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취한 사람 옆엔 어김없이 '이 남자'…지하철 돌며 폰 훔친 50대[베테랑]
[편집자주] 한 번 걸리면 끝까지 간다. 한국에서 한 해 검거되는 범죄 사건은 113만건(2022년 기준). 사라진 범죄자를 잡기 위해 물불 가리지 않는 이 시대의 진정한 경찰 베테랑을 만났다.
"지하철에서 휴대전화를 잃어버린 것 같아요."
지난 5월22일 서울경찰청 지하철경찰대에 절도 의심 신고가 접수됐다. 피해자는 술에 취해 지하철을 탔다가 최신 기종의 휴대전화를 잃어버렸다고 했다.
'부축빼기 범죄'가 의심되는 상황이었다. 부축빼기란 취객을 도와주는 척 접근해 휴대전화와 지갑 등 물품을 훔쳐 가는 범행을 말한다.
서울경찰청 지하철경찰대 수사3팀 소속 고은 경사는 곧장 수사에 착수했다. 당시 피해자의 동선을 파악해 CCTV(폐쇄회로TV)부터 분석했다. 전동차 내부를 비추는 CCTV 영상에서 부축빼기범으로 추정되는 범인이 보였다. 마스크 등으로 얼굴을 가리지 않아 인상 착의를 확인할 수 있었다.
이후 유사 사건 6건이 추가로 접수됐다. 별건으로 접수돼 다른 수사관들이 수사에 나섰지만 피의자 A씨는 눈만 내놓은 채 얼굴을 가리고 있어 특정에 어려움을 겪었다. 고 경사가 유사 사건 6개의 CCTV를 확인해보니 얼굴은 확인할 수 없었으나 걸음걸이와 체형 등이 익숙했다. 지난 5월22일 발생한 범행의 CCTV 속 범인이었다.
동일범의 소행이라는 사실을 확인하고 고 경사가 7건의 사건 수사를 모두 담당했다. 휴대전화 5대, 태블릿PC, 현금 등 피해액은 680만원에 달했다.
A씨는 서울지하철 2호선을 돌며 범행을 저질렀다. CCTV가 없는 전동차를 골라 타거나 다른 승객들의 감시가 소홀한 틈을 타 몇 초 사이에 물건을 훔쳤다. 바닥에 떨어진 물건을 주워주는 척 자신의 주머니에 넣고 술에 취한 피해자의 손에 들려있는 휴대전화를 훔치는 등 7건의 수법이 모두 달랐다.
고 경사는 함께 팀을 이룬 정동준 경위와 서울지하철 2호선 서울대입구역부터 충정로 입구역에 설치된 CCTV를 살펴봤다. 전동차 내부와 대합실, 출구 등 역사 내 설치된 CCTV를 모두 모았다. 확인한 지하철역만 15곳에 이른다.
범인이 밖으로 이동하면 범인의 동선을 따라 방범용 CCTV와 사설 CCTV까지 약 500여개의 영상을 모두 분석했다. 범인은 경찰의 추적을 피하기 위해 한 정거장 탑승 후 하차하고 내선순환과 외선순환 전동차를 바꿔 타는 등 치밀함을 보였다.
수사 시작 20일 만에 A씨의 주거지를 특정했다. 일주일간 집 앞에 잠복하면서 생활 패턴을 파악했다. A씨가 집에 있을 시간을 예측에 체포영장을 발부받았다. A씨는 지난 7월3일 본인의 주거지에서 체포됐다. 경찰 조사 결과 A씨는 50대 남성으로 절도 등 동종전과 17범의 전문 부축빼기범으로 드러났다.
고 경사는 2014년 경찰 생활을 시작한 뒤 형사과와 수사과를 거쳐 2021년 지하철경찰대 수사팀에 합류했다.
지난해에는 지하철에서 불법 촬영한 혐의를 받는 남성을 약 3개월간의 추적 끝에 검거해 구속했다. 피의자가 촬영한 불법 촬영물을 선별하는 과정에서 한 아파트에서 촬영된 불법 영상물이 다수 있는 사실을 확인했다. 피해자가 피해 사실을 모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같은 장소에서 촬영된 영상을 모두 모아 특징을 분석했다. 아파트는 피의자의 주거지로 추정됐다. 커튼 디자인, 우산이 놓여있는 위치 등 영상 속에 드러난 정보를 모아 아파트 단지를 샅샅이 뒤져 피해자가 사는 호실을 찾아냈다.
불법 촬영 대상이 된 줄 몰랐던 피해자는 고 경사 덕에 피해 사실을 알게 됐다. 고 경사는 피해자로부터 추가 진술을 받아 범인의 여죄까지 밝혀냈다. 같은해 여름에는 지하철 불심검문에 나갔다가 퇴근 시간 젊은 여성을 성추행하던 남성을 현장에서 체포하기도 했다.
고 경사는 "증거를 찾아 범행을 입증하는 수사관의 일이 생각보다 재밌게 느껴진다"며 "무엇보다 피해자를 위한 일이라 보람이 된다. 여러 날밤을 지새워도 피해자들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들으면 피로가 모두 사라진다"고 밝혔다.
이어 "포렌식 관련 업무를 배우고 싶어 지하철경찰대에 자진해 왔다"며 "어느 부서에 가든지 요령 피우지 않고 최선을 다하는 수사관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최지은 기자 choiji@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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