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드와 뉴가 사이좋게 섞인 동네,
사이잉푼

홍콩에 오기 전 센트럴, 셩완, 침사추이, 몽콕, 미드 레벨 같은 익숙한 이름 대신 낯선 지명을 탐색했다. 홍콩이 초행이 아닌 이들이 솔깃할 만한 곳을 찾고 싶어서. 여권에 도장이 가득한 지인들에게 “사이잉푼 알아?”라고 물었을 때, 한 번에 알아듣는 사람이 없었다. 삼수이포, 타이항과 함께 사이잉푼을 이번 여정의 목적지로 선택한 까닭이다.

MRT 사이잉푼역 A1 출구 바로 앞에 자리한 윈스턴 커피(Winstons Coffee)를 첫 행선지로 정한 건 많은 것이 빠르게 사라지는 홍콩에서 오랫동안 한자리를 지킨 사랑방 같은 곳이라는 정보 때문이다. 그 앞에 도착하자마자 약 8년 전 이곳에 혼자 찾아와 따뜻한 라테와 커피 칵테일을 들이켰던 순간이 뇌리에 번개처럼 지나갔다. 고작 카페 하나 와본 적 있다는 얘길 이렇게 장황하게 늘어놓는 이유가 있다.

나 역시 사이잉푼을 ‘전혀 모르는 지역’이라고 철석같이 믿었는데 와서 보니 놀아본 적 있는 동네라는 사실을 뒤늦게 알아챘으며 나와 같은 경험을 할 것 같은 사람이 또 있을 거란 생각이 들어서다. 센트럴 지구를 구석구석 쏘다녀본 이라면 ‘자기도 모르게’ 들어섰을 확률이 높은 사이잉푼은 홍콩에서 도시화가 가장 먼저 된 동네다.

이 구역에 포함되는 거리 이름에 그 근거가 있다. 1850년대 중반, 홍콩 정부는 최초의 영국군 캠프가 세워진 이 동네에 1가, 2가, 3가 같은 직관적인 이름을 붙이고 일찌감치 개발을 시작했다. 중국 본토에서 유입된 이민자가 급증한 1949년부터 2015년 아일랜드 라인을 서부 지역으로 연장하는 MTR 사이잉푼역이 개통되기까지 이 동네는 격동의 변화를 겪었다.

그 결과는 눈앞에 펼쳐지는 장면 속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서드 스트리트(Third Street)와 하이 스트리트(High Street) 사이를 점령한 화려한 풍경들. 진귀하고 반짝이는 물건을 진열한 골동품점, 다채로운 이국의 음식을 다루는 식당과 거리 위, 릴스에서 갓 튀어나온 듯한 옷차림으로 인증 사진 촬영에 여념이 없는 MZ들, 세련된 요가원과 제로 웨이스트 마트, 스타일리시한 카페….

그럼에도 사이잉푼이 ‘현지인들이 사랑하는 동네’로 불리는 이유는 홍콩의 근대를 상징하는 옛 건축물 통라우. 4대째 한자리에서 대나무 찜기를 만들어 파는 턱총섬키 밤부 스티머 컴퍼니(Tuck Chong Sum Kee Bamboo Steamer Company) 같은 전통적인 장소들이 ‘오래된 동네’라는 정체성을 지키고 있기 때문이다.

새롭고 트렌디한 것과 옛것이 자연스럽게 섞인 장면의 정수를 만나고 싶다면 사이잉푼 시장(Sai Ying Pun Market)으로 향하자.

얼음 위에서 팔딱거리는 신선한 해산물을 파는 생선가게의 활기찬 에너지, 알록달록한 먹거리를 정성스럽고 정갈하게 진열한 채소가게, 하이 스트리트에 즐비한 요가원과 짐에서 갓 운동을 마치고 나온 젊은 커플이 90세 할머니 상인과 친숙하게 대화를 주고받으며 안부를 나누는 모습, 일요일 저녁을 위한 장을 보러 나온 각양각색 로컬들이 만드는 분위기를 천천히 관찰하다 보면 지하철로 고작 두 정거장 거리에 위치한 센트럴 지구와 사이잉푼 사이의 차이-놀러 나가기 좋은 동네와 살기 좋은 동네-가 쉬이 와닿는다.

카페 헌팅
홍콩의 로컬 매거진이나 부동산 개발 회사가 제작한 팸플릿 속 동네 소개에 따르면 사이잉푼은 “이 도시의 명실상부한 커피 허브”다. 퀄리티 높은 원두와 사워도우 빵으로 유명한 파인프린트(FinePrint), 치즈 케이크와 콜드 브루 커피가 맛있는 카페 헴마(Hemma), 홍콩의 유명한 코미디언이 문 연 아젱스 커피 클럽(Ah Jeng’s Coffee Club) 등이 인기다.
아트레인 걷기
오래된 건축물과 벽화가 홍콩다운 풍경을 만드는 아트레인은 홍콩과 전 세계의 유명한 벽화가 9명의 작품을 감상하거나 기념사진을 찍기에 좋은 곳. 사이잉푼역 B3번 출구로 나와 충칭 스트리트와 키링 레인 사이를 산책하다 보면 자연스레 만난다.
공원 산책
하이 스트리트의 건축 랜드마크 사이잉푼 커뮤니티 콤플렉스(Sai Ying Pun Community Complex) 앞에 펼쳐진 킹 조지 5세 공원(King George V Park)은 돌 담벼락 바깥으로 뿌리를 드러내며 기세 좋게 자란 나무들이 매력적인 곳. 아랫동네의 순얏센 기념 공원(Sun Yat Sen Memorial Park)은 로컬들이 피크닉, 러닝, 농구, 수영 등을 즐기기 위해 찾는 곳이다.
Copyright © hye!TRAVE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