 채식을 하게 되는 계기 중 하나는 동물에 대한 폭력이다. 이는 채식을 선택하게 된 이후 아버지가 영혜에게 가하는 폭력으로 이어진다. 영혜가 육식을 거부하면서 폭력과 폭력적 시선 속에 살게 되다 정신병원에 갇히기도 한다. 곡기를 끊으며 자신을 '나무'라고 말하는 영혜의 모습이 '정상'이 아니라고 받아들여졌을 만하다.
“아버지는 녀석(영혜의 다리를 문 개)을 나무에 매달아 불에 그슬리면서 두들겨패지 않을 거라고 했어. 달리다 죽은 개가 더 부드럽다는 말을 어디선가 들었대. 오토바이의 시동이 걸리고, 아버지는 달리기 시작해. 개도 함께 달려. 동네를 두 바퀴, 세 바퀴, 같은 길로 돌아. 나는 꼼짝 않고 문간에 서서 점점 지쳐가는, 헐떡이며 눈을 희번덕이는 흰둥이를 보고 있어. (중략) 그날 저녁 우리집에선 잔치가 벌어졌어. 시장 골목의 알 만한 아저씨들이 다 모였어. 개에 물린 상처가 나으려면 먹어야 한다는 말에 나도 한입을 떠넣었지. 아니, 사실은 밥을 말아 한 그릇을 다 먹었어.”(채식주의자 53쪽)
관련 연구도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미란(이화여대 박사과정)의 <에코 페미니즘 시각으로 본 한강과 응웬옥뜨의 소설 비교 연구>를 보면 “응웬옥뜨 소설에선 억압당한 여성이 인간의 언어를 거부해 동물의 언어로 소통하는 '동물되기'의 과정이 나타나고 한강의 소설에서는 평범한 여성 주인공이 악몽을 꾸며 '식물되기' 과정을 거치지만 가족들의 반대와 폭력에 시달리며 소외감이 가중된다”며 “하지만 여성 주인공이 채식주의자가 된 근원적 원인은 어린 시절 아버지의 폭력과 남편의 무시와 같은 가부장제 사회의 뿌리 깊은 병폐라고 할 수 있다는 점에서 한강 소설의 '식물되기'는 자연으로 돌아감으로써 모든 고통과 죄를 벗어나고자 하는 시도의 의미를 갖는다”고 평가했다.
신수정(명지대 교수)의 <한강 소설에 나타나는 '채식'의 의미 : 채식주의자를 중심으로>에선 “'식물'과 '음식'을 결합하는 '채식' 모티프는 한강 소설을 규명하는 핵심 키워드”라면서 “여성 채식주의자를 통해 육식문화로 대변되는 남성 질서를 넘어서고자 하는 저항적 움직임을 보여준다”며 “채식에 대한 완강한 고수를 넘어 거식에 이른 여성의 육체 언어는 남성적 지배 질서를 대변하는 기성 언어를 대체하며 여성적 욕망의 생태학적 윤리를 실천한다”고 평가했다.
마혜경(단국대 박사)의 <한강 '채식주의자'에 나타난 여성 몸의 의미와 저항 읽기>에선 영혜의 몸이 남성 중심의 폭력에 노출됐다고 요약한다. “영혜는 아버지에게는 폭력을, 남편에게는 강간을, 형부에게는 관음의 대상이었다. 원치 않는 치료를 동의 없이 강압적으로 진행한 정신과 의사 역시 그녀 몸에 폭력을 행사한 대상이다. 작품에 등장하는 남성들로부터 폭력의 전유물이었던 영혜는 급기야 자신을 온몸으로 거부하며 학대한다.”
여기서 형부에게 관음이 대상이 된 부분이 논란이다. 인혜의 남편이 영혜와 잠자리를 나눴고 이를 인혜가 알게 됐다. 이에 마혜경은 “결과적으로 영혜는 폭력의 피해자이자 가해자인 셈”이라고 봤다. 불륜이라는 충격적인 상황에 비해 인혜는 영혜에게 강경한 태도를 보이지 못한다.
“그녀는 덩굴처럼 알몸으로 얽혀 있던 두 사람의 모습을 떠올린다. 그것은 분명히 충격적인 영상이었지만 이상하게도 시간이 흐를수록 성적인 것으로 기억되지 않았다. 꽃과 잎사귀, 푸른 줄기 들로 뒤덮인 그들의 몸은 마치 더 이상 사람이 아닌 듯 낯설었다.”(나무불꽃, 218쪽)
이 대목만 보면 인혜는 이 충격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우회하는 것 같다. 다만 영혜는 결국 거식증으로 말라가고, 인혜는 영혜를 돌보면서 몸의 주체가 자신이라는 사실을 자각한다. 영혜의 거식을 해석하는 여러 해석이 있다. 김세경(경성대 교수)의 <심리적 허기의 관점에서 본 '한강' 소설에 나타난 섭식의 의미>에서는 “형부와 성관계를 언니에게 들켜 영원히 이해받지 못하게 되면서 또 다른 외상의 낙인이 찍혀 죄책감을 갖게 돼 자신을 더 억압하게 됐다는 입장(한귀은 2008)과 형부가 영혜의 트라우마를 치유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을 제시한 사람이라고 보는 입장(조윤정 2017)으로 나뉜다”고 소개한다.
한강 작가의 또 다른 대표작 '소년이 온다'(2014)에 대한 연구도 있다. 광주에서 태어난 그에게 5·18은 “피할 수 없는 일”이었고, 매일 울면서 이 작품을 썼다고 한다. 김대중(강원대)의 <랑시에르의 정치와 미학을 통한 '소년이 온다'와 '너무 시끄러운 고독' 분석>에서 “'소년이 온다'는 단순히 국가 폭력 희생자의 사례를 작품으로 담아낸 것뿐 아니라 영혼의 시선에서 시대를 반추하고 살아남은 자의 슬픔과 살아남지 못한 자에 대한 애도를 담고 있다”고 평가했다.
'소년이 온다'에서는 군인에게 학살당한 혼(동호)이 “그들의 얼굴을 보고 싶다, 잠든 그들의 눈꺼풀 위로 어른거리고 싶다, 꿈속으로 불쑥 들어가고 싶다. 그들이 악몽 속에서 피 흐르는 내 눈을 볼 때까지. 내 목소리를 들을 때까지. 왜 나를 쐈지, 왜 나를 죽였지”(57~58쪽)라고 말하는 대목이 나온다. 이에 김대중은 “일종의 씻김굿을 하듯 동호의 혼이 내는 목소리는 시체조차 찾을 수 없게 사라져버린 광주 시민들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그들의 목소리가 기존 역사의 감성 구조에서 사라졌다는 점에서 감성의 재분할을 이룬다”며 “보이지 않던 죽은 이와 살아남은 이들과 그들의 목소리가 다시 들리게 하는 것이 문학이 담아낼 수 있는 평등의 정치”라고 했다.
이 부분은 좀 더 곱씹어봐야 할 대목이다. 국가폭력에서 생존자는 그 존재와 증언 자체가 강력한 증거이지만 생존자가 남지 않았을 때 역사왜곡과 부정하는 담론이 다시 퍼질 수 있다. 김미정(문학평론가)은 <'기억-정동' 전쟁의 시대와 문학적 항쟁- 한강의 '소년이 온다'가 놓인 자리>에서 다음과 같은 여러 질문을 던진다.
“생존자가 단 한명도 존재하지 않게 되었을 때, 역사적 실재를 왜곡하거나 부정하는 수정주의 언설 혹은 그 정동이 언제라도 되돌아온다면 그 부당함은 누가 입증하는가. 혹은 어떤 역사의 증인이 단 한 명도 남지 않게 되는 시간이 도래했을 때 망각은 자연스러운 수순인가. 증언할 당사자가 단 한 명도 존재치 않는 세계에서 미래의 사람들은 그들과 어떻게 무엇으로 관계 맺어야 하나. 증언은 반드시 직접적 경험과 그것의 언어(재현)적 제약 속에서만 가능한 것인가. 광주에 대한 직접적 경험도 자각적 기억도 없을 먼 미래의 세대는 어떻게 그것을 기억할 수 있을까. '모독할 수 없도록' 증언하기 위해 나설 당사자조차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때 그것은 누가 어떻게 대신할 수 있는가.”
'소년이 온다'는 광주의 학살을 직접 경험하지 않은 작가가 쓴 '문학적 진상규명'이기도 하다. 김미정은 “소년이 온다는 한강이란 한 작가가 쓴 것이지만 시간과 공간과 개별 신체적 거리를 초월해 서로 네트워킹된 정동-쓰기의 생산물이기도 하다”고 했다. 80년 5월의 유족들이 2016년 4월의 유족들과 만나고, 2009년 1월 용산의 기억과 연결되며, 현실 앞에는 2022년 10월29일의 참사가 또 놓여있다. 역사와 역사의 부정이 반복되듯 그 반대의 작업도 반복된다. 그리고 역사의 부정과 역사의 증언은 거친 이분법의 대립보다는 선악의 구도로는 명확히 설명하기 어려운 각 개인과 공동체가 함께 만들어가는 '문학적 항쟁'에 더 어울릴지도 모른다. 이에 대한 한강 작가의 메시지가 '소년의 온다'의 에필로그 중 이 부분이 아닐까 싶다.
“특별히 잔인한 군인들이 있었던 것처럼 특별히 소극적인 군인들이 있었다. 피 흘리는 사람을 업어다 병원 앞에 내려놓고 황급히 달아난 공수부대원이 있었다. 집단발포 명령이 떨어졌을 때, 사람을 맞히지 않기 위해 총신을 올려 쏜 병사들이 있었다. 도청 앞의 시신들 앞에서 대열을 정비해 군가를 합창할 때, 끝까지 입을 다물고 있어 외신 카메라에 포착된 병사가 있었다. 어딘가 흡사한 태도가 도청에 남은 시민군들에게도 있었다.”
※참고문헌
미란, 에코 페미니즘 시각으로 본 한강과 응웬옥뜨의 소설 비교 연구
신수정, 한강 소설에 나타나는 '채식'의 의미 : 채식주의자를 중심으로
마혜경, 한강 '채식주의자'에 나타난 여성 몸의 의미와 저항 읽기
김세경, 심리적 허기의 관점에서 본 '한강' 소설에 나타난 섭식의 의미
김대중, 랑시에르의 정치와 미학을 통한 '소년이 온다'와 '너무 시끄러운 고독' 분석
김미정, '기억-정동' 전쟁의 시대와 문학적 항쟁- 한강의 '소년이 온다'(2014)가 놓인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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