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보다 위대한 골키퍼
카보베르데 40세 수문장 7차례 선방쇼… 스페인과 0대0 무승부 기적 이끌어

북중미 월드컵 최대 이변이다. 인구 52만명에 불과한 서아프리카 섬나라 카보베르데(FIFA 랭킹 64위)가 이번 대회 우승 후보로 꼽히는 스페인(3위)과 0대0으로 비겼다. 사상 처음 월드컵 본선에 오른 것도 기적이라고 했는데, 첫 경기에서 축구 최강국을 상대로 승점을 따냈다. 16일 미국 애틀랜타 스타디움을 찾은 카보베르데 팬들뿐만 아니라 경기를 지켜본 세계 축구 팬들도 카보베르데의 투혼에 감동의 박수를 보냈다.
카보베르데 선수들은 이날 라민 야말, 페드리(이상 바르셀로나), 로드리(맨체스터시티) 등 스페인 초호화 군단의 파상공세를 온몸으로 막아냈다. 그중에서도 가장 빛난 선수는 단연 골키퍼 보지냐(40)였다. 그는 이날 스페인이 기록한 유효 슈팅 7차례를 모두 막아내며 경기 최우수 선수로 뽑혔다.
포르투갈 2부 리그 GD 차베스에서 뛰는 보지냐는 카보베르데 대표팀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선수 중 하나다. A매치 통산 89경기에 출전한 베테랑으로 아프리카 네이션스컵과 월드컵 등 카보베르데가 출전한 대부분의 메이저 대회에서 골대를 지켰다. 2013년 카보베르데가 처음 네이션스컵 본선에 진출했을 때도 보지냐의 공이 컸다.
그러나 세계 최고 선수들이 모이는 월드컵에선 그의 존재감은 미미하다. 북중미 월드컵을 앞두고 스포츠 이적 시장 전문 매체 ‘트랜스퍼마르크트’가 매긴 보지냐의 몸값(시장 가치)은 5만유로(약 8700만원). 월드컵 출전 명단에 이름을 올린 48국 1248명 선수 중 둘째로 낮은 몸값이다.
하지만 그는 월드컵 데뷔전에서 이름값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온몸으로 증명했다. 스페인전의 활약으로 그는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경기 전까지 5만명이던 그의 인스타그램 팔로어는 단번에 730만명을 돌파했다. 그는 “내가 최우수 선수로 뽑혔지만 이는 카보베르데 선수 모두를 위한 것”이라며 “팀 동료들이 없었다면 불가능했다”고 말했다.

경기 종료 후 동료들과 얼싸안고 뜨거운 눈물을 흘린 보지냐가 가장 먼저 떠올린 사람은 2년 전 세상을 떠난 그의 할머니였다. 그의 아버지는 군인이었고 어머니도 생계 때문에 일을 해야 해 어린 시절 할아버지·할머니 손에 자랐다고 한다. 동네 골목에서 나이 많은 형들과 축구를 즐겼는데, 체격 차이와 거친 몸싸움 탓에 몸에 멍이 들고 눈물을 흘리며 집에 돌아가는 일이 잦았다고 한다. 그때 형들이 “할머니에게 도망간다”며 놀린 게 별명으로 굳어지면서 새로운 이름이 됐다. 포르투갈어로 할머니를 친근하게 부르는 표현이 ‘보지냐(vozinha)’다. 그의 본명은 1986 멕시코 월드컵에서 활약한 브라질 축구 선수 조시마르의 이름을 딴 조시마르 디아스다. 보지냐는 “하늘에서 지켜보고 있을 할머니께 감사하다”며 “살아 계셨으면 손자를 정말 자랑스러워하셨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비자 문제로 아들의 월드컵 경기를 현장에서 보지 못한 어머니에 대한 안타까움도 표현했다. 카보베르데는 미국이 비자 신청 비용과 별도로 ‘비자 보증금’을 요구하는 국가다. 보지냐의 어머니는 보증금 1만5000달러(약 2200만원)를 낼 돈이 없어서 비자 발급을 포기했다고 한다. 보지냐는 “이 행복한 순간을 어머니와 함께하지 못해 슬프다”고 했다.
카보베르데가 속한 H조는 우루과이와 사우디아라비아도 1대1로 비기면서 네 팀이 모두 승점 1로 같다. 스페인을 상대로 승점을 획득한 카보베르데가 32강 토너먼트에 오를 가능성도 충분하다. 보지냐는 22일 우루과이전, 27일 사우디아라비아를 상대로 반드시 승리를 따내 더 큰 기적을 쓰겠다는 각오를 밝혔다.
보지냐는 “많은 사람이 카보베르데가 그저 월드컵을 즐기러 왔다고 생각했겠지만, 우리는 훨씬 더 존중받을 자격이 있는 팀”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페드루 브리투 카보베르데 감독도 “선수들이 스페인을 상대로 탄탄한 조직력과 굴하지 않는 용기를 보여줬다”며 “오랜 기간 대표팀에서 함께한 보지냐에겐 그저 감사할 따름”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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