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극의 명품 배우, 16억 전 재산을 잃다”
반문섭은 1969년 TBC 공채 9기로 데뷔해,
‘여인천하’, ‘용의 눈물’ 등 수많은 사극에서 선 굵은 연기를 펼치며
40년 넘게 대중의 사랑을 받아온 원로 배우다.
1970~80년대에는 문화영화와 드라마를 오가며
한 해에 8편까지 출연할 정도로 바쁜 나날을 보냈고,
당시 출연료가 집 한 채 값에 달할 만큼 전성기를 누렸다.
하지만 5년 전, 사업 실패로 16억 원에 달하는 전 재산을 잃으며
삶이 완전히 뒤바뀌었다.
칼국수집, 액세서리, 광고회사, 커피숍, 식당 등
수많은 사업에 도전했지만, 번번이 실패로 돌아갔다.
“잦은 비에 옷 젖는다고, 이것저것 손 안 대본 게 없다”고 회상할 만큼
생활고와 좌절이 이어졌다.

“가족과의 이별, 그리고 외로운 컨테이너 생활”
사업 실패 이후 반문섭은 가족들과도 점점 멀어졌다.
실의에 빠져 아내와 자녀들을 돌보지 못했고,
오랜 별거 끝에 결국 이혼하게 됐다.
“나는 빵점 남편이고, 죄인은 나다. 가족이 무슨 죄가 있겠나”라며
자신의 실패로 가족에게 상처를 준 것을 뼈저리게 후회했다.
현재 그는 산자락 어머니 묘소 옆 5평 남짓한 컨테이너에서
기초생활수급자로 생활하고 있다.
수도와 화장실도 없는 간소한 공간에서
밥을 해먹고, 약초를 캐며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다.
“여기가 내 집이다. 불편함은 없다”고 담담하게 말하지만,
손녀의 사진을 들여다보며 외로움을 달래는 모습에서는
가족에 대한 그리움과 미안함이 묻어난다.

“약초꾼으로, 그리고 다시 배우로…재기의 의지”
반문섭은 산속에서 약초를 캐며
몸을 단련하고 무술 연기를 준비한다.
“혹시 다시 나를 찾는 날이 오면 대비하고 싶다”며
언제든 연기자로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다.
과거의 영광에 집착하기보다는
새로운 삶을 받아들이고,
자신의 건강과 재기를 위해 힘을 내고 있다.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불효의 눈물”
반문섭이 배우가 된 가장 큰 이유는
행상으로 자식을 키우며 고생한 어머니를
호강시켜 드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연이은 실패와 좌절로
오히려 어머니께 불효만 남겼다는 생각에
어머니 묘소 앞에서 눈물을 흘린다.
“자식이 잘되는 모습을 보여드려야 하는데
실패만 거듭했다. 어머니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고
참회의 마음을 전했다.

“과거의 무게를 딛고, 다시 살아갈 힘을 다지다”
“모든 책임은 나에게 있다.
과거의 실패에 짓눌리기보다는
지금부터라도 더 열심히 살겠다.
어머니도, 가족도 걱정하지 않으셨으면 좋겠다”고
힘겹지만 단단한 의지를 다진다.
컨테이너 안에서의 생활은 외롭고 고되지만,
반문섭은 어머니와의 추억을 품고
여전히 삶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대중에게 전하는 메시지, 그리고 희망”
반문섭의 이야기는
화려했던 과거와 처절한 현실,
그리고 다시 살아가려는 의지가
담긴 인생의 기록이다.
그는 “언젠가 다시 무대에 설 날을 기다리며
오늘도 자신을 단련한다”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